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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Aug 13. 2020

키움의 매력

필로덴드론 버킨

햇살로 샤워하는 식물들을 보면 내 감성도 시원해진다



  식물을 보러 가게 될 때는 거의 즉흥적으로 간다. 불현듯 초록의 무늬가 그리워지거나 꽃이 고파지거나 새로운 잎맥에 대한 지적 호기심 같은 것들이 떠오를 때면 근처의 화훼단지로 간다. 나를 채워줄 무언가를 향해 가는길은 언제나 즐겁다. 식물의 세계는 굉장히 넓다. 누군가에겐 그저 식물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부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로는 모든 식물들은 세분화되고 구체화되어서 다가온다. 꽃식물과 관엽식물도 처음에는 다같은 식물이었지만 이제는 꽃과 관엽들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고 관엽의 종류도 나누어서 볼수 있게 되었다. 화훼단지를 둘러보면 이름을 아는 식물들이 자연스레 많아지게 되었다. 한 바퀴 도는 동안 마침표 하나 없이 느낌표나 물음표 같은 내적 감탄사를  늘어놓는다. 알록달록 절화며 정글 같은 관엽들을 구경하는 나는 잠시 초록이 되어 이산화탄소 같은 걱정 따위는 가뿐히 소화시켜  밝은 에너지 같은 산소를 뿜는다.


그때 마침 새로운 잎맥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식물을 만났던 것이다. 식물원에서 식물 구입을 할 때는 내가 원하는 식물보다는 컨디션이 좋은 식물, 건강해 보이는 식물을 주로 구입하는 편이다. 유난히 건강해 보이는 식물을 들고 가격과 이름을 물어보았다. 초록색 잎맥에 하얀 세필로 선을 그려놓은 듯한 처음 보는 아이였다. 필로덴드론 버킨이었다.




필로덴드론 버킨의 처음 만난 모습

 


초록색 바탕이 많은 잎도 있고 흰색 펜으로 약하게 그려놓은 잎이 있는가 하면  테두리까지 기막히게 그려놓은 잎도 있었다. 첫눈에 반하고 만 이 비주얼을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필로덴드론 종류라 순둥순둥 하게 잘 자랐다. 새잎도 여기저기에서 올라왔고 뽀득뽀득 소리 내며 올라왔다 밤새 다른 누군가 와서 새 잎마다 손으로 그려놓았는지 새잎마다 그림이 달라서 더 매력적이었다.  내 마음의 잎맥에도 감성들이 그려졌다. 버킨이 풍성해지는 동안 내 감성도 고요한 풍성함을 더해갔다.




제법 풍성해진 버킨 공중뿌리 난 곳을 잘라보았다


풍성해진 버킨을 보니 공중 뿌리 난 것이 있어 싱고니움처럼 물꽂이를 해보아야겠다 싶어 잘라주었다. 처음 키우는 식물은 매일매일 관찰하며 보살피며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지켜본다. 물을 자주 줬더니 노란 잎이 지길래 좀 건조한 걸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상대에 끊임없이 맞춰주는 동안 나의 배려는 깊어지고 성장하고 있었다. 내가 버킨을 키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버킨이 나를 키우고 있는 것이었다.



저번 공중뿌리난 것은 흙에 심어주고 또 다른 물꽂이 버킨을 만들었다


반년 동안 버킨이 풍성해지는 동안 나의 감성과 배려도 풍족해졌다. 나는 버킨이라는 우주를 매만지면서 행성 같은 잎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알아갔고 나의 영역 또한 넓어지고 확장되어갔다. 이제 또 어떤 우주를 만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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