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아들때문에 사주명리까지 공부했다.

사춘기 자녀를 이해하는 법

by 홍월

중2는 이제 계층이 되었다. 그것도 아주 고위 계층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사춘기를 대표하는 말로 '중2' '중2병'을 쓰고 있다. 예전에는 사춘기가 고등학생이었는데 성장이 빨라지고 지적 성숙도 뒤따르면서 사춘기도 빨라졌다. 그래서 15여년 전부터 우리는 "우리 애는 사춘기야"는 말 대신 "우리 애 중2병 걸렸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김정일도 무서워서 못내려온다는(그때는 아직 김정일이 살아있었다.) 중2병이 한창 대한민국에서 유행하고 극성일 무렵 아들이 사춘기를 맞았다. 정확히 중학교 2학년때이다. 아니, 시작은 중학교 1학년 2학기 무렵이었다. 그리하여 1년이 넘게 지독한 사춘기는 지속되어 나를 괴롭혔다.


시작은 방문을 걸어 잠근 것부터였다. 곧장 거실로 나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캐치볼도 하고 이런 저런 대화를 잘 나누던 아이였는데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지나고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부터 집에 들어와서는 방문을 닫기 시작했다. 내가 볼 일이 있어서 문을 열었더니 노크도 안하고 문을 벌컥 연다고 대뜸 성을 내었다. 다음 번부터는 꼭 사전에 노크를 할 것을 약속했다.


노크를 하고 '들어오세요'라는 대답이 있기 전에 문을 먼저 열었더니 저번보다 더 화를 냈다. 내가 무안할 정도로. 노크도 하고 대답을 들은 후에 방문을 열기로 약속을 했다. 내 참 더러워서. 그 이후로 방문을 닫은 것을 너머 방문을 잠그기도 했다. 나는 잠긴 방문 너머 그 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쿨~한 엄마이고 싶었고 아이들에게서도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와는 달라. 우리를 잘 이해하고 아주 쿨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멋진 엄마이고 싶었다. 하지만 멋진 엄마가 되기에는 나는 아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침 밥상에서 반찬 투정이 잦아졌다. 매번 다른 반찬을 준비해야만 했다. 아침에는 출근에도 정신이 없었기에 퇴근 길 저녁 마트에 들러 장을 봐서 아침에 먹을 반찬과 요리를 해야했다. 없는 솜씨에 요리책을 뒤적거려 가며 준비를 했는데도 아침 밥상에서는 맛이 없다는 둥, 매번 같은 것만 하고 새로운 건 할줄 모르냐는 둥 궁시렁부터 짜증, 화를 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반찬 투정을 부려서 내 속을 긁어댔다. 아니, 속을 긁어대는 정도가 아니라 아들은 내게 인생의 의미까지 곱씹게 해줄 정도로 다양하게 투정을 부렸다.


아침에 아들이 화를 안내고 아침을 잘 먹고 등교하면 내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서 내가 자식을 잘 키우고있는 것같고 나는 열심히 돈만 벌어오면 되는 것 같았다. 반대로 아침부터 아들과 한바탕 언쟁을 벌이는 날에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자식에게까지 욕을 들어가며 이리 바쁘게 생활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 지경이었다.

아이들이 훨씬 더 어릴 때 갓난아기일때 그 힘든 시기도 잘 견뎌냈는데 제 발로 학교도 가고 등하교 안전도 근심이 덜 할 시기인데 이놈의 사춘기 아들은 내 회사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내 속을 썩였다.

회사와서도 아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내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정말 나는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전부 다 잘 살자고, 아이들 잘 키우고 행복하게 살려고 회사를 다니는 것인데 아들이 행복해하지 않고 이로써 내가 행복하지 않으니 회사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사춘기를 이미 보낸 아이들-특히 아들-을 둔 주변인들에게 숱한 자문을 구했다.

"애들 사춘기 어땠어요?"

"사춘기 얼마나 가던가요?"

"어떻게 하니까 사춘기가 무사히 지나가던가요?"

그러면 선배맘들의 거의 모두들 다 하는 말은 "닶 없다. 그만 내비둬야 한다. 시간이 가니 저절로 괜찮아지더라"라는 뻔한 말들뿐이었다. 하지만 내 속은 여유만만한 그들의 말과는 달리 까맣게 타들어갔다. 정말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할만큼.


나는 여자이고 아들은 남자라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도 행동도 내가 아는 사춘기의 것들이 아니었다. 원래 남자들은 저렇게 사춘기를 보내는가? 남편에게 물어보아도 자기도 모르겠단다. 기억이 안난단다. 참, 기가 막혀서. 자기 아들인데 저리도 무심하다니!


학교 담임하고도 상담을 했다. "어머니, 아드님이 많이 별납니다. 학교에서도 주위산만해서 친구들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 공부를 방해하기도 하고. 신경 좀 쓰여야겠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약간 문제가 있다는 듯이 멘트를 하셨다. 이 말을 듣고보니 내 걱정은 더해졌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2 여름방학이 지나도록 아들의 사춘기 증상은 개선되지 않았다. 짜증과 반항은 더욱 심해졌고 대화는 단절되다시피 했다. 나는 이런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면 살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말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급기야 지인의 소개로 용하다는 철학관을 찾았다. (점집이 아니다.)


'금송철학관' - 사주명리, 택일, 작명, 풍수

아들의 사주와 가족의 사주를 모두 넣었다. 명리학을 하시는 여자선생은 꼼꼼히 사주를 살펴보더니 무심히 말했다. "한 2달만 잘 지켜보면 괜찮아집니다. 그 때가 되면 본인이 알아서 공부한다고 할터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2달이 지났다. 아들은 어느날 갑자기 말했다. "엄마, 공부를 해야할 것 같아요. 좋은 고등학교 가고싶어요. 좋은 학원에 보내주세요." 이 말을 들은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백만원짜리 학원이라 하더라도 선뜻 돈을 내어주었을 것이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돌이켜 가만히 생각해보면 중2가 거의 끝나고 중3이 곧 다가오니 정신을 차린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내 삶에 회의가 들게 한 장본인이 스스로 공부를 좀 해보겠다는 말을 하니 깊이 생각해 겨를이 없이 그저 좋을 뿐이었다. 동시에 사주명리 여선생님이 너무도 신통방통했다. 타고난 사주팔자(여덟 글자)만으로도 성격 파악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진행될 미래를 알 수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앞으로 인생살면서 궁금한 점들이 생길테고 또 곧 둘째도 사춘기에 접어들텐데 그때마다 철학관을 찾아가기 쉽지않을거같아서 내가 배워볼까 생각이 들었다. 2년 뒤 나는 아들때문에 방문했던 그 철학관에 교육생으로 등록을 했다. 천간, 지지, 형충합, 십이운성, 생극제화, 육친까지 약 10개월 정도 사주를 공부했다. 기본기정도만 깨우쳤는데도 중 2때 아들의 특성을 대략은 알 수 있었고 아들 중 2때 사주선생이 그렇게 말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딸이 시춘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딸의 사주를 보았다. 안타깝게도 우리 딸은 중2부터 대학교 2학년 정도까지 조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것으로 예상되었다. 즉, 딸 역시 힘든 사춘기를 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딸의 경우에는 달랐다. 내가 미리 딸의 심경과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들의 경우처럼 이유도 모르고 답답하니 가슴을 치지는 않았다. 예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본인이 잘 견딜 수 있도록 잘 지켜봐주고 지지해주면 되었다. (물론, 그 어느 부모가 자식이 힘들어하는데 그저 지켜보기만 할 수 있겟는가? 딸의 사춘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쉬운 아이는 하나도 없다.)


아이를 하나 키울때마다 부모는 고행을 통해 부처가 되는 지름길에 접어드는 것 같다. 고행을 버티는 것 중에 나는 사주명리학까지 공부를 하였다. 물론 내 배움은 손톱정도의 지식밖에는 되지 않는다. 지금은 개인적 사정으로 공부를 중단하여 더 이상 진전이 없지만 그래도 사주명리를 공부한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고 있다. 내 마음의 수행도 되는듯 하다. 미래를 보는 실력은 턱도 없지만 어도 기질 파악정도는 기본기로도 가능하지않나 한다.

적어도 내게는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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