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엄마의 해후는 그렇게
주인집 큰 아들 석환이 결혼을 해서 옆동네 만월리에 양옥집을 지었다. 동네 또래들이 가방을 메고 국민학교에 가 있는 동안 은채는 인부들의 점심밥과 오전, 오후 새참을 내놓아야 했다. 집 짓는 터 한쪽에 양철판을 얼기설기 얹어서 간이 부엌을 만들어 주었다. 주인 할머니는 그날 필요한 식재료를 아침에 갖다 주는 것과 점심밥이 다 되었는지 확인하러 올뿐이었다. 어린 손이 혼자 벅찼지만 그래도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먹을 수 있었다. 새참이라도 남게 되길 바랐지만 손에 저울이 달린 건지 주인 할머니는 딱 맞게 재료를 갖다 줬기에 그런 날은 드물었다. 소나기 쏟아지는 날에는 양철판 위로 투두둑 투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았다. 어석술로 감자를 긁으며 비를 긋는 시간이 그렇게 평화로웠다. 봄에 시작된 공사는 추석을 앞두고 끝이 났다.
다른 집들은 마당에 텃밭을 일구었지만 석환은 아내인 서울새댁을 위해 잔디를 심고 긴 나무의자를 마당에 갖다 놓았다. 잔디관리가 은채 몫이 되었다. 5월만 되어도 잔디 사이에 괭이풀, 질경이, 조뱅이풀이 넘쳐났다. 조금만 잡풀이 보여도 석환은 은채를 불러댔다. 뜨거운 햇살에 쪼그리고 앉아있으니 오금에서 흘러나온 땀이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막혀 흘러내리질 못했다. 오금에 땀띠꽃이 피었다. 장맛비를 맞은 풀은 잔디보다 훨씬 빨리 자랐다. 풀이 뽑히면서 튀어 오르는 흙과 땀이 눈으로 들어가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일과는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졸음을 불렀다. 한참 졸다보면 석환이 커다란 손으로 은채의 등짝을 후려댔다. 그러는 바람에 손에 쥔 낫이 흔들려 고무신을 뚫고 들어와 상처가 크게 났다. 억울함이 촘촘한 돌담처럼 쌓였다. 잔디를 다 쥐어뜯어내고 싶었다. 땡볕에 기진맥진하도록 잔디를 다듬고 주인집으로 돌아가면 어스름 저녁이 되었다. 어디서 뭘 하다 왔느냐는 주인 할머니의 욕지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