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한 편이 꼬이면 벌어지는 도미노
LA에서 페루 리마행 라탐항공을 놓친 사건으로 연결편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시스템이 이상하게 꼬여버린 탓에 우리는 거의 1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를 하고 짐을 찾고 카운터로 가서 다시 짐을 부친 후 출국심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말도 안 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할 위기에 처해졌다.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페루 리마로 향하는 비행기 안, 혹여 조금이라도 늦어질까 봐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긴장한 탓에 단 일분일초도 마음 놓고 쉴 수가 없었다.
7시 35분 착륙
다행히 비행기는 연착하지 않았지만 비행기가 게이트로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시간과 손님들을 내리기 위해 준비하는 그 몇 분의 시간마저 마치 한 시간처럼 늘어지는 느낌이었고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
드디어 하기 사인이 떨어지고 앞좌석에 타고 있던 손님들과 나는 거의 한 덩어리가 되어 입국수속장까지 내달렸다.
20세부터 70세 어르신들까지 정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내달려 도착한 입국수속장은 다행히 줄이 거의 없었다.
한 명 한 명 숨가쁘게 입국 수속을 마치고 다시 짐 찾는 벨트로 달려가 짐을 기다렸지만 벨트는 도대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 팀 짐에는 전부 Priority 태그가 붙어 있어 일단 짐만 나오면 바로 찾아 들고 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다들 똥줄이 타들어가던 그때 벨트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정작 짐이 나오기까지는 거의 10여 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모두 짐을 찾은 것을 확인한 후 이번에는 카운터로 달렸다.
리마-산티아고행 티켓은 볼리비아에서 이미 발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짐만 부치면 된다.
특정 카운터에는 우리 팀의 짐을 신속하게 부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한 직원이 대기하기로 했기 때문에 일단 그 직원만 만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것 같았다.
또다시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려간 카운터에서는 분명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리기로 했지만 해당 카운터 직원은 태연하게 다른 손님의 수속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시간은 9시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
분명 우리 짐만 신속하게 부쳐주기로 했으면 우리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 직원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앞에 손님이 있건 말건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말씀 못 들으셨나요?
우린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온 한국 단체손님인데 짐 연결이 안 되어 환승 시간이 촉박해 이 카운터로 가면 우리 팀의 짐만 신속하게 부칠 수 있도록 직원을 두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이 직원은 그런 말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었다.
다시 한번 볼리비아 가이드님을 호출해야 했다.
다시 백방으로 알아보던 가이드님이 전해온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8시 50분 출발 비행기의 탑승시간은 7시 50분.
탑승시간이 되면 카운터는 클로즈되어 발권도 짐을 부치는 일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해당 직원은 7시 50분이 되어 우리가 오지 않자 카운터를 떠났고 그 자리에는 다른 직원이 앉아 승객들의 수속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
인간적으로 7시 35분 비행기 착륙인데 그 모든 수속을 다 마치고 15분만에 카운터에 도착하는게 말이나 되?
하..이건 또 무슨 재앙이냐?
난 카운터에 있던 직원에게 매달렸다.
"너네가 책임지고 우리 짐 부쳐주기로 했잖아.
우린 티켓 발권도 다 된 상태야. 그러니 제발 제발 짐 좀 부쳐줘"
직원은 고개를 젓기만 했고 책임자를 불러달라고 해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다시 볼리비아 가이드님을 호출했다.
유창한 스페인어로 직원들을 설득하고 사정하던 가이드님도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비상상황이라 한국에서도 이 사태를 보고받고 대책회의까지 열렸지만 한국에서도 손 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열심히 달려왔건만 짐을 부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손님들도 망연자실한 채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전 구간을 비즈니스석으로 예약해 승객들과 다른 예약번호를 부여받아서 유일하게 짐 연결이 되어 게이트로 먼저 가 있었던 단 한 명의 손님도 게이트 앞에서 탑승하지 못한 채 초조하게 기다리기는 마찬가지였고 계속 나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손님들 탑승하기 시작해요"
"전부 탑승했어요"
"직원이 왜 안 타냐고 자꾸 타라고 해요"
"우리 곧 가요. 제발 게이트 닫지 않도록 부탁해요"
여기저기 톡을 주고받으면서도 직원들에게 사정사정하는 사이 본사와 톡으로 대책회의를 해야 하고, 게이트를 마감하지 말라고 계속 사정해야 하고, 볼리비아 가이드님을 다시 연결해 다른 대책이 있는지 알아봐야 하고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
탑승시간 8시 50분
보딩 마감 8시 30분
8시 25분에 한국 대표님께 전화가 왔다.
일초의 지체도 없이 손님들에게 달리라고 했고 손님들은 티켓과 소지품만 들고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5분 동안 보안검사와 출국 심사를 모두 마쳐야 하는 상황
여태 상황을 봤을때 예외를 봐줄리가 없었기에 반드시 5분안에 게이트에 도착해야만 한다.
난 게이트 앞에서 초조하게 직원을 붙잡고 사정하고 있는 손님께 연락해 손님들 지금 달려가고 있으니 제발 제발 게이트 클로즈하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손님이 하는 말
'직원이 그 분들은 다음 비행편 티켓 끊으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네요'
17명의 티켓팅을 다시 하라고? 환장하네.
아, 제발 제발
8시 30분.
게이트 문이 닫히는 그 순간, 정말 기적 같은 상황이 전달되었다.
'저기 손님들이 달려 오고 있어요'
그렇게 슬라이딩하듯 모든 손님들이 기적적으로 탑승했다.
보안검사 줄이 거의 없어서 가능했고 출국 심사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고 하고 게이트가 정말 다행히 출국심사를 하는 곳 바로 앞이었다.
5분 만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니..
그렇게 기적처럼 일단 손님들은 무사히 태웠다.
하.지.만
난 짐 열일곱 개와 함께 페루 리마 공항에 혼자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이제 난 어떡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