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묵이라는 방패를 들었다.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의 조각 앞에서.

by Celine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시대에도, 세상은 여전히 단단한 성벽이 있었다. 그러나 그 벽을 맨손으로 기어오른 한 여인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Properzia De' Rossi 1460-1530년경 이탈리아)'.


볼로냐의 골목에서 태어나 아무도 그녀에게 미술도구를 쥐여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조각칼을 들었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 메디치 가의 후원 아래 다양한 프레스코화를 제작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며, 우피치궁 설계 등을 맡았던 건축가이자 1550년 <미술가 평전>을 집필하여 미술 사학자로 유명해짐)의 평전에 기록된 유일한 여성이자 성벽 너머로 이름을 던진 한 사람, 바로 그녀였다. 참고로 당시 여성은 예술가의 보조역할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즉 예술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내세울 수 없는 시대인 것이다.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보디발의 아내/대리석/1520년경/산페트로니오 성당/이탈리아 볼로냐>

처음 그녀는 작고 여린 손길로 석조에 과일을 새겼다. 바사리는 그녀의 석조 과일 조각을 향해 "바라보기만 해도 경탄스러우며, 작품의 섬세함은 물론이며 조그마한 입상들의 활기가 경탄을 자아낸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나 그녀의 손은 대리석을 쥐었고, 이제 그녀의 조각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가 되었다. 그 절정의 순간이 바로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1526년경>이다.

<보디발의 아내 손 그리고 오른 쪽 다리와 발에는 힘의 균형을 잡으려는 모습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얀 대리석 속에 얼어붙은 장면 속의 요셉은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그의 옷자락은 여인의 손에 붙들려 있고, 휘날리는 머리칼은 그가 이미 마음속으로 먼 곳에 가 있음을 알려준다. 작품 속 여인은 바로 요셉의 군장군이었던 보바리의 아내이다. 아내는 탁자에 손을 짚고, 다리에 힘을 주어 그를 붙잡으려 한다. 몸은 정지해 있지만, 그녀의 오만과 욕망은 파도처럼 요셉을 덮친다. 마치 속삭이듯, ‘감히 네가 나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듯하다. 요셉은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의 계시를 어기지 않기 위해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한 것이다.

이 조각 앞에 오래 서 있다 보면 묘하게 내 안의 기억들이 꿈틀거린다. 나도 저 요셉처럼 때로는 세상이 잡아당기는 손아귀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내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일들 앞에서 나는 어떻게 나를 지켜왔던가?


나는 종종 침묵을 선택했다. 말없이 버티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침묵은 때때로 가장 강력한 방패였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침묵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이 지나야 상처도 아물며 뒤틀려진 오해로 덮혀진 진실도 드러난다. 시간을 잘 다루면 나를 감싸는 천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내 살을 베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침묵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내 안에 있는 작은 확신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내 정당성을 아는 이는 결국 나 자신 뿐이라는 그 믿음.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그라시 가문의 문장/은세공에 말린과일씨앗/1510년경/볼로냐 중세 미술관>

로시는 남다른 기질의 소유자였다. 누군가에겐 결함이라 불렸을 그녀의 치기 어린 열정은 오히려 그녀가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지켜내려 한 치열한 몸짓으로 읽힌다. 사랑을 청하다 거절당하고, 분노에 못 이겨 동료를 때리고, 이웃의 정원을 망가뜨렸다는 그녀에 대한 소문 속에 나는 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녀도, 나도 세상과 부딪치며 자기 자리를 사수해야 했던 사람들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을 맞이한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는 내 옷자락을 움켜쥐고 나를 끌어당긴다. 그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버틴다. 어떤 이는 목소리를 높이고, 또 어떤 이는 담담히 돌아선다. 나는 오늘도 내 방식대로 침묵이라는 방패를 들어 올린다. 로시의 조각 앞에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세상의 소음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안의 고요함 속에서 나를 지키겠노라고. 그것은 오만함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존중하는 가장 단단한 사랑임을, 나는 안다.



https://youtu.be/OHBGtDwZY2k?si=-cV2SoEBklzcoq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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