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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Jan 03. 2024

새벽 4시 20분


두 시간 잤다. 푹 잔 듯, 잠들지 않은 듯 헷갈린다.

잠옷을 입은 채로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다리가 시리다. 차가운 공기는 어느덧 눈동자를 지나 머리 위로 올라온다. 머리맡에 둔 휴대전화 시계를 확인해 보니 4시 20분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생각이 많아진다. 한 시간 뒤, 알람이 울리면 뭐부터 해야 하지? 잠들기 전, 다이어리에 적은 항목이 떠오른다. 해야 할 일이 팝업창처럼 올라온다. 더 누워있어 봤자 안 되겠다. 옆에 잠든 둘째가 깰까 봐 살살 움직인다. 역시나 바로 일어난다.

"몇 시야?"

"아직 4시 반이야. 더 자."

이불을 덮어주고 거실로 나왔다. 물 한 모금 마시자마자, 누워서 생각하던 일을 시작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잠들기 전에 불린 쌀을 냄비에 옮겼다. (냄비밥을 먹는 우리 집은, 이른 아침마다 희고 뽀얀 쌀밥을 만든다.)



두 시간 뒤인, 7시가 되면 첫째가 있는 병원으로 출발해야 한다. 어젯밤, 병실을 지킨 남편과 교대하기로 했다. 어제 오후 3시.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첫째를 데리고 집 앞 내과에 갔다. 수액을 맞는데도 어지러움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만 하루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구토증세도 있다. 타미플루 부작용인가 싶어, 이틀만  먹이고 멈췄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보며 독감 후유증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응급실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 했다. 어디로 가야 하냐니, 소아과 의사가 근무하는 곳을 알아보고 움직이라 했다. 119에 전화했다. 아이가 피검사를 할 수 있도록 야간 진료를 하는 소아과가 있으면 알려달랬다. 무슨 일인지 물었다. 급성 빈혈 같다고, 방금 내과에서 수액을 맞았는데 차도가 없어 급히 이동하려 한다 했다. 아이가 몇 살이며 걸을 수 있는지 물었다. 걷기 힘든 상황이라 하니 119를 보낼 테니 타고 가라 했다. 이런 일로 타도 되냐고 하니,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이동하실 수 있냐고 되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말만 연신 내뱉었다. 내과에서 집까지 걸어서 5분 거리지만, 아이를 부축하느라 길에 있었다. 구급대원과 통화하면서 움직였고, 길 한가운데서 만나 대학병원으로 이동했다. 때마침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건이 있어 전화를 건 친구에게 미술학원에 있는 둘째 아이 픽업을 부탁했다.


구급차를 처음 타본 아이는 긴장했는지 몸이 뻣뻣해졌다. 두 분의 대원들은 상냥한 어투로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진다며 혈압을 측정했다. 몇 분 동 안, 심장이 딱딱해지는 듯했다.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환자들이 많아 진료가 늦어도 양해해 달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아응급병동으로 옮긴 후 구급대원들은 돌아갔다. 다행히도, 오래지 않아 담당 교수님이 내려왔다. 나와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가 보다. 아이를 보더니 독감 후유증인 것 같다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며 일단 피검사부터 하고, 다른 검사도 해보자 했다. MRI검사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 검사를 하려면 입원을 해야 한댔다. 일사천리로 병실을 배정받고 6인실로 옮겼다.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누운 채로 연신 눈물만 흘리더니 농담도 건넸다. 아파도 병원에서 아프니 안심됐다. 남편과 둘째로부터 번갈아 전화가 왔다. 하루에도 수 백번은 넘게 투닥거리는 형이 아프니 걱정됐나 보다. 남편은 일정을 빨리 마무리하고, 9시에 병원으로 도착했다. 둘째 픽업 후 잠든 거 보고 자정에 다시 오겠다니 자기가 볼 테니 집에서 자랐다. 그럼 내일 오전 7시에 교대하자며 나섰다.


집에 오자마자 분주했다. 친구집에서 샤워까지 다 하고 온 둘째는 양치만 하고 자면 되는데, 형이 없는 집이 낯선가 보다. 오디오북을 듣겠다 하고 선 두 시간째 잠들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그 사이, 청소기로 집안 구석구석 밀고 닦고 설거지하고 아이가 먹을 죽을 만들었다. 씻고, 마무리하고 식탁에 앉으니 자정이다. 그 사이 첫째는 MRI검사를 마치고 잘 거라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책을 펼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블로그에 아이와 함께 비전보드 만들던 글을 올렸다. 그리고, 오픈채팅방을 열어 내일부터 읽을 <총, 균 쇠> 가이드라인을 살펴보았다. 새벽 1시가 지났다. 잘 수는 있을까. 조금이라도 자야 한다며 둘째 아이옆에 누웠다.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윌라 오디오북에서 <토지>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두 시간쯤 잤을까. 1월 3일 아침이다. 전날과 오늘의 경계가 없는듯한 새 하루다. 아이가 아프다는 건, 나의 정신을 지배할 만큼 강력한 걸까. 글 한편을 마무리해도 5시 34분이다. 7시 반에 병실에 아침식사가 들어온다는데, 그전에 도착할 수 있게 나서야겠다. 오늘밤은 우리 가족, 온전체로 따스한 집에서 함께 잘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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