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같지 않은 첫째와, 어린이인 둘째. 그리고 아직 자아가 미성숙한 엄마와 아빠. 이번 어린이날은 온 가족을 위한 날이었습니다. (달력상으로는 월요일이지만, 석가탄신일과 가족 모임이 있어 하루 앞당겨 보냈습니다.) 전날 밤, 모임 갔다가 늦게 들어와 남편과 아이들 먼저 시내로 갔습니다. 캐주얼한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오락실로 갔더군요. 지나칠 때마다 '이런 곳을 찾는 사람이 있긴 할까, 제대로 운영이 될까' 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학생들을 포함해 커플, 가족 단위 손님으로 북적인다고 하더군요.
늦게까지 뒹굴다, 정오가 지나서야 나섰습니다. 오랜만에 버스 타려니, 몇 번을 타야 하는지 난감하더군요. 버스정류장에 적힌 번호를 일일이 보고, 노선을 탐색하고, 먼저 도착하는 버스를 체크하면서 20분이나 보내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엄마가 도착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하키 게임에 빠져있었습니다. 탁구 테이블 1/4 정도 되는 하얀색 판 위에, 상대방 골대를 향해 골을 넣으려 조작하고 있었습니다. 노래 부르고, 게임하고, 다른 사람이 게임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한 시간 동안 만 원의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이날은 동성로 축제가 열렸습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부스들이 줄지어 있었죠. 어떤 부스에서는 인바디를 측정해 주고, 어떤 부스에서는 캐리커처를 그려줬습니다. 곳곳에 달콤한 간식을 파는 곳도 있었고, 피아노 연주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어깨를 스치지 않고는 걸을 수 없을 만큼 빼곡한 거리. 불경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넘치는 인파 속에서, 매일 이날만 같아라 싶었습니다.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파 근처 노점상에서 과일 주스를 주문했습니다. 우리 뒤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런 손님도, 풍경도 반가웠습니다. 이날만큼은 사장님들 몸이 고되더라도, 힘났으면 했습니다. 오랜 불황 속에서 분주해 보이는 상인들 모습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만화방 가자는 둘째와, 볼링 치러 가자는 첫째 의견을 따라 장소를 옮겼습니다. 두 군데 모두 자리가 없었습니다.
차를 타고 동네 인근으로 왔습니다. 여기도 인파가 엄청났습니다.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에, 긴 휴일까지 겹쳐서 그런지 북적이지 않는 곳이 없었죠. 길에도 많지만, 상점마다 손님으로 넘쳐났습니다. 주인 입장에서는 피곤하더라도, 오랜만에 얼마나 즐거울까요. 몸은 고될지라도 오랜만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까요.
가까운 곳에 있는 볼링장으로 갔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레인이 올라오는 곳으로요. 가족 손님이 많아서 30분 기다렸지만, 두 게임 동안 심장이 쪼그라 들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아이들을 이길 수는 없지만,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싶더군요. 운동 신경이 좋지 않은 엄마는, 아이들과 같이 키즈 레인을 설정해서 볼링을 쳤습니다. 저는 역시 꼴등 했지만, 둘째가 일등 하며 반전으로 마무리했죠.
이어서 만화방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 봤습니다. 저희가 들어갈 자리가 있어 다행이더군요. 혼자 경영하시는 사장님이 분주해 보였습니다. 만화방에서 먹는 라면 맛은 캠핑장에서 먹는 것만큼 맛있거든요. 코끝을 파고 들어오는 라면 냄새에 시키지 않을 수 없었죠. 모자라는 양은 과자봉지를 뜯으며 채웠습니다. 안 가고 싶다던 첫째도, 네 시간 가득 채우고 나가자고 조르더군요.
아이들과 저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다른 세상을 봤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안 가서 좋고, 숙제 안 해서 좋고, 늦게까지 놀아도 돼서 좋았다더군요. 저는 오랜만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았고, 불경기 기사로 도배되는 현실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물론,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2025년 5월 5일. 숫자 5가 세 번 겹친 오늘, 우리는 각기 다른 눈으로 각자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서로 다른 조각들로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완성하듯, 오색 빛깔로 빼곡하게 완벽한 하루를 채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