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언어

고요 너머 초록색 소란

왼쪽부터 무늬몬스테라 필로덴드론플로리다고스트 슈가바인 필로덴드론에메랄드그린 필로덴드론버킨

식물의 고요가 좋다. 식물들과 나만 있을 때 느껴지는
이슬같이 싱그런 고요가 좋다. 식물의 고요 너머에 있는 소란이 좋다.  무늬 몬스테라의 무늬 만드는 소리, 슈가바인의 실 같은 새순이 살찌워지는 소리, 필로덴드론 버킨이 잎에 그림 그리는 소리, 필로덴드론 플로리다 고스트 새잎이 나올까 말까 고민하는 소리, 필로덴드론 에메랄드 그린이 공중 뿌리 내는 소리, 지구가 굴러가는 소리처럼 너무 거대해서 들을 수 없는 고요 너머 초록색 소란에 오늘 귀 기울여본다.

관음죽 아비스 알로카시아웬티 무늬관음죽 공중에는 마블스킨답서스

열대의 야자나무 같은 느낌이 들어 크게 키운 관음죽을 거실 창 앞에 두었더니 너무 뜨거워서 힘이 없어요 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안방으로 옮겨서 간접광을 주니 금방 또 좋아서 살랑거린다. 아비스는 고사리과답게 물을 좋아하는데 자주 목이 말라요 물 주세요 라고 온 잎으로 나에게 말한다. 흠뻑 물을 주고 나면 감사인사라도 하듯 돌돌 말린 새순을 여러 개씩 올려낸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식물의 언어를 조금씩 이해하는 일이다. 물 주는 것 하나만 보아도 며칠에 한 번씩 주라는 말은 그 개체가 물을 좋아하는지 덜 좋아하는지를 살짝 알려주는 정도다. 개체를 들이고 내 반려식물로 지켜보는 순간 그 식물과 나와의 소통이 시작된다. 반려식물과의 충분한 소통으로 물주기 타이밍을 만들어가는게 좋다.

모두 싱고니움 종류들이다 열두시부터 시계방향으로 싱고니움골드올루션 무늬싱고니움 초코싱고니움 핑크싱고니움 싱고니움 벨벳싱고니움

싱고니움들과의 소통은 비교적 쉬웠다. 싱고니움은 물을 좋아한다. 평소에 하트들을 힘 있게 쏘아대다가 물이 부족하거나 하면 조금씩 힘이 없어지고 안에 들여다보면 누런 잎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전에 물을 흠뻑 주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가 돈다. 그리고 병충해 때문에 잎의 뒷면을 자주 봐준다. 싱고니움의 언어는 나름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바람 불거나 하면 여린 잎들을 자기들끼리 살랑거리며 광합성을 하며 끊임없이 새잎을 내는 소리가 들리는 싱고니움들은 너무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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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카시아들의 언어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몇 년째 알아가는 중이다. 알로카시아 오도라를 첨으로 알로카시아 실버드래곤 알로카시아 블랙벨벳 알로카시아 웬티까지 키우는 중인데 알로카시아와의 소통은 아직 어렵다. 과습으로 죽기 쉬운 아이들인데 식집사들에겐 물 안 주는 거만큼 힘든 일도 없다. 물을 아껴주고 물을 준 뒤에는 말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공중 습도는 또 넉넉히 유지해주는 걸 좋아한다. 알로카시아들의 언어는 아직 너무나도 어렵지만 알로카시아의 시원하고 매력적인 잎맥을 만드는 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이다.

무늬몬스테라 새잎이 펴지는 순간

오늘은 무늬 몬스테라가 새잎을 내려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고요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식물들은 자기들만의 언어로 소란스럽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종종 고요가 위안이 되고 식물들의 소란은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