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일상에 대해 끄적이기 했다. 퇴고도 없이 바로 쓰고 바로 발행하는 글이다. 때론 이런 글이라도 힘 빼고 쉽게 써야 쓰는 습관이 무뎌지지 않을 것 같다.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갈 것들은 간다. 생과 사의 길목에 선 사람이 그렇고 시간과 계절이 그렇다. 꼭 잡고 싶은 간절함에도 미련 없이 돌아서는 기회도 그렇다. 소중하게 여긴 것은 더 무심하고 하찮다고 눈길도 안 줬던 것이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정성을 들여 이쯤이면 되겠다 싶은 문장들도 한순간의 클릭질로 허무하게 흔적도 없이 날아가서 휴지통을 아무리 뒤져도 애초에 없던 것이 된다. 마우스 위에 다소곳이 올라앉은 애먼 검지 손가락의 순발력을 탓할 수도 없으니 어찌하랴. 아~~ 악 괴성 한 번 지르고 잃어버린 문장들을 조립하려 해도 재생력이 고갈이라 그 느낌이 아닌 것을.
10월 둘째 주, 정확히는 10월 12일부터 주말마다 장거리 근거리 가리지 않고 나돌아 다녔다. 황금연휴였던 10월 첫 주를 모종의 사건으로 허망하게 보내고 나서 오기가 생겼다. 몸집의 몇 배나 되는 치즈 조각을 다 갉아먹을 고약한 쥐처럼 가을과 짱짱한 대치를 벌였다. 내 생애 남은 가을은 이 번 뿐인 것처럼 괴롭히듯 그리워하듯 사모하듯 그 품을 파고들었다. 올 가을이 가면 다시는 가을을 볼 수 없는 사람처럼 그랬다. 사람일 알 수 없으니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지. 그렇게 해서 매거진 '홀로 걷는 길'을 만들었다.
나는 자연스레 알게 될 경우를 제외하고는 굳이 사별을 말하지 않는다. 내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닌 걸 어쩌랴. 그게 핸디캡이 될 수는 있다. 때론 심리적 정서적으로 큰 구멍이기도 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브런치스토리에서는 나의 사별 커밍아웃이 가볍고 쉬웠다. 그리고 당당했다. 이에 관한 기록으로 작가님들의 마음을 심난하게 했고 또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은 송구하게 생각한다. 남편이 떠난 날도 이제 나와 내 아이들 외에는 누구도 서글퍼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에 잊히는 것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교회에서 일을 보았다. 내일 있을 목사님 생신(회갑) 축하를 위한 음식준비를 했다. 곱고 품위 있으신 우리 목사님(여자분)은 까마득히 모르시는 일이다. 겸손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닮아서 이런 섬김 받는 것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있는 것 없는 것 다 박박 긁어서 퍼주시기 좋아하시는 분이다. 그래도 섬기는 자로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목자는 양들의 영적인 부모이기 때문에 생신 축하는 성도로서 당연한 것이다.
추수감사절(11월 16일)에는 우리 집 김장을 하느라, 지난주 교회 김장날(23일)에는 다시 섬진강에 가느라 연거푸 2주 동안 교회 큰 행사를 참석하지 못했다. 가을 주말 나들이가 길어지면서 완전 뺀질이가 되었다. 다른 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보통 주말엔 경우에 따라 하루 종일, 혹은 오전이나 오후, 아니면 두세 시간이라도 거의 매주 다음 날 있을 예배 준비를 위해 교회에서 혹은 집에서 시간을 따로 가져야 한다.
중고등부 부서장으로 있는 나는 어설프지만 설교준비도 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재정적인 규모가 작은 교회라서 목사님 외에는 부교역자를 청빙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주일학교 각 교육부서장이 설교까지 겸해야 한다. 이러한 난점 때문에 교육부서장은 상당한 부담이 있다. 갈수록 교사직 자원자도 없고 유입되는 교사 없이 빠져나가는 교사만 있다. 현상유지가 최선인 상황이다. 잠깐 이야기가 옆으로 새어 나갔는데 상황이 이렇다.
안 그래도 김장 때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아서 모두들 걱정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주일에 교회에 가니 민망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오전 9시부터 채소를 다듬고 씻고 자르고 조리하고 분주하게 그리고 화기애애하게 준비를 했다. 오늘 참석자 중 가장 어린(?) 나는 권사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합력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호박전을 맡았는데 이쁘고 가지런하게 잘 구웠다고 직분이 아니라 이름을 불러가며 해 주시는 칭찬을 받아서 어린아이처럼 꽤나 기분이 좋았다.
"우리 **이가 이렇게 이쁘게 전을 부쳤네?? " 하면서 말이다. 어디서 이 나이에 이런 칭찬을 듣는단 말인가. 이런 과한 칭찬에는 유난히 나를 제일 이뻐하시는 권사님 두 분이 계셨기에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호박전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노릇하게 구워내면 되는, 동태 전만큼 쉬운 것이거늘칭찬을 받으니 민망하긴 했다.
점심시간에는 직접 준비해 오신 팥 넣은 찰밥과 오징어김치전과 김장 겉절이로 푸짐한 식사교제를 나누었다. 서로들 섬기느라 직접 농사해서 착즙 한 당근즙이며 호두빵, 과일, 수제요구르트 등 후식류도 넉넉했다.
이 나이에 큰언니 같은 분들에게 둘러싸여 귀염을 차지하고 있노라니 즐겁기만 했다. (다른 직분자들은 전날에 장을 보았거나 내일 즉석 음식을 만들거나 식사 후 설거지를 하거나 각자 스케줄대로 나름의 봉사 계획이 있다.)
작은 아이는 졸업여행으로 화요일에 도쿄에 갔다가 오늘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고 한다. 서울 경기지역이 폭설이라는데 인천공항에 주차해 놓은 차를 밤눈도 어두운 초보운전자가 어찌 운전해서 갈까 싶어서 걱정이었다. 지방에 살다 보니 그쪽 도로상황이 어떤지 궁금해서 걱정이 담긴 댓글을 올렸다. 어제 우리 브*스삼남매 포도송이 작가님과 붕어만세 작가님께서 큰 도로는 제설작업이 신속히 이루어져 미끄럽지 않다고 바로 답글을 올려주셔서 안심하고 숙면했다. 아침 6시 도착 예정시간에 올 연락을 기다렸는데 다행히 친구 넷을 태우고 기숙사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감사하신 하나님.
큰 아이는 대학동기를 만나러 오전에 여수행을 했다.
혼자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교회 일을 마치고 그 길로 금강하구에 갈까도 생각했다. 30여분 남짓이면 금강변에 도착할 거리다. 겨울이 되면 날아드는 철새 도래지로 지역에서는 나름 핫한 곳이다. 아직은 이른 감이 있어서 마음을 돌이켰다.
지금 한창 상영 중인 글래디에이터 2를 봤다. 물론 혼영이다. 영화를 그다지 자주 관람하지 않기에 취향이라고 까지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리는 영화는 있다. 주로 죽이고 다치고 찌르고 쏘고 하는 전쟁영화, 잔인한 영화, 그리고 파묘 같은 영적으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영화다.(이것은 어디까지 내 개인적인 기준이고 소견이다. 어제 청룡영화제에서도 상을 휩쓸었으니 작품성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글래디에이터는 선호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붕어만세 작가님께서 최근 글에 친절하게 글래디에이터 1 리뷰를 써 주신 덕분에 영화를 본 거나 다름없었고 거기서 용기를 얻었다. 잔인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겠구나 싶었는데 레민작가님께서 최근 글에 글래디에이터 2 영화감상 리뷰를 올려주셨다. 거기서 아, 꼭 봐야 할 영화구나 쐐기를 박았다. 주말이라도 예매표는 남아있었다.
내친김에 노래방까지 갈까 하다가 이건 조금 더 용기를 내어야 할 일이라 실행을 못했다. 노래방 가본 지가 언제던가. 2018년 12월에 부서 학생들을 인솔해서 간 이후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간다고 하더라도 코인노래방이지. 그게 덜 민폐이고 덜 부끄럽지. 술도 안 먹는 내가 넓은 노래방 한 칸을 차지하고 밍숭밍숭한 얼굴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참으로 민망하다. 노래방에 가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도 좀 정하고 가야 하나, 아니면 즉석에서 내키는 대로 불러 젖히면 되려나 생각하니 혼자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얼굴이 벌개진다.
혼자 먹는 밥은 혼밥, 혼자 보는 영화는 혼영, 그럼 혼자 가는 노래방은 혼방이라고 해야 하나? 혼노라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