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장의 중요성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인지 물금이라는 아주 조용한 동네에 가서도 결국 알바 어플을 뒤적거렸다. 그래도 앞서 밝혔듯이 나만의 기준을 딱 정해서 1주일에 2번 이상 금지, 카페 마감 금지에 맞는 알바를 물색하니 딱하니 올라와 있었다.
도보로 10분 정도 위치한 프랜차이즈 '더 벤티' 카페였고 목요일, 금요일 오전 8시~ 오후 1시까지만 하면 되는 아주 깔끔한 알바였다. 물론 돈은 용돈 정도만 나오겠지만, 소비 습관이 그리 크지 않은 나에겐 모은 돈을 쓰는 것보단 금액이 크지 않아도 벌면서 쓰는 게 훨씬 나았다.
이제 알바 경력은 말할 것도 없이 넘치고 마카롱 카페에서 음료 제조를 몇 번 한 경험이 있어 면접과 동시에 바로 계약서를 썼다. 프랜차이즈점이라 그런지 레시피가 정해져 있어 프라푸치노 같은 귀찮은 음료들은 모두 봉투 형태로 동봉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민트 초코칩 프라푸치노다, 하면 해당 봉투 가루를 뜯어서 넣고 우유, 얼음만 더해 돌려버리면 끝이었다. 다만, 휘핑크림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결점이 있었지만 주 2일 오전만 치고 빠지는 나에겐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시간대의 알바생들이 만들어 둔 걸 쓰기만 해도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편리한 점은 알바 체제로 돌아가는 카페라 주 2일 오픈, 미들, 마감 모든 파트에 알바생들이 분리되어 있었다. 얼굴은 모르지만 적어도 10명은 되어 보였다. 서로 모르니 더 배려해서 최대한 비어져 있는 재료는 채우고, 만들어 두고 기록도 꼼꼼히 해두었다.
점장님도 알바 체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서 그런지 일을 잘 가르쳐 주시고 터치도 없으셔서 아주 편하고 모든 게 스무스했다. 그냥 일주일에 두 번 커피 만들기 게임을 하러 가는 느낌이라 별로 스트레스도 받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목, 금 오픈은 사람이 몰리려야 몰릴 수가 없었다. 카페가 있던 거리에 브랜드만 다르지 비슷한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들이 즐비되어 있어 적절히 분포되었다.
매일 출근길에 보는 단골손님과 아주 가끔가다 점심 먹은 후 몰리는 사람들, 그리고 심심하면 등장하는 배달의 민족 정도..? 프랜차이즈점 알바는 체계가 잡혀 있어 편하구나를 느끼며 지냈다. 직전 개인 카페에서는 자몽 에이드를 만들기 위해 직접 자몽을 손봐서 즙을 짜내고 팥빙수 얼음을 갈아야 했던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게 많았다면 프랜차이즈는 역시나 깔끔했다.
가볍게 편하게 오래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점장님이 바뀌면서 나의 꿀 같은 알바는 2달 만에 끝나게 되었다. 기존에 하던 점장님이 가게를 넘겼는데 새로 온 사람이... 정말... 같이 일하기 싫은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한 번도 커피를 만든 적 없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만만하다고 생각하고 프랜차이즈 카페 창업에 뛰어든 사람이었다.
심지어 내가 일을 가르쳐줘야 했다. 이건 이렇게 만들고요,, 이건,, 이렇게.. 알바생이 점장을 교육시켜야 하는 이상한 주객전도 현상이 일어났고 새로 바뀐 점장은 심심하면 허락 없이 꼰대 조언을 퍼붓곤 했다.
"00 씨는 여자니깐 카페 직원이나 카페 창업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내가 해외영업을 다녀봤는데 회사 일을 해보니~~~~"
상대가 원할 때 해주는 게 조언이고 원치 않을 때 해주는 게 충고라면, 이건 충고.. 아 근데 충고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고 쓸데없었다.
유퀴즈에서 봤던 명언이 생각났다.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조언은 더 기분 나빠요."
평화로웠던 나의 오전 시간을 깨부수며 혼자 자진모리장단을 쳐대던 점장이 겨울 되니 손님이 별로 없다고 평일 알바는 다 자르고 주말 알바만 쓰겠다고 했다. 그리곤 나에게 주말에 일해줄 수 있냐 물었고 이때다! 싶어 주말은 일정이 있어 일 못하겠습니다~하고 그만두었다.
갑자기 한 줄의 동아줄이 내려오는 것 같아 얼른 잡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물론 자기가 혼자 해보니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는지, 평일 피크 타임만이라도 주 5일 해줄 수 있냐 연락 왔지만 이미 마음이 떠버린 자는 단칼에 거절했다.
일은 쉬웠지만 이 사람과 함께 일하면 스트레스받을 게 눈에 선하게 보였다. 그렇게 더 벤티를 끝으로 목표했던 카페 알바의 경력을 화려하게 남기며 휴학 생활 알바를 마무리했다. 나름 만족할 정도의 돈을 모았고 오랜 시간 준비해왔던 교환학생에도 합격했다. 계획대로 복학 후 1학기를 다니고 2학기에 교환학생을 갈 채비를 마쳤을 때, 갑자기 코로나가 터졌다.
나의 교환학생도, 복학도 다 날아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물금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 머무르게 되었다. 그렇게 난 비대면 수업이 계속되는 무료한 일상 속에 또 새로운 알바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