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뭔 일 안 나나?”
아주 오래전,
나는 아침 방송의 사건·사고 코너 ‘붙박이’였다.
아침 방송은 보통 촌각을 다투는 데다,
각 요일별로 제작사가 나뉘어 있기에,
아이템 쟁탈전이 치열한 편이다.
그리고 사건 사고는 그 정점에 있는 코너였다.
보통 가장 첫 코너로 배치되기 때문에
시청률을 좌우한다고 보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바쁜 출근 시간에 시선을 잡아야 하는 코너인 만큼,
사람들이 자고 일어나서
“그런 일이 있었어?” 할 정도의 시의성이 1번.
그렇다고 속보 기사처럼
한 줄만 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느 정도 취재가 이뤄져야 했다.
따라서, 방송 전날 점심시간쯤 뜨는
사건들이 ‘베스트’였다.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작가는
맛집, ‘휴먼’ 코너를 담당하는 작가들과
시계가 달랐다.
동료들은 방송이 끝난 직후부터
아이템 고민에 시달리며 전화통을 붙들고
섭외에 매진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간혹 부러워하는 이도 있었지만,
우리 제작사의 경우 ‘사건·사고 코너’는
이미 그 시기(맛집, 휴먼 등 다양한 코너)를
거쳐온 작가 중에, 손이 빠르고
판단에 거침이 없는 작가에게만 맡겼다.
머쓱하지만, 말하자면, 그게 나였다.
나는 한 주 방송을 털어내면
차분히 뉴스들을 살피고,
경찰서와 전문가 리스트를 새로 정리해 두고,
회의를 핑계로
담당 PD와 맛집에서 식사도 했다.
그리고 이삼일 뒤,
동료들이 섭외에 성공해
촬영 구성안과 함께 담당 PD를
전국 어디론가 보내버리고 나면,
운명은 반전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지옥은 시작되었다.
방송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해지는 건 PD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더욱 예민하게 뉴스를 훑고,
말수를 줄였다.
방송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됐다.
하루 전날 아이템을 찾지 못할 것을 대비해,
아침부터 뉴스에서
‘방송 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체크하고,
타 제작사가 선점하지 못하도록
카페에 올려두는 작업이 시작됐다.
방송 작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질이 급한 편이므로,
PD와 상의하기 전에 내 선에서 이미
아이템이 될 만한 후보들을
추리는 게 중요했다.
(이게 바로 제작사에서
사건·사고 담당 작가들을
구력 있는 작가들로 배치하려는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다행히(?) 인생은
원래 바람 잘 날 없는 것이어서,
펑크가 나는 일은 없었다.
생각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일이 벌어지고, 쉽게 잊힌다.
그날은 달랐다.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봄날 아침,
벚꽃이 마법이라도 부린 것인지
사회 면에 뜬 뉴스들이 현저히 적었다.
잠이 확 달아났다.
늘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휘핑크림을 잔뜩 얹은 카페모카를 들고
나는 전의를 다졌다.
방송 전날은 언제나 굶다시피 했기에
사실상 그날의 모든 끼니인
플라스틱 컵을 신줏단지 모시듯 움켜쥐고
자리에 앉았다.
“하나는 나오겠지, 하나는.”
시계가 11시를 가리킬 때쯤
나는 거의 기도하는 심정으로
온갖 지역신문까지 다 훑고 있었다.
위기였다.
커다란 도넛 박스를 들고 출근한
메인 선배도 내 표정을 보자마자
안색이 어두워졌다.
“교통사고는 좀 그렇죠? 노인 운전자요.”
“사연 없는 교통사고는 좀....
혹시 모르니 기본 취재는 해놔”
급발진인지 운전미숙인지 헷갈릴 만한
사고가 아니면
방송에 내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깨가 땅으로 푹 꺼졌다.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커피에는
휘핑크림이 다 녹아내려
마구 뒤섞여 있었다.
“진짜 없어? 흉기, 어린이집,
불법 이런 키워드로 찾아봤어?”
PD는 아이템을 수금하러 온
빚쟁이처럼 아예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데드라인을 앞에 두고
새로고침을 반복하던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기사는 짧지만 강렬했다.
[직장 동료 살해하고 도주한 남성,
모텔에서 붙잡혀]
가해자는 범행을 시인했고,
범행동기를 묻는 말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PD님, 이거 어떨까요?”
“괜찮네. 동선도 좋고.”
기사와 경찰서 주소,
담당 형사를 수소문해 짤막하게 정리한 뒤,
PD 손에 쥐여주고 숨을 돌렸다.
평범한 직장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할 정도라면,
그 안에는 무슨 사연이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가해자 주장대로 ‘직장 내 괴롭힘’이
동기라면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가해자 측 증거가 있는지,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직장 문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까지
확장해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사실 관계를
그리 빨리 결론 내릴 수 없다는 것.
이것은 데일리 프로그램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PD는 금세 전화가 와서는
가해자의 직장을 알아냈다고 했다.
동료들은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넉살 좋은 PD가 담배를 건네며 부탁하자
딱 두 사람만 화면 없이
음성변조만 하는 조건으로 입을 뗐다고 했다.
“상사가 엄청나게 갈궜대.
맨날 욕하고, 사람을 그렇게 괴롭혔다네.”
“그렇구나. 증거 있대요?”
“많은가 봐.”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야기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어쨌든,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아닌가.
전화를 끊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도넛 박스에서 제일 화려한 도넛을 골랐다.
칼로리가 엄청나겠군,
잠시 고민했지만 남아 있는 게 그뿐이었다.
도넛을 한입 베어 물자마자 또 전화가 왔다.
보나 마나 PD였다.
그는 뭔가 격앙돼 있었다.
“대박. 가해자 누나 인터뷰했어.”
“가해자 누나?”
“억울하다고 인터뷰하겠다고 하잖아.
아, 얼굴은 안 찍었고.”
‘그게 대박이라고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가해자 가족 인터뷰는 좀 위험할 것 같은데....”
말끝을 흐렸다.
그날 밤, 우리는 몇 번이나 언성을 높이고
붙여둔 그림을 지우고, 대본을 밤새 뒤엎었다.
누군가의 불행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이라는 게,
그런 식이었다.
타인에게 평생의 아픔일 사건을
하루이틀 만에 전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욕심조차 내서는 안 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쓸 수 없는 진실,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를 전부 지운
얄팍한 대본을 쓰는 것뿐이었다.
평화롭던 직장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이 발생한 순간은 이러했고,
범행 동기는 수사 중.
카메라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는,
가해자 측은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정도로 짤막하게 언급했다.
절대 우리의 의견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라도 하듯,
가해자가 받게 될 처벌 수위를 추측하는
변호사 인터뷰를 붙여, 방송은 마무리됐다.
언제나처럼 집에 가기 아쉬워 쭈뼛대는
몇몇이 모여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숟가락을 돌리고 있으니
눈치 없는 맛집 코너 PD가 입을 뗐다.
“싹 다 뺐더라.”
“.... 사람 죽인 게 변하는 건 아니잖아.”
“그야.... 아, 너무 어리던데.
아들뻘을 왜 그렇게 괴롭혔을까.”
“모르지. 우리가 경찰이야?”
마침, 테이블에
소주가 올라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이에나는 하이에나 역할만 하면 된다.
우리는 호랑이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나머지 일들은
호랑이한테 맡기면 되잖아.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마음에 남아 있던 찝찝한 응어리를 씻어냈다.
시야가 약간 흐릿해질 때까지.
살점을 다 뜯어먹어 뼈다귀만 남은 이야기는
이제 내게서 떠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주는 좀 빡셌다.”
“다음 주엔 아이템 좀 빨리 잡혀야 할 텐데.”
“기우제 하는 것도 아니고,
사고 나라고 고사를 지내야 하냐.”
피곤한지 막내 몇몇이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졸았다.
우리는 서둘러 헤어졌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면서
커다란 거울 앞을 지나쳤다가,
다시 뒷걸음질로 돌아왔다.
모자를 푹 눌러쓴 초췌한 하이에나
한 마리가 나를 응시했다.
“네가 보여주고 싶은 세상은 뭐였니?”
지하철이 굉음을 내며 들어왔기 때문에,
거울 속 하이에나는 내 대답을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