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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Jun 19. 2022

서울을 떠나 모부의 품으로

서울 삶


7월 3일, 집으로 내려가기 위해 기차를 예매한 날짜다.

마지막 주에는 여름옷을 정리해 택배를 붙이고 그 외 책, 문제집, 이불,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거 메이커를 동봉해 보낼 예정이다.

매일 아침 시리얼과 요거트를 먹고, 배가 고프면 간식으로 요거트를 먹고, 밤에 출출하면 요거트를 먹어야 하기에 보물 1호인 요거트 기계를 두고 갈 수는 없다.

그 외 가을, 겨울 옷과 주방기구, 생필품 등은 8월 말쯤에 다시 한번 가지러 올라올 예정이다.


두 달 동안 잠깐 내려가 있자에서 그냥 짐을 빼고 내려가서 살자라는 마음으로 계획을 바꾸니 하루에도 수십 번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어쩔 땐 월세와 생활비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을 느낄 생각 하니 순식간에 여유로워진다.

일을 시작하게 되어도 천천히 ‘재미’와 ‘노력’이라는 잣대만을 가지고 접근하여 ‘흥미’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짜릿한 상상을 한다.

‘넉넉한 돈’이라는 잣대가 들어가면 도전에 소심해지고, 소심한 도전이 택한 대안의 일은 또 불평불만을 만들게 눈에 선하다.

이는 적응 못하고 다른 무언가를 또다시 갈증 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선택을 보류하는 겁쟁이와 자신 내면의 소란함을 타인에게도 공유하는 피곤한 사람이 되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전, 연희동 독립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렇게 재미나고 눈만 돌려도 젊은 사람들이 가득한 환경을 벗어나면 심심하지 않을까는 걱정도 잠깐 한다.

내가 만약 애초에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었다면, 혹은 그때 그 20살에 돈을 비롯해 다양한 두려움으로 포기했던 서울 소재의 대학교를 다녔다면, 수많은 자극 속에서 일찍이 정착하여 무언가에 집중하고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었을까는 쓸데없지만 간혹은 하게 만드는 ‘만약에’ 놀이도 해본다.


그래도 느리고 돌아갔었던 과거 속에서 늘 최선을 다했기에 스스로의 성향만은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만은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다.

인프라보단 생활안정이, 다양하고 트렌디한 공간보다는 편하고 익숙한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심심한 곳에 가도 혼자 부스럭 거리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할 수 있기에 권태로움을 느끼지 않을 거라고 단언한다.

자극이 없는 대신 집중만 할 수 있는 한적한 환경 속에서는, 선택의 폭은 좁아도 스스로가 가진 재능에 밀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일 거라는 합리화로 이에 대한 걱정을 열심히 잠재운다.


앞으로 함께 사는 동거인들은 피로 이어진 나의 모부가 된다. 그들이 이번 연도에 이사한 집에 들어가기에 세입자 겸, 캥거루 딸이 되는 것이다.

 

모는 매일 아침 나와 함께 일어나 조깅 혹은 러닝을 하게 될 것이다. 불어난 그녀의 체중에 건강이라는 우려가 염려로 확장되어 그녀의 트레이너가 되기로 자처했다. 대학교 시절, 강제 온라인 수업을 하여 학교에 가지 못했던 시기에 그녀의 투룸 월세방에서 동거 동락했던 역사가 있어 함께 사는 것에 걱정이 없다.

모의 분신처럼, 껌딱지처럼 붙어 그녀의 직장 불만을 잘 들어주고, 답례로 나의 터무니없는 미래 계획에 적극적인 지원과 응원을 받아낼 것이다.


부는 나의 운전 선생님이 될 것이다. 철저히 학습받아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의 소울 푸드인 돼지국밥을 함께 먹으러 다니는 우리의 데이트를 상상한다.

그가 끔찍이도 아끼던 막내딸은 성인이 된 후 집을 떠나면서 놀랄 정도로 모와 비슷한 자아가 생겼고 그가 좋아하던 부녀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애교 많고 부의 편에 서던 사라진 막내딸을 그리워하는 그를 볼 때면 미안함 마음 반, 무시하는 마음 반이 항상 내면에서 싸워 명절에만 집에 가 얼굴을 비추는 전형적인 “가족은 멀리 살아야 사이가 좋다”를 실현했었다.

물론 앞으로도 매일 밤 그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 잔소리를 안 할 자신이 없기에 방에 들어가 잘 안 나올 가능성도 높다.


‘내 방’이 있다는 점이 미련 없이 집으로 가서 살아도 되겠다는 결정을 하게 했다.

방 = 작업실 = 서재에서 예민함을 적극적으로 숨겨 모부와의 갈등을 만들지 않겠다는 목표를 잘 실현해 나가야겠다.

그래도 나의 집이 없어 밤 11시에 호스텔을 예약해서 자야 했던 서울이 아닌 든든한 모부의 둥지로 들어갈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가까운 미래에 빚질 신세를 부지런히 잘 갚아나가 먼 미래에는 꼭 가녀장 집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들의 둥지가 내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이건 하나의 다짐이고 포부이자 예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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