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네.’
말없이 커튼을 쳤다.
병동 6인실에서 타인의 삶과 나를
분리할 방법이란,
얄팍한 커튼 한 장이 다였다.
커튼이 막아주지 못하는 틈 사이로
낯선 찬송가와 설교가 계속 밀려 들어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라는
자부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병동은 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운 좋게 명절에 입원장을 받은 덕에,
창가 자리를 얻은 남편과 나는
틈새로 보이는 한강을 보며
가까스로 불안한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 보니
드디어 주변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터였다.
우리와 대각선에 있는, 그러니까
출입문 바로 앞에 자리한 침대의 주인은
비쩍 마른 할아버지였다.
심부전 말기로, 스스로 먹지도, 걷지도,
말하지도 못한 채 침대 위에
‘놓여있는’ 신세였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뽀글뽀글한 머리에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친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점심을 물리고 나면,
꼭 휴대폰을 꺼내 기독교 채널을 틀었다.
설교를 들으며 ‘아멘.’ 하기도 하고,
찬송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르기도 했다.
간호사가 들어와 주의를 주기 전까지는.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중환이었고,
신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테니까.
남편 옆에서 쪽잠을 자며,
내 처지가 처량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눈도 못 뜨는 남편을 붙들고
밤낮으로 기도하는 할머니를 보면
괜히 머쓱해졌다.
그렇게 일주일쯤 흐른 어느 날,
찬송가만 흘러나오던 그곳에서
여러 명의 말소리가 들렸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아들과 며느리가 면회를 온 것이었다.
‘그렇게 기도하셨는데....’
무거운 마음을 풀어보려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는 순간,
귀에 꽂힌 할머니의 목소리가
일순간 나를 커튼 앞으로 휙 잡아당겼다.
“이 양반 좀 데려가라고
내가 맨날 기도했는데,
이제 들어주시려나 보다.”
할머니의 기도는 할아버지를
붙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떠나보내기 위한 것이었구나.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마는
어쩐지 마음이 아렸다.
방송의 본질이 판타지라고 말했던
선배가 있었다.
사람들은 TV 앞에서까지
지독한 현실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고.
고된 현실을 잊을 만한,
따뜻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다고.
(이 말은 과거에는 일부 맞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반대였다.
우리가 외면해 온 것들을
눈앞에 들이대는 것도
방송이 해야 할 일 아닌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면,
TV는 영원히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장수 대신,
죽음을 기도해야 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여러 사각지대를
뭉쳐놓은 실타래다.
나는 여러 이유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릇의 문제)
탐사 보도 작가의 길을 가진 못했지만,
지금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보고 싶은 것만 하루 종일 보여주는’
알고리즘에 갇힌 사람들의
방문을 두드리며
‘진짜 이야기’를 보여주려 애쓰는
많은 동료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상파 방송은 이제 끝이라고.
머지않아 애국가랑
시청률을 견줘야 할 거라고.
틀렸다.
모두가 바라보는 빛의 뒷면을
구태여 들여다보고,
묵묵히 그림자로 걸어 들어가는
이들이 있는 한,
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커튼 뒤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짱짱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