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를 거쳐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이 대한민국 거의 모든 청소년의 여가를 차지하면서 이것은 엄마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화두가 되었다.
우리 집 두 아이들은 ‘써든 어택’ ‘태일즈 러너’ ‘피파온라인’ ‘카트라이더’가 한창 인기를 끌던 때 게임의 세상에 눈을 떴고 게임이라는 말초적이고 황홀한 세상을 경험해버린 아이들을 상대로 나 역시 컴퓨터 사용에 있어 얼마의 시간을 허락해야 가장 최적의 배분이 될까를 두고 거듭 고뇌를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3~4학년이었던 아들에게 허락한 시간은 일주일에 두 시간. 지금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다고 항의하는 엄마들이 많을 것 같지만 기억해주시길, 때는 2008~2009년 무렵이었고 지금보다 컴퓨터 게임 사용 빈도와 노출이 빈번하지 않았다. 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컴퓨터에는 아이들 수준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암호(우리 회사에서 생산하던 제품 시리얼 번호)를 걸어놓았고 내가 집에 있는 퇴근 후나 주말에만 컴퓨터 사용을 허하였다. 무언가를 규칙으로 정하면 늘 그러하듯, 아이들은 일주일에 두 시간의 컴퓨터 사용 시간은 친구들과 비교해볼 때 터무니없이 작은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집은 독재다.” 아이들의 외침에 나는 “그럼 민주적인 친구 집엘 가든가.”라고 고수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내 규칙이 심하게 엄격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하나의 해결책을 도모했는데 그것이 바로 ‘보상 규정’이었다.
보상규정이란 무엇이냐, 착한 일을 하면 컴퓨터 사용 추가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착한 일이란, 집안일 거들기와 시험 점수 올리기였다. 집안일의 종류에는 집안 청소, 심부름하기, 설거지하기 등이었는데 집안 청소에는 방 1개당 쓸기와 닦기가 구분되어 추가 시간이 제공되었다. 시험 점수 올리기는 평균점수가 3점 이상 올라가면 올라간 점수 폭에 따라 다른 추가 시간이 제공되었다. 컴퓨터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정책에 아이들은 두 주먹을 쥐어 올리며 ‘앗싸!’ 를외쳤다.
보상 규정 정책은 도입 초기에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시험 점수를 올렸을 때 추가로 제공되는 게임 시간은 다른 것보다 보상 규정이 상당히 후했었다. 이는 엄마의 사심이 반영된 정책이었다. 당시 평균점수 80점대 중후반이었던 아들은 기말고사와 중간고사를 거치는 동안 각각 평균 점수 5점과 3점 정도로 평균 점수가 올랐다. (물론 내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다. 너무 오래전이라) 아들은 꽤 많은 시간의 추가 시간을 얻어서 주말에는 하루 종일 게임만 하기도 했다.
집안일 거들기의 경우 보상으로 제공되는 추가 시간은 많지 않았으나 수시로 시도하여 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아들과 딸은 게임이 하고 싶으면 스스로 자청하여 방을 쓸기도 했고 마트에 심부름도 자주 갔으며 심지어는 물걸레로 방을 닦기까지 하였다. 이것이 보상 시간이 가장 높은 집안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퇴근 후 집안일을 직접 하지 않고 기꺼이 도맡겠다는 아이들에게 집안일에 대한 권한을 이임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내게 의도치 않게 꿀맛 같은 여유와 휴식을 가져다주었다.
보상 정책이 삐거덕거린 것은 이 의도치 않은 ‘꿀맛 같은 여유와 휴식‘때문이었다.
아이들 덕분에 자잘한 집안일에서 몇 번 해방되어보니 퇴근 후에 ‘시든 시금치’ 같았던 나는 ‘흐르는 물에 갓 씻어낸 상추’처럼 파릇파릇해졌다. 나는 꾀를 부렸다. 집안일이 하기 싫은 날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청하지 않는데도 추가 시간을 더블로 주겠다고 하고 소소한 집안일을 시켰다. 처음에 좋아라 하며 방청소를 하던 아이들은 몇 번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안 하겠다고 말했다. 컴퓨터 게임 더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느냐는 내 질문에 아이들은 “우리한테 게임 시간을 줄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일 시키는 것 같아. 같은 일인데도 전혀 즐겁지가 않고 뭔가 기분 나빠”라고 답했다.
아이들은 비록 호구로 보일지라도 톰 소여가 하는 페인트칠을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톰의 친구이고 싶었지 고모에게 페인트칠을 억지로 떠맡은 톰 소여는 되기 싫었던 것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cswoo0625/221340472839
점수에 따른 추가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역효과를 내고야 말았다. 처음 5점, 3점의 점수가 올랐을 때는 상당한 추가 시간을 얻었고 그 시간을 즐겼던 아이들은 가장 최근에 받았던 점수보다 항상 높아야 추가 시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점수 올리는 것을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평균 점수 93점이면 꽤 잘한 점수이고 추가 시간을 받으려면 이제 최소한 95점은 되어야 하는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보상을 받을 확률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아예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다. 아이들이 남긴 말은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좀 치사하다. 안 하고 말겠다.”였다. 두 아이 다 비슷한 이유로 보상 규정은 얼마 안 가서 폐기되었다.
1949년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붉은 털 원숭이에게 간단한 기계장치 퍼즐을 풀게 하는 실험을 했다. 외부 자극도 없고 문제를 풀라는 압박도 없는 실험이었는데 원숭이들은 퍼즐을 푸는데 상당한 집중력과 흥미를 보였으며 이내 퍼즐을 풀게 되었다. 이후 퍼즐을 풀면 건포도를 보상으로 주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원숭이들은 처음에는 이전보다 더 잘했지만 이내 곧 실수도 하고 속도가 더 느려져서 전보다 못한 성과를 냈다고 한다.
실험을 했던 해리 할로우는 원숭이들은 퍼즐을 푸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고 행위 자체가 동기부여와 보상이 되었다고 판단하여 ‘일의 수행이 내재된 보상을 제공’한다는 이론을 만들었는데 보상은 단기간의 촉진제가 될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동기를 오히려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제자들을 통해 이 이론은 1970년대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나는 ‘당근과 채찍’ ‘상과 벌’이 자녀의 교육과 인적 자원의 양성에 큰 도움이 되는 이론이라고 알고 있었다. 강압과 처벌은 반항과 저항을 일으킬 수 있고 칭찬과 상은 자만과 게으름을 부를 수 있으니 이 둘의 적절한 조합과 배합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인재를 훈련시키면 최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십여 년 전 내 경험은 ‘당근과 채찍’과 ‘상과 벌’을 적절하게 교대로 주는 것이 자녀 교육에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남겨주었다. ‘만약에 ~하면 ~을 대가로 줄 것이다’는 보상 정책은 겨우 1년 남짓 지속되었으며 적어도 내 경우에는 ‘실패’였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그때 ‘꿀맛 같은 여유와 휴식’을 취하지 않고 아이들이 자율적으로(Autonomy) 게임시간을 요구하게 하고 집안일과 점수를 올리는 것에 아이들의 유능감(Competence)을 발휘하도록 믿어주었다면 십 년 전 내 보상 정책은 어떻게 끝이 났을까? 우리 아이들은 보상을 위해 치르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수준까지 나아갔을까?
지나간 것은 거의 늘 아쉬움과 후회가 남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지나간 과거에 대한 의미 없는 ‘만약에’는 그만하는 걸로. 다만 육아가 현재인 후배 엄마들에게는 나보다 현명한 방법을 찾아보시기를 권유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