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의 창문을 열어 둔 것은 늦여름의 후텁함을 떨쳐줄 바람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틈 나는 대로 창으로 고개를 길게 빼내며 건너편 놀이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은 열기가 지배하는 팔월말 오후 아파트 놀이터는 적막감이 돈다.
-이상하다. 이상해..... 놀이터에 애들이 없어. -
스님 염불 하듯 같은 말을 웅얼거리며 돌아서려는데, 저 쪽에서 딸아이 또래의 아이 하나가 그네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다. 그러면 그렇지 지성이면 감천이지. 공부만 맹모가 필요하랴 친구 만들어 주는데도 맹모의 지략이 필요하다.
심심하다고 칭얼대다 지쳐서 방에서 꼼지락 거리는 아이를 불러제낀다.
- 채0아, 채0아 채.... -
행동 느린 아이가 답답하고, 혹여라도 어제처럼 꾸물거리다가. 그 아이가 가버릴까 봐 나는 제정신 나간 여자처럼 아이를 부르며 아이 손을 잡아 끈다. 동그랗게 쳐다보는 아이에게
-놀이터에 친구 있다 나가자. 얼른..... 얼른..... 그냥 바지만 입어 더우니까 윗옷은 지금 그거 입고 바지만.... 얼른 채 0아 -
가늘기만 한 아이 팔을 당겨대며 아이를 끌다시피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나는 그네 앞에서 낯가림에 수줍음으로 티셔츠를 늘여 입에 대고 쪽쪽 빨고 있는 아이 등짝을 그 아이 앞으로 밀어대며 말한다. 웃으면서 친절하게
- 너 몇 학년이야?-
-1힉년요 -
-어~머(내 목소리가 너무 하이톤이라 내 귀에도 이상하지만 ) 그렇구나 우리 채 0이도 일 학년야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뻘쭘하게 서 있는 아이를 그 아이 옆 그네에 그냥 쑤셔서 앉히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벤치가를 서성였다.
4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여덟 살의 딸을 가진 마흔여덟의 엄마에게 2014년 늦여름의 아파트 놀이터는 좀 이해가 안 되면서도 난해함이 느껴지는 공허하면서도 슬픈 장소였다.
오십을 바라보는 늙은 엄마는 아는 것도 너무 없었다. 그저 학교에 가면 친구가 있겠거니, 아이가 많은 신도시 아파트 놀이터에는 또 친구들이 넘쳐나겠거니 하는 것은 기억도 아득한 나 어릴 때나, 그때 이미 대학을 가기 시작한 내 친구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1학년 이 학기 개학을 며칠 남기고 대책 없이 한국으로 귀국한 나는 며칠의 기간 동안 알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는 이 지역에서 좀 늦게 지어진 데다가 좀 큰 평수가 많아서 600 세대가 넘는 단지임에도 초등학생은 몇 명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파트 계약하고 이사하고도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뒤에 알았다. 옆 아파트 단지에 아이들이 넘쳐 나다는 것을 것을..... 에휴, 이런 이런 그 아파트로 가야 했는데. 그러나 이제 어쩌랴.
옆 아파트 아이여도 학교에 가면 친해질 수 있겠지. 그래 학교 가면 너네 반에만 해도 애들이 한 삼십 명 된다는데 한 반에 삼십 명이면 전체가 한 이백 명 되는데 친구 못 만들겠어했는데... 못 만든다는 것을 깨닫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며칠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말했다.
- 엄마 애들이 나를 안 끼워 줘-
-왜? 괴롭혀?-
-아니, 나한테 관심이 없어. 애들은 다 같은 유치원 나오고 입학식 날 친해졌대. 한 번 사귀면 다른 친구 사귀면 배신이래-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랬다. 이미 같은 어린이집, 같은 유치원을 나온, 엄마끼리의 잘 아는 아이들끼리 친구였다.
우리 애는 그냥 굴러온 돌이었다. 심지어 친구가 아니고 같은 반 애라고 한다고도 했다.
아!!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작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유치원에 보냈어야 했나. 입학식 전에 나 혼자 애 데리고 들어왔어야 했나.
엎질러진 물이요. 이미 상황 끝이었다.
거기에 나는 치명적인 결함이 또 있었다.
나는 아이 친구 엄마보다도 나이가 좀 많이 많았다. 가기에 나는 워킹맘이었다. 그리고 사실 아이의 낯가림을 탓하지만 나도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산 너머 산이요 강 건너 바다였다.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마흔에 낳은 우리 딸에게 나는 하나뿐인 엄마 아닌가
엄마가 아니면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의지를 불렀다.
나는 목표가 생겼다.
아이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
대학입시 때도 교사 임용 시험 때도 해보지 않은 혼잣말을 대뇌였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일단 내 나름대로의 포트 폴리오를 짰다.
먼저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여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둘째 학교의 담임선생님께 부탁드려 아이에게 친구를 소개받게 한다.
셋째 아이의 학교 엄마들에게 접근하여 친구를 만들어 준다.
넷째 나의 정보력(?)과 친화력(?)을 총동원하여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성공했냐면
글쎄... 성공했다고도 실패했다고도 할 수 있다.
성공만 하는 계획이 어디 있으며 실패만 계획이 어디 있으랴
어쨌든 나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유목민처럼 지치지 않고, 북두칠성을 찾아가는 탐험가처럼 용기 있게 딸의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