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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Sep 18. 2024

범죄자 아들과 집 나간 엄마

그녀가 간 곳은 접견장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과 은채를 향해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의가 헤어스타일에 그대로 드러난듯 했다. 피부에 비해서 유난히 새까만 염색모와 반들반들 물방울이 흘러내릴 광택의 까만 구두코가 조화를 이룬 차림새였다. 용제살이때 대학교에 다니던 청년이 중년 남자가 되어 은채 앞에 서 있었다.


"경이, 맞지? 오랜만이네."

"네. 삼촌 잘 지내셨지요?"

용제살이 주인집 막둥이 아들과 은채는 그렇게 빛바랜 세월을 건너 만났다.

[#중년의 은채 이야기]


마침내 은채도 검정 크로스백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은채와 서연은 산수유나무 옆 돌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돌계단 옆에는 민원실 이정표가 있었다. 두 사람은 신분증을 꺼내 가방 외부 수납칸에 옮겨놓았다. 


민원실로 향하는 돌계단을 오르는 은채의 몸이 휘청거렸다. 서연은 은채의 손을 붙잡아 주면서 돌계단을 오르는 브라운 로퍼를 보았다. 평소에 신던 트레킹화 대신에 은채는 앞코가 둥근 참 장식 스웨이드 로퍼를 신고 있었다.

'저 이쁜 신발을 신고 오르는 곳이 접견장이 아니라 핫플 명소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연은 안타까웠다.


은채와 서연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민원실에 들어갔다. 시간이 아침 9시 5분을 지나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서연이 접견신청서를 대필하여 접수하고 나서야 은채는 접견이 실감 났다. 대기실 의자 끝에 간신히 엉덩이를 걸친 채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서연은 민원실을 꼼꼼히 파악해 두었다. 온라인 접견부스와 편지 작성대, 관내 통화가 가능한 전화기 등 이용할 만한 시설이 있는지 살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비치된 편지지 두 장을 챙겼다.


"아참, 상민이한테 영치금 넣으려는 거 아니었어요?"

서연은 은채에게 영치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깜빡했어. 어떻게 해야 하죠?"

서연은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영치금에 보태요. 이모가 조카 용돈 주는 거예요. 헤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연령이 다양했다. 어떤 사연으로 누굴 기다리는지 한결같이 긴장된 표정이었다. 접견이 개시되었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이름이 불리는 대로 접견 신청자가 접견장으로 가는 문 입구로 이동했다.

은채는 텀블러 물을 연거푸 마셨다. 서연도 마음이 조마조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시간이 넘어서자 민원인들이 얼추 빠져나갔고 한산해졌다. 그때 창구에 전화벨이 울렸다. 담당자가 은채를 불렀다.

은채와 서연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서연은 은채의 손을 잡아끌고 담당자 앞으로 갔다.


"수용자가 접견을 거부했습니다."




접. 견. 을. 거. 부. . 습. 니. 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서연이 수용자 이름과 접견 신청자 이름을 거듭 확인했다. 접견거부가 확실했다.

팽팽히 잡고 있던 줄이 뚝하고 끊어지며 까마득한 우물 속으로 돌덩이가 텅~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은채는 손에 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민원실 밖으로 황급히 걸어 나갔다.

힘없이 돌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서연은 말없이 은채의 어깨를 다독였다.

18년 만의 만남이 이렇게 불발되었다.

시간은 은채의 눈물을 투과해 그녀의 온몸으로 농짙은 그리움이 되어 스며들었다. 순식간에 심연에 흐르는 어린 상민을 소환했다. 그날, 엄마 손을 잡고 잠든 상민의 마른 눈물자국이 떠올라 은채는 목이 메었다. 


"엄마를 안 만나려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랬구나. 상민이도 엄마 만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동안 세월이 얼만데. 그럴 만도 하지. 수감된 모습 보여주는 것도 괴로웠을 거고."

"결과적으로 내가 애들만 두고 집 나간 꼴이 되었지만 애들은 알지 못하는 속내가 있어요. 그러니 어느 아들이 바람나서 나간 엄마를 만나려고 하겠어요. 오늘은 영치금 넣었으니까 헛걸음은 아니네. 괜찮아요. 쌤한테 미안해서 그렇지. 시간 내서 왔는데."

"에이, 우리 사이에 그런 말 있기 없기. 용기 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예요. 영치금도 넣었고요. 이왕 시작한 일이니 다시 옵시다. 토요일 시간 괜찮은데 어때요?"

서연은 휴대전화의 일정표를 열어 은채에게 보여주었다.

"시간이 10시 반 밖에 안 됐으니까 우리 가는 길에 강주수목원 들러요. 거기 들러서 산책하면서 마음 좀 추스르게요. 기분전환도 할 겸. 괜찮죠?"

서연은 은채의 대답을 채 듣기 전에 Ta-맵을 열어 강주수목원으로 목적지를 입력했다.




수목원은 계절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한 가지마다 햇살이 비쳐서 작은 연못에 반영을 이루었다. 포토스폿으로 손색없는 풍경이 군데군데 눈길을 끌었다.

서연은 볕이 잘 드는 벤치를 골라 아침에 준비해 온 차와 간식을 펼쳤다. 뚜껑을 연 텀블러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며 모과와 생강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따끈한 차를 한 모금 마신 은채가 양팔을 벤치 등받이에 걸치고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은채의 시선이 하늘에서 연못 쪽으로 이어졌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성인 두 사람이 함께 건널만한 폭의 목재다리가 놓여 있었다. 연못 위에 그려진 나무의 반영을 다리가 가로질렀다. 은채는 나무의 반영을 오래 응시했다.

수감되어 있는 상민의 인생이 연못에 비친 나무의 반영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의 걸음을 따라 수면 속 다리 지지대가 흔들렸고 물 위에 파문이 일었다. 파문을 따라 반영도 흔들리며 형상이 일그러졌다.

상민의 인생이 시작부터 삐걱거렸음을 은채는 인정했다. 그 시작점은 은채 자신이 상민의 곁을 떠나온 순간이었다. 아니,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긋난 인생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자신의 출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버려진 자신 또한 아들을 버렸다는 자괴감이 은채를 짓눌렀다.


은채는 연차까지 쓰고 동행한 서연을 두고 상념에 계속 빠져들면 안 될 것 같아 목소리 톤을 높였다.

 "오랜만에 산책하니 좋다. 하늘 참 맑네. "  

접견 실패로 깊은 우울감에 빠질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은채 목소리가 나쁘지 않아서 서연은 안심했다. 자라면서 수없이 경험한 좌절로 인해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은채에겐 어렵거니와 도전에 실패한 결과는 더욱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세상 어떤 일을 다 포기한다 해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일이 자식 일인데 하물며 유년기에 헤어져 살아온 아들에 대한 은채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싶었다.


은채는 한기가 느껴져  카키색 모직코트의 옷깃을 바짝 여몄다. 서연이 유리온실로 발길을 돌렸다.

 "밖에 오래 있으니 서늘하죠? 유리온실은 따뜻할 거예요. 꽃도 구경할만한 게 제법 있을 거고." 

온실에 막 들어섰을 때 은채가 말했다.

"사실은, 강주교도소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진짜요? 누구요?"

서연은 은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서연이 알고 있는 은채 지인 중에는 마땅히 짚이는 인물이 없었다. 은채 지인의 대부분은 첫 결혼지옥에서 빠져나와 알게 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었고 거기에 직장동료들과 교회 교인들이었다. 관련된 인물로 마땅히 짚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용제 살 때요, 그 집 아들 중에 막둥이 삼촌이 있었거든요. "

은채가 더부살이하던 주인집 막내아들이 도청소재지 대학교 법대를 졸업했으나 번번이 사법고시에 실패했단다. 결국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늦게 교도관 시험에 합격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독하게 어린 나를 부려먹더니 결국 그 많은 전토 다 날리고... 형제 중 제일 성공한 게 막둥이삼촌이에요."

희미하미묘한 감정이 은채의 얼굴에 어룽졌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지난번 간식까지 챙겨 온 서연에게 미안해서 은채가 도시락 준비를 했다. 중탕기에 훈제계란도 완성이 되어 있었다. 직접 기른 엿기름으로 식혜도 두 병 만들어 놓았다. 식혜는 용제살이때 막내삼촌이 좋아하던 음료였다.

은채는 서연이 좋아하는 단호박샐러드와 소고기채소김밥으로 도시락을 채웠다. 은채에겐 가격이 부담인 딸기도 한 팩 준비했다.

음식냄새를 샤워로 씻어냈다. 머리카락까지 스며든 파스냄새는 화이트 머스크향의 진한 바디클렌저로도 지우기 힘들었다. 오늘만큼은 파스를 바르지 않았다. 화사한 인디핑크 트위드 하프코트를 꺼내 입었다.


서연의 차차오톡 메시지가 떴다. '주차장 도착. 이쁘게 하고 내려와요.'

"어머나, 뭐가 이렇게 많아요. 우리 둘이 먹을 건데 이거 다 어떻게 먹으려고요."

"김밥이 그렇잖아요. 한 번 만들 때 기본 열 줄. 주찬이 먹을 것 좀 남겨두고 따로 도시락 챙겼어요."

"세상에. 언제 다 준비하고. 대체 잠은 잔 거예요? 오늘 예감이 좋다. 하하"

"그러게 오늘은 아들이 만나주려나. 꼭 만났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주인집 막둥이 삼촌 만나기로 했어요."

"아, 그 용제 살 때 주인집 아들요? 오늘요?"


주말이라 그런지 도로는 평일보다 한산했다. 경험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 것인가. 운전하는 서연은 초행길이 아니라 훨씬 가벼운 마음이었다. 차창밖의  풍경에 눈을 돌리고 음악을 듣는 은채의 모습도 며칠 전보다는 안정적으로 보였다.

미나리하우스가 보이기 시작하자 은채가 자세를 고쳐 앉고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폈다.

서연의 가방에는 엄마 은채의 아들 상민을 향한 마음이 대필된 편지가 들어 있었다. 혹시 지난번처럼 상황이 어긋나면 편지라도 전달하려고 은채 몰래 챙겨 온 편지였다.


민원실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더욱 붐볐다. 앉아있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지만 언제 호명이 될지 모를 일이라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민원인이 많아지고 난방으로 공기가 탁해지면서 긴장한 은채는 호흡이 가빠졌다. 얼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서연이 간신히 자리를 구해서 은채를 앉히고 텀블러를 꺼내 물을 건넸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서연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 걱정 말아요. 오늘은 예감이 좋아요.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은채를 안심시켰다.


기다리던 그 이름이 안내방송에서 흘러나왔다. 드디어 접견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서연은 접견을 받아들인 상민이 고마웠다. 범죄를 저지르고 죄인 신분으로 수용자가 되었지만 상민 또한 은채에게는 더없이 귀한 아들이었다. 이제 접견하는 시간은 온전히 은채의 몫이었다. 서연은 접견장을 향하는 은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상민이 맞지? 엄마야. 알아보겠어?"

"네."

"너무 늦었지? 이제서야 아들을 찾아서 미안해. 어디 아픈 데는 없는 거야?"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요. 긍금했어요.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아빠가 술만 마시면 나를 떄렸는데 정말 닮았네요."

"미안해. 상민아. 엄마라고 말하기도 부끄럽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

"지내는데 불편한 건 없어? 필요한 건?"

"..."

"네 아빠 무서워서 늬들이 보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어. 네 할머니도 무섭고. 갔다가 걸리면 죽을 것 같았어."

"그런 말 하러 온 거예요?"

"아냐, 미안해. 미안. 근데 어쩌다 여기 들어오게 된 거야? 이게 다 엄마가 없어서 그런 거지."

"..."

"네 동생 재민이는? 소식 알아?"

"재민이? 무슨 염치로 재민이를 물어봐? 그때 왜 그랬어요. 그때 왜, 재민이 수술할 때 그때 왜... 아빠가 그렇게 무서웠어요? 바람나서 함께 도망간 그 새끼가 못 가게 했어요? "

"상민아, 그게 무슨 말이야? 재민이 수술이라니?"

"재민이 일곱 살 때잖아요. 재민이가 서울로 심장수술하러 가면서 엄마를 그렇게 찾았는데... 그때 왜 안 왔어요?  에잇, 재민이 그 새끼나 나나 이 따위 인생이 있어? 제기랄..."

"재민이가 수술을 했어? 일곱 살 때? 근데 왜 연락을 안 했어?늬들 지금도 엄마가 바람나서 나간걸로 알고 있구나? 재민이는 지금 어디 있어? 지금은 건강한 거지?"

"뭔 소리예요? 그때 아빠가 연락했는데 엄마가 안 온다고 했잖아. 그때 재민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바보 같은 새끼. 안 올 줄 알면서도 수술 끝나고 엄마부터 찾고..."

"아빠가 연락을 했다고? 이런 웬수 같은 인간이 끝끝내 애들 못 만나게 하려고... 어린 아들 불쌍하지도 않았나. 흑흑흑"

"두 분 다 똑같아요. 그만 가세요."

"아냐, 상민아, 미안해. 그래서 재민이는? 지금 어디 있어?"

"부모복 없는 놈이 몸까지 그 꼴이라.. 걔 수술하고도 별로 몸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된 거야? 괜찮은 거지? 살아있지? "

"그냥 콱 한방에 죽어버리면 인생 끝나는건데 그 몸으로 뭘 살겠다고.. 빌빌거리면서 병원 다니고 뭐라도 벌어보겠다고 일자리 알아보러 경기도 올라갔어요. 지금은 어디 있나 몰라요. "

"흑흑흑.... 미안해. 다 엄마 탓이야. 미안해."

"그만 가세요. 여기서 밥먹여주고 편히 지내니까 가서 잘 살아요. 그래도 아빤 우릴 버리지는 않았잖아요."

"상민아, 미안해. 늬들만 그렇게 두고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 여자만 아니었어도... 죽어도 함께 죽는 거였는데.. 흑흑"




서연은 접견이 이루어졌을 생각에 아들과 엄마의 해후를 상상했다. 상기된 얼굴로 접견장에서 돌아올 은채를 기다리며 출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은채가 넋이 나간듯 비틀거리며 출구로 나왔다.


"괜찮아요? 많이 울었구나. 그렇지. 아들을 얼마 만에 보는 건데. 애썼어요. 잘했어."

서연은 은채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고마워요 쌤. 덕분이에요. 상민이는 다행히 건강해요."

"그래요. 건강하면 됐지. 뭐 필요한 건 없고? 어쩌다 그리 되었대요?"

"그건 못 물어봤어요. "

"그래요. 오늘은 얼굴 보는 걸로도 충분하죠. 또 오면 되니까. 여기 아는 사람 있다고 했잖아요?"

"네. 접견 마치고 만나기로 했어요. 전화하면 이쪽으로 온다고 했으니 전화해봐야지요."


서연과 은채는 민원실을 나왔다. 그 사이 해가 들어가고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이상 고온현상이 지속된다더니 비라도 내릴 모양인지 다습한 훈풍이 불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은채가 말했다.

"삼촌이 여기로 온다고 기다리라고 하네요. 차에 잠깐 들를게요."

은채는 차 안에서 식혜와 간식이 들어있는 꾸러미를 한 개 가져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과 은채를 향해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의가 헤어스타일에 그대로 드러난듯 했다. 피부에 비해서 유난히 새까만 염색모와 반들반들 물방울이 흘러내릴 광택의 까만 구두코가 조화를 이룬 차림새였다. 용제살이때 대학교에 다니던 청년이 중년 남자가 되어 은채 앞에 서 있었다.


"경이, 맞지? 오랜만이네."

"네. 삼촌 잘 지내셨지요?"

용제살이 주인집 막둥이 아들과 은채는 그렇게 빛바랜 세월을 건너 만났다.





[에필로그]

은채는 최근에 이사를 했다.

용제살이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손에서 일을 놓은 적이 없었다. 아기를 낳고도 일주일만에 공장으로 다시 나갔다. 몸은 퉁퉁붓고 하혈은 멈추지 않았는데 등떠밀려 일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근무 여건도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그렇게 부지런했건만 수중에 돈이 모아지면 이래저래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다 빠져나갔다. (솔직히 이건 두 번째 남편의 뒤치닥거리)

형편을 딱하게 여긴 지인이 작은평형의 아파트 월세를 보증금 없이 반값으로 내주었다. 그런데 하필 이사가게 된 곳이 부전동이었다. 부전동은 시골살던 상민이네가 시내로 나와서 살고 있는 곳이다.


언제였던가. 은채와 함께 부전동 우렁쌈밥 맛집에 가게 되었다. 식당 앞 도로변에 주차하고 내린 그녀가 자꾸 눈치를 흘깃흘깃 보았다. 주차한 곳의 앞쪽 인도에 중년 남자 너댓명이 무리지어 왁자지껄 서 있었다. 대화 소리가 꽤 거친 것이 거나하게 취해 보였다. 거길 지나쳐야 식당으로 갈 수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앞을 걸어 식당 입구로 갔다. 그런데 뒤따르던 그녀가 인도가 아닌 도로변을 20미터쯤 걸어 올라갔다. 그런 후에 인도로 올라서서 다시 식당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짧은 길을 두고 왜 그렇게 멀리 돌아왔냐 물으니 거기 무리지어 있는 중년 남자들이 무서워서 그렇다고 했다. 여기가 부전동이라서 혹시 그 남자들 중에...


부전동에서는 낯 두툼한 중년 남자만 보아도 은채는 긴장하고 눈치를 흘깃흘깃 본다.

그런 그녀가 부전동살이를 편히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덧)

이 글의 접견 상황은 현재 시스템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현재는 미리 접견을 예약해야 합니다.

당시에는 예약없이 접견을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참고하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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