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과 새로운 시작
한 여인이 보라색 천을 두르고 지팡이를 양손에 들고서 커다란 월계수 원 안에 있습니다.
월계수 잎 위쪽과 아래쪽에는 붉은색 매듭이 뫼비우스 띠 모양을 하고 있어요.
수비학적으로 21은 3(2+1)번 여황제와 대응되는데, 3은 양과 음의 결합이고 또 21의 세계 카드의 동그란 원에 사람이 있는 것이 자궁 속 태아를 연상케 하여 3번, 12번과 더불어 임신이라는 키워드로 쓰이기도 해요.
이 카드의 또 하나의 대응 카드는 앞서 말한 12번 매달린 사람인데, 12를 뒤집으면 21이 되며 12번 매달린 사람을 거꾸로 하면 세계 카드의 인물과 비슷한 자세가 되지요
바로 12번 매달린 사람이 기다림과 희생을 통해 묶였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성장과 완성을 달성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마치 12번의 십자가 나무의 이파리가 21번의 커다란 월계수로 성장한 듯 같지 않나요~
이 카드의 키워드는 완성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말하지요
월계수 원은 뱀의 비늘인 듯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인 우로보로스를 뜻하며 이는 영원성과 윤회를 상징해요.
붉은 매듭 또한 뫼비우스의 띠로 무한대와 영원성을 나타내요.
10번 운명의 수레바퀴 카드의 네 모퉁이의 4원소로 상징되는 생물들이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 있었지요.
반면에 21번 카드는 그럴 필요도 없이 모든 공부를 마쳤기에 내면의 성장을 이뤘다는 의미로 책이 없습니다.
즉 책을 통한 사색의 도약은 곧 현실에서의 자아실현으로 이어져요.
이렇듯 세계 카드는 한 세계나 분야에 한 획을 긋듯 내가 이룬 성과와 성취를 나타냅니다.
한 마디로 잘 나가는 사람이죠
한편으로 21번 세계 카드의 큰 월계수 원은 내가 이뤄낸 성과와 업적의 한 획을 일필휘지로 그린 것이지만 또 나를 가두는 틀이 되기도 해요.
마치 16번 탑 카드에서 내가 만든 공든 상아탑이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듯, 내가 파고든 특정 지식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골수가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21번의 월계수 원을 볼 때마다 데미안의 문구가 떠오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21번은 닫힌 원처럼보이지만, 그 원을 깨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헤르만 헤세에게 영향을 준 칼 융이 작성한 저서 중 죽은 자를 위한 7가지 설법에서도 아브라삭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때의 묘사에 따르면 아브라삭스는 선과 악, 빛과 어둠 등의 대립되는 개념들 그 너머에 존재하며, 그 어떤 신보다도 가장 불분명하고 초월적인 존재라고 한다. 또한 칼 융은 아브라삭스를 자신의 저서에서 인간이 내적으로 성장해 자아를 형성하기 위한 통합, 성숙, 일체화의 과정을 추진하는 힘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출처- 나무위키
우물 안의 개구리인 자신의 작은 세상을 깨며 결국은 참다운 자아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영적으로 완전한 상태를 향해서 말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안의 모순과 양가감정과 선악이 모호한 경계선에 대한 개념을 내려놓고 혼돈 그대로 성찰해야 할 것이에요.
우리는 환경과 유전에 의해 결합된 한정된 존재가 아니에요
.
한 편으로 심리학자 칼 융은 페르소나를 "사회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외적 자아", 즉 사회적 역할로서의 자아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어요.
하지만 나를 설정하는 배경과 이력의 외적 자아는 통합되지 않은 인격을 나타내는 한계가 있어요.
그러면서 사람들은 외적 자아와 내적 자아를 나눠 분열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조각조각난 자아를 기우는 퀼트의 작업에서 손을 떼세요.
내면의 성장은 끝이 없는 더 큰 세상을 향한 발돋음이에요.
한 마디로 제목이 세계이듯 틀을 부수고 더 큰 세상으로 날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