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의 향이 후각세포를 깨운다. 블랜더에 넣어 사각사각 갈리는 소리에 청각까지 기지개를 켠다. 드리퍼를 깔고 뜨거운 물을 부어내면 거품들이 커피 향과 함께 어느 바닷가 파도의 포말처럼 나에게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새로운 동그라미를 자꾸 그려가면서 더욱 진해지는 원을 바라본다. 세상의 모든 이유 없는 기쁨들이 더욱 진해지며 내려가고 있다.
따뜻한 커피를 가득 내리고 오늘은 누구와 이유 없는 기쁨들을 나누어볼까 두리번거린다. 잎이 제법 크고 무늬가 이뻐서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오레우스스킨답서스와 함께해본다. 오레우스는스킨답서스 종류인데 잎이 좀 더 부드럽고 크다. 스킨답서스답게 순하게 잘 크는 아이이다. 무늬들이 잎마다 달라서 미술관에서 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듯 커피 한 모금에 한 잎씩 바라본다. 이렇게 커피 한잔과 함께하는 풀멍의 세계로 들어간다.
히메몬스테라와 커피한잔
운이 좋다면 커피를 마련한 시간에 새잎이 조금씩 펴지는 것도 볼 수 있다. 히메몬스테라의 여린 잎이 조금씩 펴지는 걸 보는 건 신나는 일이다. 히메몬스테라는 몬스테라 중에서도 잎이 작고 구멍 없이 찢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몬스테라를 키운다면 그다음으로는 무늬몬스테라나 히메몬스테라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몬스테라 치고는 작은 사이즈의 가녀린 공주 같은 히메몬스테라는 매력이 넘치는 식물 중에 하나이다. 더운 여름날에 시원스러워 보이는 히메몬스테라 잎 사이로 파도 사진 포스터를 더하고 얼음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집구석 바캉스를 즐겨본다.
칼라데라제브리나와 커피한잔
칼라데아 제브리나의 무늬는 열대의 무늬같이 선명하고 직광의 햇살같이 직설적이다. 잎의 무늬는 열대의 습기를 불러내고 정글의 무성함을 소환한다. 나는 어느새 초록이 가득한 정글 한가운데서 초록커피를 마신다. 나는 정글에 살고 나무 위에 오두막집이 있고 커피나무들이 가득한 곳에서 커피 열매를 따고 그것을 볶았을지도 모른다. 제브리나의 잎맥이 주는 상상력은 가끔 이렇게 나를 엉뚱한 생으로 이끌고 가기도 한다.
라이프니츠가 루이부르게에게 보내는 1714년 12월자 편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무한히 많은 가능한 세계들 중에서 선택된 최선의 세계라는 가능세계이론이 등장한다. 나에게 무한히 많은 가능한 생이 있지만 그중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생이 가장 최선의 생이고 선택된 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초록커피한잔의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