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의 현타
직전 알바는 관광지로도 유명해서 주말마다 놀이동산에 줄 세우듯 손님들을 관리하느라 에너지가 남아나지 않았다. 규모가 큰 곳에서 매일 돌아다니다 보니 체중이 약 5키로가 감량되어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집 앞 지역 방송국에서 현장 방문 프로그램을 담당할 계약직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에 지원해 면접까지 봤고(물론 탈락) 아주 조그만 카페에서 샌드위치 및 음료를 만든다는 일을 구해 3일 일하다 그만두었다.(너무 이상해서 빨리 발을 뺐더니 내가 그만둔 후 약 1주일 뒤에 카페가 사라졌다.)
약 2주 간 구직활동을 못하다 때마침, 집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개인 카페에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공고가 떴고 영어학원이 끝나자마자 이력서를 뽑아 방문했다. 마카롱을 주로 파는 카페였는데 디저트에 별 관심이 없어서 항상 지나치던 그 2층짜리 카페였다. 스팀을 쳐 본 경험도 없고 카페 음료를 제대로 만들어 본 경력은 없었지만, '테라로사'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커피를 좀 알겠다!라는 좋은 편견을 통해 합격을 했다.
분명 주 5일 오후 5시~오후 9시 평일 마감 알바였는데 어찌 일을 시작하다 보니 주 6일 (금요일 휴무) 오후 3시 30~ 오후 9시 알바로 바뀌었다. 전생에 일복이 터졌는지 왜 일만 시작했다 하면 이렇게 근무시간이 늘게 되는지 모를 일이었다. 추가로 그땐 '휴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시간이 많아봤자 공부를 별로 안 할 것 같아 돈이나 많이 벌 자라는 마인드로 협의 없이 변경된 근무시간을 거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돈을 모으던 목적인 교환학생을 끝내 가지 못했던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 보면 그 시간에 여행이나 다닐걸이라는 후회가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영어공부와 돈 모으기에만 열중했기에 알바가 중요한 주 활동이었다.
손님이 거의 없어 커피를 만드는 일보단 마카롱 보조를 주로 했다. 머랭을 치고 반죽을 굽고 정리하고,, 그리고 카페 알바는 마감을 피해야 한다는 걸 몰랐던 나로선 그냥 카페 경력을 얼른 쌓고 싶은 마음에 주 6일 마감을 하는 큰 실수를 해버렸다.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트는 카페라는 로망도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손님은 없고 내 플레이리스트 마저 싫증이 났고 매일 반복되는 마감 청소와 커피 머신 정리는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하루에 약 6시간을 카페에 있다 보니 내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뭐 하나 잘되고 있는 게 없었다.
아마 이때 우울함이 많이 찾아왔던 것 같다. 언니가 아팠던 시기와 맞물려서 집에 가기는 싫고, 매일 커피머신을 닦는 내 처지가 싫었다. 카페 창업을 할 것도 아니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남들 다 회사 인턴 하는 시기에 뒤쳐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심지어 정말 친한 친구가 삼성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는데 기쁜 마음으로 온전히 축하하지 못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찌질했고 나에게도 남에게도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이라는 생각에 매니저님께 알바를 그만두어야겠다는 말을 했다. 스스로 생산적이게 시간을 쓰거나 혹은 편안하게 쉬거나 둘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 엄마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가서 리플래쉬를 해야겠다는 결정을 했다. 때는 10월이 조금 넘었었고 한 해도 마무리되어가니 다시 복학할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끝냈다.
그렇게 로망이었던 개인 카페에서의 알바는 현타와 낮은 자존감을 얻었다. (따지고 보면 일터의 문제가 아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사람에 치여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옮겼다가 홀로 고독과 싸운 후 내가 얻은 교훈은 사람은 사람과 함께 어울려야 한다는 것과 난 조그만 공간에 갇혀있으면 엄청난 답답함을 느끼는구나였다.
역시 모든 경험은 나에 대해 알아가는 깨달음을 주는 것 같다. 마카롱 카페를 그만두고 엄마가 있는 한산한 동네로 거처를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또 일을 시작했다.. 그래도 나에겐 이제 '카페 근무 경험'이라는 경력이 한 줄 생겼고 주 2일 이상은 절대 안 한다는 기준이 생겨 조금은 편안한 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