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우리 유치원 야외 자연학습체험일입니다. 원에서 급식이 없으니 학부모님들께서는 자녀들 점심 도시락을 꼭 싸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고서 친정집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도착 시간은 저녁 9시쯤.
"니는 맨날 이렇게 늦나? 회사 일 혼자서 다 하나?"
아이를 보느라 피곤에 지쳐 어서 빨리 아이들을 데려갔으면 하는 마음에 친정엄마는 내게 싫은 소리를 하셨다.
TV를 보던 아이들은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엄마다!!!"하고 목청을 높였고 몸을 뒤로 틀어 나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엄마의 귀가에 반응이 시큰둥하던 아들이 웬일인지 TV 앞을 박차고 거실로 뛰어나와 내 웃옷 끝자락을 붙잡으며 말했다.
"엄마, 내일 XX공원으로 야외학습 간다더라. 그래서 내일 김밥이랑 과자랑 음료수도 사 가지고 가야 된대."
목소리에 벌써 흥이 잔뜩 묻어있다. 당당하게 과자를 살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게다가 특별한 기념일이 아니면 사주지 않았던 청량음료-콜라 같은 것-를 맘 놓고 사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유치원 가방을 열어 알림장을 살펴보았다. 내일 야외 체험학습, 즉 소풍을 간다는 내용과 그에 맞는 것을 미리 챙겨주십사 하는 요청의 내용이 쓰여있었다.
"내일은 공부도 안 하고 좋겠네. 어서 가자. 슈퍼에서 과자도 사고 음료수도 사야지."
아들은 '와~~'하며 가방을 둘러매고 신발을 찾아 신으면서 여전히 TV를 보고 있는 동생을 재촉했다.
"oo아, 빨리 가자. 과자 사러 가야지."
집 앞 슈퍼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과자와 음료수를 2개씩 고르게 했다. 오랜만에 하는 쇼핑이라 그런지 선택에 무척이나 신중했다. 과자 4개에 음료수 4개를 사는데 얼추 40분은 걸렸다. 평상시에 무엇을 맘껏 사지 못하게 하니 이런 선택의 순간이 되면 아이들은 최적의 선택을 위해서 고심에 고심을 하곤 했다. 덕분에 우리 집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시간은 밤 10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이번 소풍에도엄마표 김밥 대신 천국표 김밥을 사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4월은 유치원생에게는 각종 야외학습이 있는 좋은 달이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가장 어수선한 달 중 하나였다. 기온이 내려가는 가을겨울 시즌에서 기온이 올라가는 봄여름으로 시즌이 바뀌는 4월은 재고 관리와 납품 관리로 늘 긴장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 재고는 쇼티지였고 불필요 재고는 잉여가 되곤 했다.
출근을 하자마자 주문에 대비한 출고 재고가 부족하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공장, 창고, 현장 직원, 고객사 등에 전화를 돌리고 설득을 하고 서류를 작성하며 자료를 만들다 보니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느라 조금 늦은 점심을 경리부 직원 둘과 함께 하게 되었다. 식사가 빨리 나오기로 유명한 회사 앞 제육볶음 집에서 주문을 한 지 3분 만에 나온 제육볶음 백반에 젓가락질을 바삐 하고 있었다. 제법 덩어리가 큰 제육 한 점을 밥 위에 올려 밥과 제육을 동시에 젓가락으로 뜨면서 경리부 직원이 말했다.
"요 옆 가시식당, 이제 김밥은 안 한대요. 길 건너 김밥천국이 새로 생겨서 그런가 봐요. 기사식당 김밥이 훨씬 더 맛있는데, 아쉬워요."
그 순간 3초 정도 세상이 정지한 것처럼 나는 꼼짝을 하지 못했다.
"아, 김밥!"
나는 경리부 직원의 말을 들었을 때 내 심장이 배꼽 어디쯤에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밥을 뜨려던 젓가락을 식탁을 탁! 하고 소리 내어 놓았다. 젓가락을 놓던 '탁!'소리가 마치 내 심장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인 것 같았다.
"오늘 아들내미 소풍이라 김밥을 사서 보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그냥 보냈다. 우짜지, 설마 굶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어떻게 애 소풍날 김밥도 안 싸줘요? 무슨 이런 엄마가 다 있어요?"
혹시나 친정엄마가 도시락을 싸줬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전화를 걸어보니 엄마는 오늘이 소풍인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망했다. 아이는 김밥도 없이 소풍을 간 것이다. 어제저녁 잠자리에 들 때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 앞 김밥천국에 가서 김밥을 사서 도시락통에 예쁘게라도 담아서 보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아침이 오면서 동시에 기억도 리셋되었다.
아이가 조금 더 어리고 내가 회사에서 사원이고 주임이었을 때는 전날 김밥 재료를 사서 준비해놓고 소풍날 새벽부터 직접 김밥을 정성스레 싸서 보내었다. 비록 맛은 보장 못하지만 적어도 엄마가 직접 싸서 주는 김밥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조금 더 지나고 회사에서 대리로 과장으로 승진을 하다 보니 직접 김밥을 싸는 것조차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아니, 몸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늘어나는 업무와 책임으로 퇴근은 늦어지고 몸은 일주일 동안 방치해서 누렇게 시든 시금치처럼 되어갔다. 저녁에 김밥 재료를 살 시간도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쌀 여유도 마련되지 않았다. 큰 아이가 6살이었던 해 가을쯤부터 천국표 김밥을 사서 포장만 그럴싸하게 해서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이 아이를 소풍 보낸 것이다.
"네, 어머니. 안 그래도 찬이가 도시락이 없더라고요. 다행히 다른 어머니가 도시락을 하나 더 싸오셔서 그거 같이 나눠먹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찬이는 씩씩하게 잘 먹고 잘 놀고 있습니다."
저녁에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엄마가 김밥을 싸주지 않아서 섭섭하지 않았냐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다. 오히려 아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엄마가 싸준 것보다 친구 엄마가 만든 김밥이 더 맛있던데. 도시락이 없다니깐 서로 막 나눠줘서 더 배불렀는데."
이날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잊지 않고 소풍 때마다 김밥을 꼬박꼬박 직접 싸서 주었다. 고 끝맺음을 맺었으면 참 아름다운 결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때 이후로 쭈욱 김밥을 직접 싸는 대신 천국표 김밥을 사서 보내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워킹맘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고 과거를 회상하는 지금의 나는 직장을 다녔던 때보다 그 날 내가 놀랐던 기억이 더 뚜렷하고 생생하게 난다. 세월이 지난 지금 김밥도 없는 소풍을 갔었던 아들은 '그럴 수도 있지. 직장 다니면서 일일이 다 챙기기가 어디 쉽나?'라며 직장 다니는 여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그리고 그날의 해프닝도 쿨하게 넘길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을 자율적으로 때로는 무심하게 부모에 대한 기대를 적당히 낮추면서 키웠던 것이 길게 보면 아이에게도 일하는 엄마에게도 조금 더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