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어린 시절 산속에 살았다 날마다 장례 지내는 것을 보고 어린 맹자 또한 날마다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장례 지내는 흉내를 냈다. 맹자의 어머니는 자각했다 이래선 안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번잡스러운 시장으로 이사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날마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치 흉내를 내는 내는 것이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것도 아니다 싶어 학교 옆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자 맹자가 아침저녁 글 읽는 흉내를 내었다. 결국 맹자는 유교의 대가가 되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단어를 배운 것은 중학교 2학년 한문 시간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셨던 한문 선생님은 맹자의 어머니에 대해 열정적으로 칭송하셨다. 자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했고 결국 맹자를 2000년 최고의 유학자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어머니의 희생적 태도와 자식에 대한 헌신, 그리고 자식의 교육에 대한 바람직한 예로 맹모삼천지교를 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맹모 삼천지교는 다소 다른 의미가 덧입혀지기 시작했다. 학력 중심의 사회와 입시 광풍이 두바이의 모랫바람보다 더 세차게 불어 제치는 한국에서는 더 좋은 학군으로의 이동이라는 의미가 슬금슬금 덧 입혀졌다.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에서도 학군지가 좋은 곳으로, 최고의 학군이라는 강남으로, 요즘은 특목고에 입학하기 좋은 입지를 가진 곳으로의 이동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는 맹모들이 모여드는 곳은 집값이 상승하고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아이가 취학할 시기가 되면서부터 주변의 모든 엄마들의 꿈은 강남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교육의 장점보다는 문제점에 논하며 사교육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는 삶을 아이 교육의 최고의 목표로 삼는 나도 아이가 한글을 떼는 순간부터 한 번씩 가자미 눈이 되어서 그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쩌다 한 번씩 아이가 깜찍하게 굴 때마다 아닌 줄 알면서도 아이의 영재성에 미련을 두고 학군이 좋다는 강남 쪽으로 이사를 가야 아이의 영재성이 묻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아이가 자라면서 건강하고 평범함 하게 자라는 것이 최고라는 정신승리 쪽으로 마음을 굳히면서 나는 어느 순간 맹모의 대열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어쩌다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날엔 아이의 공부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내가 맹모의 대열에서 멀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최고의 학군지에 들어갔든, 그렇지 못했든 혹은 안 했든 간에 우리들의 마음 한쪽엔 맹모에 대한 열망이 존재한다. 그래서 세 번의 이사 아니라 더 많은 이사를 해서라도 아이의 성적이 오르고 아이가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만 있다면 우리 나리의 모든 엄마들은 맹모가 되기를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또 따른 맹모들이 등장했다. 많은 맹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나 다른 지역으로 가서 며칠간, 혹은, 한 달 내지 일 년 살기를 하며 아이들의 경험을 키우고 다양하고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 방학이나 긴 연휴가 되면 아이를 데리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맹모들 덕분에 항공사가 분주하고 유명 여행지엔 한국인들로 가득하다는 기사를 읽었다.
문득 깨달았다. 아. 맹모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구나. 그러나 그 맥락은 같다. 자녀들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영향을 받으며 자라서 훌륭한(?) 혹은 뛰어난 사람이 되도록 키우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행동에 옮기면 맹모가 아닐까 한다.
시대가 변해도, 환경도 바뀌어도 이천 년 전 맹모의 기세는 아직까지 사그라들지 않고 자식을 사랑하는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우리도 맹모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