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line Dec 23. 2023

누드화(Nude Picture)에 대하여.

피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루벤스의 그림은 아름답다는 표현 그 자체이다.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부드러운 붓터치와 여인의 살결 냄새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동화 '프란다스의 개' 속에 나오는 네로가 가끔 떠 오를 때면 그림 속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운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가슴을 흔들기도 한다. 루벤스는 평생 궁중화가로 당시 정치인들의 초상화 등을 그리며 일반적 화가들이 맞이했던 가난과는 다른 삶을 살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매우 안정되어 보인다.


고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 회화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은 대부분 나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여성을 성적쾌락물로 여겨지기도 하였지만, 시대를 거듭하며 마네의 올랭피아처럼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말하는 서양이라는 곳에서 시작된 여인의 누드화는 철저한 개인주의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 대부분이 화가의 소유가 일 때도 있었지만, 왕이나 권력층의 소유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분 지어야 할 것은 '벌거벗음'과 회화의 한 장르인 '누드화'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벌거벗음'이란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누드화'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특별한 목적에서 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누드화는 절대로 벌거벗은 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피를 두른 엘렌 푸르망, 피테를 파울 루벤스, 1636-1638년경, 176x83cm, Oil on Canvas, 빈 미술사 박물관 오스트리아.


루벤스의 두 번째 아내였던(당시 둘의 나이차이는 37세에 가까운 나이였다) '엘렌 푸르망'의 누드화이다. 그림은 초상화이자 누드화라 할 수 있겠다. 루벤스는 첫 번째 부인이 흑사병으로 사망하자 첫 번째 부인의 조카였던 엘렌 푸르망과 재혼하였다. 둘은 많은 나이차를 극복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랑하였으며 루벤스는 엘렌을 자신의 뮤즈로 여겼었다.


그림 속 여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 루벤스를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당시 모피를 걸쳤다는 것은 그녀가 얼마나 풍족한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슴은 오른 팔로 쓸어 올려 풍만함을 극대화시키고 있으며, 터질 듯 과장되고 예민하게 표현된 살결의 부드러움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그림은 절대적으로 화가의 주관성이 개입된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벌거벗은 모습이지만 외설적?이지 않다. 그녀에 대한 사랑이 들어 있기에 아내의 관능미와 우아함을 자아내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아내를 그린 그림을 판매할 목적을 가진 화가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붉은색이 감도는 뽀얀 살결과 검은 배경은 그녀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또한 엘렌은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자세를 취하기 위해 오른쪽 발끝에 힘을 주고 있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힘과 부드러움을 함께 보여 주고 있는 이 누드화를 바라보며 삶 속에 안정을 갖기 위해서 이러한 두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내면이 단단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루벤스의 그림에 푹 빠져 살았던 적이 있었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작고 여린 뽀얀 피부를 매일 닦아주던 손끝의 느낌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씻겼던 아이가 이제는 나를 지켜주는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외롭고 힘들 때면 아이들을 떠 올린다. 그저 사랑스럽기에. 사랑하기에. 그것은 나를 버티고 견디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루벤스도 자신의 아내에게 그러함을 느꼈을 것이다. 어제 오후 머리가 지끈거려 숙소 앞에 자리한 콩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 안에 누드화에 대한 개념을 정리한 내용을 보며 오늘은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일어나 커피를 두 잔 째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하노이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다. 나의 몸을 지키기 위해 단단히 챙겨 입고 다니는 중이다. 누드화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자신을 지키는 모습처럼 말이다.



https://m.youtube.com/watch?v=iErjHL2BueE#bottom-sheet

연주자 Hauser  White Christmas.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지키는 힘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