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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Jul 23. 2020

싱그러운 싱고니움

나눔의 미학

내가 짠 레이스와 너무 잘 어울리는 싱고니움


싱고니움은 언제 봐도 싱그럽다. 싱고니움은 실내에서도 키우기 쉽고 잎 한 장 한 장마다 무늬가 이뻐 오래 두고 보아도 새로운 초록같이 어여쁘다. 한 움큼 정도 물에 꽂아놓았던걸 엄마에게 나눔 받아 흙에 심고 3년 정도 키웠다. 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건조에도 잘 견디는 싱고니움은 물을 오랫동안 주지 않으면 줄기와 잎이 축축 쳐진다. 힘이 없어서 축축 늘어진다 해도 물을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난다. 줄기에 힘이 들어가고 잎에는 물을 머금어 촉촉함이 보인다. 그동안 물꽂이 번식을 통해서 아기 화분을 네 개나 만든 기특한 싱고니움이다.  반그늘이나 볕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꽤 잘 자라기 때문에 화장실 같은 곳에도 포인트로 싱고니움을 놓아둔다.



커피를 마시고 난 종이컵에 꽂아놓아도 이쁜 싱고니움


 물만 주면 잘 자라는 싱고니움은 가장 사랑하는 식물이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좋았다가도 귀찮아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예뻐 보이기도 하고 금세 질리기도 한다. 한 식물에도 마음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신기하게도 그 식물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같은 식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싱고니움이다.

 번식하기도 쉽다. 곳곳에 공중 뿌리 난 곳을 가만히 살펴보고 공중 뿌리가 살아있게 잘라준다.  그것을 물에 꽂으면 공중뿌리가 더 길게 자라고 잔뿌리들을 내리게 하면 싱고니움이 번식하게 된다. 풍성하게 자라서 빽빽해 보이면 가위를 들고 여기저기를 잘라본다. 마치 미용실에 온 더벅머리 손님의 숱을 쳐주는 느낌이랄까. 번식의 목적으로도 컷팅을 하지만 원래 손님이 더 이뻐지고 잘 자라도록 하는 게 더 우선이 된다. 한결 가벼워지고 앞으로 더 멋지게 머리가 자라도로 컷팅을 해준다. 컷팅한 머리카락들을 물에 담그면 다시 자란다니 이보다 더 신기한 일이 있을까. 이렇게 물꽂이 한 것을 물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곤 한다. 식물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식탁 위나 공간의 구석에서 초록초록하게 싱그러움을 밝히고 있는 싱고니움을 본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 싱그러운 생명체에 시선이 머물고 만다. 그 시선을 놓치지 않고 예쁜 병에 꽂아놓은 싱고니움을 선물한다. 물꽂이 한 싱고니움을 받아 들면 하나같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우연히 다음번에 그 지인 집에 가게 되면 꼭 식탁 위에 유리병에 그때 들러 보냈던 싱고니움이 파릇하게 꽂혀있다. 유리병엔 전에 없던 마끈 리본이라도 이쁘게 둘러져있다면 너무 기분이 좋다. 

  수경한 싱고니움을 화분에 심어서 선물하기도 한다. 가끔 싱고니움을 받은 사람이 잘 자라고 있다고 안부 사진을 보내온다. 안부 속에 싱고니움은 새 잎을 내며 나에게 눈인사를 찡긋거린다. 

 싱고니움을 여기저기 잘라 나눔 하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싱고니움은 더 풍성하게 자라난다. 잘린 곳에서 최소 두 군데로 또 새 잎이 나는 마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상은 나누면 내 것이 더 많아지는 것으로 설계되었는지도 모른다. 새잎이 다시 나올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 뿐인데 눈앞에 당장 없어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지느라 잠시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나눌수록 더 커지는 싱고니움의 매력은 키울수록 더 잘 알게 된다.


화분에 있는 싱고니움과 공중뿌리를 잘라 수경해놓은 싱고니움과 진한색이 매력적인 초코싱고니움



 필리핀에 삼 년 정도 살 때에 실내에 식물은 너무 키우고 싶었다. 흙에 담긴 식물을 가지고 와서 베란다에 놔두었는데 개미가 너무 많이 나와서 키울 수가 없었다. 그때 싱고니움이 생각났다. 어디서 흙에 담긴 싱고니움을 구해와서 흙은 버리고 깨끗이 뿌리를 씻어서 수경으로 싱고니움을 키웠다. 처음 초록을 집 안 들였을 땐 너무 기분이 좋았다. 수경으로 키워도 번식도 하고 잘 자라서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였다. 파릇파릇함이 그 사람의 마음에 초록빛으로 물들고 내 마음에도 똑같이 싱그러움이 피어난다. 마치 붓을 물에 넉넉히 적시고 초록색 물감을 묻혀 내 마음에 콕 찍으면 환하게 초록빛이 번지는 것 같다. 내가 나누어준 그 식물들은 또 어디에서 즐거운 나눔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딘가에서 또 즐거운 나눔을 하고 있을 싱고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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