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용돈 교육의 점수는요...

내 자녀 용돈 교육법 - 2

by 홍월

#2012년 겨울

아들아이가 못 보던 겨울 파카를 입고 귀가했다. 병아리 노란색 바탕에 어깨 부분에 까만 천이 덧대있는 노스페이스 눕시 다운 패딩이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노스페이스 패딩 없는 애는 자기밖에 없다며 하나 사달라고 졸랐을때 나는 단칼에 거절했었다. 나도 비싸서 못사입는 고가의 패딩을 중학생이 사 입는단 말이냐며 꼭 입고 싶거든 네 능력으로 알아서 하라고 단호하게 말했었다. 그랬는데 미쉐린 타이어같은 패딩을 걸치고서 집엘 들어온 것이다. 나는 사주지도 않았는데.

“그 잠바 누구 거니? 친구거야?”

“내 돈으로 샀어.”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야구 글러브 하나 팔고 친구 숙제 대신 해주고 내 옷 하나 주고, 해서 6만원에 샀어. 엄마가 안 사줘서 내가 돈 모아 알아서 산거니 뭐라 하지 마.”

새 노스페이스 패딩을 산 친구가 흔쾌히 중고 가격으로 아들에게 그 패딩을 넘겼다고 했다. 스스로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를 보고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맹랑하다고 해야 할지 잠시나마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2020년 여름

여름이라 눅눅한 냄새가 집안 곳곳에 배이는 것 같아서 딸아이에게 외출할 일이 있거든 디퓨저를 사오라고 했다. 집안에 어울리는 디퓨저는 나보다 딸이 더 잘 고를 것 같았다. 외출에서 돌아온 딸애가 향기로운 디퓨저 두 개와 영수증을 같이 내밀었다. 하나에 만 육천 원, 두 개에 삼만 이천 원짜리였다.

“삼 만원만 보낸다. 이의 없지? 요전에 엄마 문화상품권 네가 가져갔으니 쌤쌤인거다?”

“엄마가 이천 원 떼 먹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였네. 알았어. 삼 만원은 지금 바로 좀 입금해줘.”

화목한 가정의 엄마와 딸의 대화였다.



돈에 관한 한 나는 엄격하게 교육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 무언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주 상기시키곤 했다. 아이들이 돈의 소중함과 돈 모으기의 어려움을 일찍부터 알았으면 했다. 그런 이유로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사천 원. 학교생활과 관련된 것은 따로 지급하기로 하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은 용돈에서 본인이 알아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12년 전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초등 4학년의 일주일 용돈 사천 원은 넉넉지 않은 액수였다. 나는 아이들이 돈이 부족한 듯한 생활을 했으면 했다. 그래야 돈이라는 취급하기 어려운 상품을 쉽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부족한 돈이 있으면 노력으로 충당하라고 얘기해주었다. 예를 들면, 현관 정리, 설거지, 방청소, 심부름 등이었는데 노동의 강도에 따라 200원에서 500원까지 보수로 지급하였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용돈을 보충하는 데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하였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참고서를 산다고 하곤 엄마에게 속된 말로 ‘삥땅’을 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는 옛말처럼, 내가 경험이 있으니 아이들이 학업에 필요한 것을 살 때 반드시 영수증을 받아서 나에게 보여 달라고 하였다. 영수증에 찍힌 금액만큼 나는 아이들에게 지불을 해주었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 지불을 할 일이 있더라도 꼭 영수증을 챙기는 버릇을 들이라고 하는 건 당연히 따라가는 조언이었다.

별다른 타당한 이유 없이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우리 집 경제 교육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그래서 어떤 자그마한 물건을 살 때도 여러 번을 고심하였다. 문방구에서 마음에 드는 스티커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딸애를 볼 때 몇 푼하지도 않는 그깟 스티커 그냥 덥석 쥐고 계산을 하고 싶은 유혹은 매번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들숨 날숨 고르게 내쉬며 유혹을 뿌리치곤 했다. 아이에게 내가 세운 원칙을 깨고 싶지도 않았고 간절한 신호를 보내면 부모님은 쉽게 들어준다는 믿음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money-2696228__340.jpg 출처: https://pixabay.com/ko/photos


나와 남편은 밥상에서 돈과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간혹 나누었는데 실제보다 많이 축소해서 얘기하곤 했다.


“엄마, 아빠 월급은 000원 밖에 안돼. 적지? 우리 모두 아껴 써야 해. 안 그러면 우린 빈털터리가 될 거야.”


라며 과장된 거짓을 말하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것이 진심인 줄 알고 용돈 인상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째째한 엄마덕택에 적게 쓰는 것에 어느 덧 익숙해져 있었고 나름대로 그들의 가계를 운영할 줄도 알았다. (물론 이 정책은 아들이 중학 2학년쯤 되니 더 이상 먹히지는 않았다.)


아이들 용돈은 일 년에 천 원씩 인상되었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간의 물가 인상률을 반영하여 둘째 딸아이가 고3이었을 때 사만 원까지 인상되어 지급되었다. 어린 시절과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절제와 절약을 몸에 익힌 아이들을 보며 흐뭇해하면서 나는 원칙을 잘 적용하며 용돈 교육을 잘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얼마 전 딸애가 <올리브영>에서 육천 원짜리 틴트를 하나 사려다가 발걸음으로 그냥 돌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틴트는 이미 두어 개가 있는데 그 색깔이 너무 예뻐서 추가로 살까 했는데 꼭 필요한 아이템이 아니어서 충동구매 같아서 사지 않고 그대로 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행했던 용돈 교육을 약간 후회했다. 지금은 용돈도 많이 올랐고 아르바이트도 해서 통장에 제법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자신을 가꾸기 위해 육천 원을 쓰는 것조차 저렇게 심사숙고해야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왔다. 외모를 가꾸는 것은 나를 위한 소비일진대 그것도 20대의 여자 사람이. 그런데 딸애는 절제의 미덕을 너무 많이 몸에 익혀버렸다.


그 정도 소비는 해도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틴트를 갖고 싶다는 욕망과 이미 몇 개를 갖고 있다는 이성의 대립에 자신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 고백을 듣는 내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다운로드.jpg 이미지출처: http://edu.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01/2015040101540.html

내가 심한 용돈 교육을 한 것은 아닌지, 절약을 강조한 것이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합한 경제 교육이었는지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이 된 지금 나는 헷갈리고 있다. 지금의 나라면 절약과 함께 돈을 잘 쓰는 방법과 투자, 금융 등에 대해서 더 많이 얘기해 주었을 텐데 그 때는 나도 그런 것을 잘 몰랐다. 오로지 절약과 저축이 내가 아는 경제 지식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돈에 대해서 잘 배운 건지 잘못 배운 건지 제대로 알려면 그들이 경제적 독립을 하고 자신만의 금융 포트폴리오를 세울 때라야 가능할 것이다. 과연 내 교육의 점수는 몇 점이나 될지 나조차도 너무나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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