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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 매달린 사람 The Hanged Man

완성을 위한 번데기의 기다림

by 하치


한 남자가 T자 모양의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있습니다.


수비학적으로 숫자 12는 3(1+2)으로 3번 여황제 카드와 상응하여 최초의 완성과 동시에 태내에 거꾸로 매달린 태아를 뜻하기도 하여 임신이라는 키워드로도 볼 수 있습니다.


12번 매달린 사람은 한쪽 발은 묶여 있고 양손은 묶였는지 뒷짐을 지고 있는지 애매하고 불편한 자세로 있어요.

현 상황으로 보면 지금은 무언가에 묶여있듯 모종의 문제에 사로잡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체되고 인내해야 하는 시련의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은 멈추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때입니다.

가만히 있는 게 힘들고 생산적이지 않다는 죄책감의 고정관념을 거꾸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힘든 희생의 시간이 영원히 붙박이처럼 고정되는 것 같을지라도 시간은 어차피 손가락 사이로 새어지는 모래 같지 않나요

영원히 계속될 정체기는 없답니다


당신의 멈춤은 결코 정지가 아니에요.

순환은 수많은 멈춤이 모여 돌아가는 역설의 수레바퀴입니다.

미시적 정지상태인 불안에 한 눈 팔지 않고 내면의 왁자지껄을 가만히 멈추어야 거시적인 순환으로 내맡겨져서 환기할 수 있습니다.


한 때 가만히 멈춰 시련의 시기를 웅크리고 보낸 적이 있어요. 힘을 낼 여력이 없으니 힘을 빼고서요.

모든 상황이 제 아귀와 맞지 않아 울퉁불퉁 모에 상처 입었다 남 탓 제 탓을 했어요.

탓을 하는 목소리는 길어봤자 1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또 다른 불평거리를 꺼내려할 때, 이죽이는 입술에도 힘을 빼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랬더니 표면에 떠오른 문젯거리들은 핑계에 불과함을 알아챘 수 있었어요.


상황이 문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것을 문제 삼는 나의 해석이 문제를 선별적으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직 내가 선택한 느낌을 호오의 감정으로 나누고 옳고 그름의 행동을 취했어요

내면의 전쟁터를 가만히 바라보니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저 바깥 외부는 없고 나는 오직 나 자신을 경험할 뿐인 것을. 그리고 그 경험을 선택한 자신을 책임을 지기로 했어요.


투사를 멈추고, 내가 바라보는 것은 내 내면의 조건임을 인정하고 내가 바라보는 것에 탓 안 하고 제 책임으로 되돌리는 것은 부단히 힘들었어요.

그러나 고통을 내가 선택했다는 자각만으로 어느 정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시련이란 미처 배우지 못한 교훈들이 다시 한번 주어지는 것일 뿐, 그리하여 이제 너는 이전에 그릇된 선택을 내렸던 자리에서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고, 그러므로 이전의 선택이 가져다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 기적수업 발췌 -


그러므로 이 시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완성을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예요.







그런데 매달린 사람의 고요하고 편안한 표정을 보노라니 그는 타인에 의해 억지로 매달려진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로 묶이기를 자처했고 볼 수도 있어요.


마치 나비가 되기 위해 거꾸로 매달린 번데기가 연상되지 않나요.

남들 눈에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 지지부진한 번데기의 형상이지만 멈추고 바라보고 알아차림의 과정 속에서 날개가 돋는 단계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얻은 것입니다.


매달린 사람의 중요 키워드는 희생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이 순간은 고통이나 절망이 아니에요.


그가 희생하는 것은 모든 외적인 특별함과 내적인 가치라고 옹졸히 믿었던 모든 에고(ego), 옳다고 주장하는 관념들을 뒤집었을 뿐이에요.


영화 플립(Flipped)을 보시면 Flipped의 뜻부터 살펴보는 게 관전의 포인트인데, Flipped는 Flip의 수동형 표현입니다.

Flip

1. 동사) 핵 뒤집(히)다, 획 젖히다.

2. 동사) (기계의 버튼등을) 탁 누르다

영화에서 브라이스란 소년은 줄리라는 성격이 평범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여자애를 피해 다니다 그녀의 무지개 같은 인간적 매력에 편견이 홱 뒤집혀져 사랑 버튼에 발작하는 휴먼로맨스입니다.


https://youtu.be/o8j70yHzTJs?si=D312fXpLPCe_nPNB

플립에서의 브라이스의 관점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를 색안경을 끼고 봤는지, 존재에 대해 내 생각의 옳음으로 재단했는지에 대해 가 틀릴 수도 있다는 관점의 뒤집힘을 액션영화 못지않은 흥분으로 기분 좋게 볼 수 있어요.

이 영화를 한 번도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니다.






머리를 땅 아래쪽으로 향한 것은 곧 내면의 땅바닥인 무의식에 대한 탐구와 자아성찰로 볼 수 있어요.

그리고 T자의 십자가에 양손을 뒤로하고 한쪽 다리를 구부린 모습은 불교의 卍자와 예수를 떠오르게도 합니다.

종교성은 내면의 투사를 거꾸로 자신에게 돌려 내면의 밑바닥을 직면한 자들이 지닌 내면의 틀이자 내용입니다.


그래서 T자의 나무를 자세히 보면 죽은 나무가 아니라 푸릇푸릇한 나뭇잎이 보이지요.

이는 매달린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라 고의 죽음을 통해 부활하는 체험로서 개인적인 힘 보다 더 큰 무언가에 믿음과 희망을 상징는 듯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딱 이 표현으로 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에고를 죽여 참자아로 거듭났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번데기의 어둠을 탈피하여 나온 자는 김용택 시인의 표현대로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을 것입니다.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들일 것입니다.


상대방의 카드에 이 매달린 사람이 나왔다면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에 머리에 후광이 있듯 영혼이 반짝이며 추구하는 사람일 수 있어요.

똑같은 사물을 뒤집어 보면서 남들이 생각 못하는 기발한 발상을 하는 사람이고요

겉은 고요해도 내면은 복잡한 회로의 사람인지라 주변에서 그의 느림을 다그치거나 재촉하는 건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요.

느긋하게 그를 믿고 기다리시면 자유롭고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지혜의 후광을 밝히며 짠~하고 나타날 것이에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의 발걸음을 주춤 멈추는 시간이 오기도 합니다.

근데 그 시간을 정체(停滯)로 허비하는가, 본질적인 정체(正體)를 기억해 내는가는 우리의 선택이고, 선택은 우리의 자유권이에요.


진정한 선택은 결과를 가늠하지 않고 마음을 다할 뿐이에요.


뒤집혀 매달린 사람을 통해 어둠의 실타래 켜켜한 번데기면서 나비인 아를 려보았습니다.



https://youtu.be/xNy4frVvJLg?si=tGhYDjizxyxLen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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