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로사(2)

커피와 친구를 얻다

by 글몽인

원래라면 테라로사에서 늘 하던 방식대로 파트타이머는 성수기만 일하는 것이었는데 졸지에 쭉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바리스타들은 직원이어서 나는 어쩌다 보니 계속 함께 일하는 깍두기? 인턴 같은 위치에서 일을 했다.


주 6일은 부담이었지만 평일엔 오전 8시 ~ 오후 1시, 주말엔 오전 8시 ~ 오후 3시라서 괜찮았다. 특히 오전, 오후로 항상 타임이 바뀌는 바리스타들에 비해 오픈이라는 고정 타임에 일하는 나는 모든 직원들과 돌아가며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바리스타들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다른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 참 재밌었다. 호기심 많은 나는 인터뷰하는 것 마냥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두루두루 친구를 사귀었다. 특히 커피 일에 욕심이 많고 전문성을 가지고 싶어 하는 야망 있는 바리스타 언니에게는 커피에 대해 다양한 정보도 듣고 언니의 진지한 진로 고민도 나누며 가까워졌고, 다른 직종에 종사하다 커피에 도전한 언니에게는 비밀스러운 퇴사 계획을 들으며 같이 미래 계획을 짜보았다.


바리스타들의 직장에서 나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서 그런지 모두가 편하게 잘 대해주었다.

"너 00님이랑도 친해?" "00님과도 따로 밥 먹었어?" 등 예상치 못한 나의 친화력에 모두가 놀라워했고 커피의 맛과 향처럼 바리스타들이 가진 매력 또한 참 다양해서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매니저님도 나에겐 알바 사장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성격은 급한데 눈치는 빠르고 완벽주의 성향까지 가진 매니저님을 모든 직원이 어려워했지만, 난 이런저런 장난을 치며 잘 놀 수 있었다. 매니저님도 나에겐 직장 상사로서 역할을 다 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지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 그룹의 리더, 상사의 위치도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직원을 믿고 맡기는 것'은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상사들에겐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냥 내가 하고 말지'라는 마음을 항상 누르고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게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적어도 휴학을 하는 동안은 계속 일을 하며 퇴직금까지 탈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예상과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간다고.. 단기 알바로 들어간 카페에서 6개월이 되었을 때 내가 먼저 그만두었다. 이유는 손님이 너무 많았다. 특히 주말엔 손님들에 치여서 컵을 걷으러 다녀야 했고 설거지 지옥에 한 번 들어가면 앞치마를 빨래하고 나왔다. 길게 늘어선 줄 앞에서 빵을 썰 때면 정신이 나가 기가 쏙 빠지곤 했다.


앞치마.jpg


가장 극성수기라는 7-8월을 여기서 이렇게 일할 거라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져서 충동적이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다. 당시에 1년 차인 바리스타들도 쏙쏙 빠지기 시작해 분위기를 타서 아르바이트생의 특권인 적은 책임감을 무기로 퇴사(?)를 함께 했다. 내가 관두고 2주 뒤에 그만둔 바리스타 언니와 커피 팔아 번 돈으로 3박 5일간의 베트남 여행도 다녀왔다^ㅡ^


2019년에 일한 곳에서 최근에 또 연락이 왔다.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커피를 만들던 바리스타 언니가 큐씨라는 직급으로 승진을 했고 혹시 시간이 되면 한 달 정도 알바를 뛰어 줄 수 있냐고 했다..! 새삼 당시의 내가 일을 잘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했구나~라는 뿌듯함이 남아서 기분이 좋았다. (조금 밥맛인가)


바리스타라는 세계, 직장이라는 공간, 지금까지 연락하는 좋은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 맛을 알게 해 준 테라로사에서의 알바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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