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젓가락 담론

아이에게 젓가락질 교육을 강요했던 나에 대한 변명

by 홍월

7~80년대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했듯이 우리 집 사 남매 역시 밥을 먹을 때는 내일 기말시험을 앞두고 벼락공부를 하는 학생들처럼 열심히 밥을 먹었다. 우리가 매 끼마다 최선을 다해서 밥을 먹은 이유는 쌀 한 톨을 만들기 위해 농부는 꼬박 일 년의 공을 들이므로 그 수고를 생각하며 한 톨이라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첫 번째 이유였고, 아버지의 출근과 우리의 등교를 최대한 앞당기는데 식구 모두가 무언의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다양하지도 않고 풍족하지도 않은 반찬이지만 조금이라도 멈칫거리면 반찬 없이 밥만 남은 사태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이유와 관련하여 막내였던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불리한 입장에 처했었는데 내 젓가락질이 언니, 오빠들에 비해서 많이 서툴렀기 때문이다.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여 콩자반도 한 번에 싸악 집어 올리는 언니와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는 깻잎장아찌를 한 번의 젓가락질로 한 장만 척 들어 올리는 오빠의 젓가락 스킬 앞에서 나는 젓가락 두 짝을 작은 손으로 힘겹게 모았다 벌렸다 해보았지만 젓가락은 X가 될 뿐이었다.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맛있는 반찬은 언니, 오빠들 차지가 되어 버렸다. 밥을 잘 먹고 많이 먹으려면 숙련되고 재빠른 젓가락 기술이 요구되었다.


게다가 엄마 아버지는 젓가락질에 대하여 아주 엄격하셨다. 밥상 위에서 젓가락 사용에 주춤거리기라도 하면 “한국 사람이 젓가락질은 제대로 할 줄 알아야지. 그래야 반찬도 똑바로 집고 밥도 빨리 먹지. 또 젓가락질도 못하면 그게 바로 부모 욕보이는 거야. 알겠어?”라고 하시며 호통을 치셨다. 아버지의 호통은 내가 젓가락질을 온전히 해낼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나는 밥과 반찬을 골고루 재빨리 먹기 위해서라도 젓가락질을 배워야 했지만 밥상 위에서 감내해야 했던 부모님의 호통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몇 달의 노력을 한 끝에 마침내 젓가락질을 아주 썩 잘하게 되었다.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고 보니 좋은 점이 꽤 있었다. 조준한 반찬을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정확히 획득할 수 있었고 헛저(箸) 질을 안 하다 보니 반찬을 빠르게 집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젓가락을 잡은 내 손 모양이나 젓가락의 모양새가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기에도 이전보다 훨씬 그럴듯해 보였다. 나는 노력 끝에 배운 젓가락질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성인이 되고 젓가락질이 서투른 사람을 보면 ‘어릴 때 젓가락질하는 법도 안 배우고 뭐했대? 부모님이 교육을 안 시켰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라고 당당히 외치던 <DOC와 춤을> 노래가 히트한 후 젓가락질에 대한 지적은 쓸데없는 오지랖, 꼰대의 전형 그리고 젊은이들의 구속과 억압에 대한 은유로 상징되고 있기에 감히 타인에게 젓가락질 지적을 할 수는 없었다.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괜찮고‘ ’깔끔하고 시원한 반바지 여름 교복을 지지하는‘ 사람이기에 서투른 젓가락질에 대해 편견을 가진 나 자신의 갭 차이에 스스로도 혼란이 오곤 했다.



젓가락질에 대한 내 기준은 고스란히 내 자녀들에게 전가되었다.


사람은 제아무리 아니라도 외면해도 어린 시절 받은 교육과 부모로부터의 영향이 평생을 가게 마련이며 그 영향은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의 자녀 양육에까지 상당 부분 이어지게 마련이다.


내 경우도 내가 자란 대로 내 아이들은 양육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할 수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젓가락 교육이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내 아버지가 나에게 그러하였듯 나도 내 아들에게 “한국 사람이 젓가락질도 똑바로 못해서 되니?”라고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무렵부터 아이에게 젓가락 잡는 법, 젓가락 움직이는 법, 손의 모양, 손가락과 손의 힘이 가해져야 하는 순간과 위치 등에 대해 밥상머리에서 자세히 말해주었다.

큰 아이는 한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젓가락질 나처럼 못하는 애들 많아. 밥만 잘 먹으면 되지. 친구들 부모님은 뭐라 안 하신다는데 왜 엄마만 이리 까다롭게 해? 안 배울래.” 가장 행복한 시간이어야 할 식사 시간이 훈육의 장으로 변하자 아이의 짜증은 늘어갔다. 이상한 고집에 잡힌 나도 포기하지 않고 협박과 회유를 계속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서 포기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싫어하던 큰 아이는 짜증과 투정을 반복하면서도 젓가락질 배우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숟가락 젓가락 사용은 한국 사람이 김치를 먹는 것과 같은 기본적 생활 관습이니 외국인이 보기에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젓가락질은 할 줄 알아야 한다; V자로 된 젓가락 모양이 X자 보다 더 예쁘다; 젓가락질에 능숙하면 김장 김치도 한 젓가락질로 잘라먹을 수 있다; 부피가 큰 삼겹살도 한 번에 두세 점을 집어 먹을 수 있고 콩자반 같은 작은 반찬도 척척 집을 수 있다; 손의 근육이 발달되면 뇌에도 영향을 끼쳐 두뇌 회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나의 갖가지 주장을 근거라고 말하며 아이를 설득하였다. 내가 주장하는 바가 아이에게 먹혔는지 어떤지 서너 달 때쯤 고생을 한 아이는 4학년이 끝나갈 무렵 젓가락질에 성공하였다.


작은 아이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 때 큰 아이와 같은 방법으로 젓가락질 교육을 시작하였다.


아이마다 기질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다. 열 명의 아이가 있어도 아마 각양각색의 기질과 특성을 보이며 다르게 자랄 것이다.

같은 방법의 호통과 회유에도 작은 아이의 피드백은 큰 애와 같지 않았다.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면 남들이 욕한다”라고 하면 “욕하든가 말든가, 내가 신경 안 쓰면 되지”라고 작은 아이는 말했다. 내가 또 “네가 젓가락질을 못하면 엄마 아빠가 욕먹는다”라고 하면 “엄마, 다른 사람들 말에 신경 안 쓰면 되지, 왜 타인에게 일일이 신경을 써?”라고 도리어 나를 훈계하였다. “젓가락질 제대로 하면 손 근육이 발달하고 그러면 공부도 잘하게 된대”라거나 “그래도 한국 사람인데, 외국인보다는 잘해야지”라고 하면 작은 아이는 “난 공부 체질이 아냐” “괜찮아, 난 외국말 못 알아들으니까”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5학년이 지나고 6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약한 고리일 수 있는 ‘돈으로의 회유’를 꾀하게 되었다. 바로 젓가락질 제대로 할 때까지 용돈 50% 삭감을 내세웠던 것이다. 아이는 “이건 아주 폭력적 방법이야. 독재야 독재!”라 외치며 몇 차례 저항을 했지만 결국 악법에 굴하고 말았다. 용돈 삭감을 당하고 나서 젓가락을 손에 쥐고 다니면서 젓가락질을 연습하였다. 줄어든 용돈의 압박 때문이었는지 제법 커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작은 아이는 용돈 삭감 조치를 단행한 지 한 달도 채 안되어 젓가락질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용돈은 제자리를 찾았고 특별 보너스까지 지급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 집 두 아이는 또래에 비해 젓가락질을 아주 잘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밥을 같이 먹는 일이 흔해지고 있다. 직장 동료, 학교 선후배, 친구, 각종 모임의 지인들까지 사람들은 타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나의 경우 그럴 때마다 그들의 젓가락질이 눈에 들어온다.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간혹 젓가락질을 못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10대와 20대들은 그 수가 더 많을 것이다. 아주 친하게 되어 속을 터놓는 사이가 되면 나는 “젓가락질 아직 잘 못하네. 이제라도 배워서 제대로 좀 하는 게 어때?”라고 넌지시 말을 걸어본다. 그러면 대부분 “어릴 때 안 배우니 잘 안되네요. 지금이라도 제대로 하려고 하니 답답해서. 또 크게 불편하지도 않아요.”라고 한다. 본인들이 밥 먹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데 내 아이들에게 하듯이 호통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현대 사회에서 젓가락질이야 어떻게 하든 개의치 않는 분위기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젓가락질이야 V자로 하든 X자로 하든 밥만 잘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학문적 근거까지 마련되어 있는데 한국학중앙연구소의 주영하 교수는 2014년 1월 국민일보에서 올바른 젓가락질이 올바른 식사예절이라는 상식은 일제강점기 이후 일제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젓가락만으로 식사를 하는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던 시기에 그들의 문화를 강제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음식 문화를 오래도록 연구하신 분의 주장이니 맞는 말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올바른 젓가락질이 올바른 식사예절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해서 젓가락질을 올바르게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면 젓가락 혹은 저에 관한 기록은 태조 임금님 대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고 ‘젓가락’만으로 언급된 횟수가 64건 정도가 되며 ‘수저’로 통합하여 찾으면 거의 천여 건 정도가 된다. 이는 우리가 젓가락을 아주 오래전, 적어도 고려 때부터는 사용하였다는 것이겠다. 갖가지 반찬이 차려진 7첩, 9첩 혹은 임금님의 12첩 반상에서 양반들과 임금님이 숟가락만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젓가락을 모양 빠지게 X자로 잡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서양의 식사 예절에 대해서는 사용법과 예절을 아는 것을 에티켓이라 여기고 있다. 심지어 나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가정 시간에 서양식 포크와 나이프 사용하는 것을 배우기까지 했다. 요즘은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포크와 나이프의 식사는 격식을 갖춰야 할 것 같고 숟가락과 젓가락의 식사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인식이 남아있다. 하지만 오히려 서양에서 포크를 사용한 지 300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 전에는 손으로 음식을 먹었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만 봐도 음식만 있을 뿐 음식을 집을 도구는 전혀 그려져 있지 않다.

최후의 만찬.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포크는 사용하는 법을 따로 배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용이 간단하지만 젓가락은 고도의 손 사용 기술이 요구되는 난이도가 높은 식생활 도구이다. 나는 한 차원 높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식생활 습관을 잘 익히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털어놓기만 해도 아이들은 질색을 한다. 엄마의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치고 절대 타인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필시 오지랖 넓은 전형적인 꼰대로 인식될 것이며 엄마에 대한 편견이 생길 것이므로 조심하라고 얘기를 하면서.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젓가락질 가르친 이야기를 하려다 젓가락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젓가락질을 잘 배운 두 아이들은 올바른 젓가락질에 대해 아주 편리하게 생각하고 있고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 말마따나 나는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젓가락질에 대한 오지랖을 계속 참아야 하는데 내가 잘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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