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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천사의 원격 가이드

반띵 등골을 빼 줘?

by 라이테 Mar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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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여행으로 하노이를 거쳐 사파에 가기로 한 라이언과 라이테는 미로 찾기 같은 여러 사정을 요리조리 피해 마침내 대단합의 날짜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거의 육군훈련소 신병 단체사진에서 내 아들 찾기, 해변에서 잃어버린 한쪽 무선 이어폰 찾기 수준이었지요.

좀 과한가요? 그만큼 결정장애를 극복하며 날짜를 정하느라 고민이 컸어요.


하노이와 사파의 여정으로 3박 5일은 빠듯하다 판단했고 5.5박 7일을 결정했습니다.

베트남 땅을 밟을 수 있는 날짜 최대 7일.


이제 비행기 수배를 해야지요. 밤에 출발해서 새벽에 도착하거나 이른 새벽에 출발해서 아침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저렴한 것은 다들 아시지요. 라이언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잠깐 집에 내려왔을 때 항공권 예약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딸의 진두지휘가 시작되었어요. 아무래도 검색은 두 청년의 광속을 따라갈 수 없으니 저는 눈치만 살살 살피며 잠잠히 있었지요. 라이언과 딸이 각자 자기의 방에서 페이스톡을 연결해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눕거나 앉아서 한 손엔 폰을 한 손엔 노트북 마우스를 쥐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항공권을 검색했어요.


" 다 함께 한 자리에 모여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굳이 핸드폰 화면에 대고 그래?"


한마디 했지요. 네네. 바로 꼰대짓을요. 그랬더니


"각자 따로 찾아봐야 더 좋은 조건을 빨리 찾아낼 수 있지. 그리고 페이스톡을 해야 찾은 걸 캡처해서 바로바로 올려 확인하고 적당한지 의견을 주고받아 결정하지."


맞는 말이라서 한마디도 못하고 지요. 저는 공항 장기주차장 예약을 하라는 미션을 임명받았어요. 가만히 앉아서 뭐라도 하는 척 숟가락만 올려 거저먹기 하려 했던 꼰대짓이 탄로 나서 어쩔 없이 주차장을 검색했어요.


우리가 선택한 비행티켓은 비엣젯항공 인천발 하노이행 오전 6시 25분. 하노이발 인천행  오전 2시 15분(하노이 현지시각. 베트남 시차 두 시간). 여행 출발부터 국내도착까지 5.5박 7일 여정. 하노이에서 여정을 모두 보내려 했다면 기간을 더 단축할 수 있었으나 우리에겐 인천-하노이 운항시간보다 더 길게 이동해야 하는 하노이-사파, 그리고 하노이-하롱베이 여정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최대한의 일정을 안배했어요.


항공업계 최초 기내식 무한리필을 시전 한다는 꿈의 항공사 (주)초맹항공의 항공권은 아무리 검색해도 뜨지 않아서 켁켁ㅋ 기내식을 생수 한 병도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비엣젯 항공으로 선택했어요. 게다가 웃돈을 얹어야 하는 좌석 지정제를 신청하지도 않았고요. 그야말로 로컬이지요. 아직 콘드로이친 먹을 정도는 아닌 체력이라 그 까이꺼 정도야 하면서 말이지요. 라이언 등골을 빼서 가는 거라 반부담하더라도 항공권은 최소 비용을 지출하기로 했지요.


항공권 다음으로 숙소를 예약해야 했지요. 2월 중순이면 방학 성수기는 살짝 비껴 나는 때니까 좀 여유 있게 알아보면서 준비하자고 한시름 놓았어요.




우리 여행의 총괄 지휘자, 모자여행의 원격 가이드 마틸다 하나 씨 작가님께 댓글로 하노이행을 수줍게 알려드렸어요. 그랬더니 하노이 천사 마틸다 하나 씨 작가님(이하 줄여서 천사)께서 바로 자비를 베풀어 카톡 친구가 되어주셨어요.

방한용품에 관한 맞춤 가이드방한용품에 관한 맞춤 가이드


베트남 대사관 직원도 따라올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사랑을 몸소 보여주셨는데 어마어마했어요. 마치 혈육이 하노이를 방문하는 것처럼 깜짝 반겨주시고 여행에 궁금한 부분은 언제든지, 뭐든지 알고 계시는 범위를 벗어나는 부분이라면 자료를 샅샅이 찾아서라도 답변을 해 주실 것 같은 호의를 베푸셨어요.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했어요. 그때부터 궁금한 것을 물으면 곧바로 답변해 주셨어요.(나중에 알고 보니 일상이 엄청 바쁘신 분이었는데 그걸 제가 몰랐더라고요.)

특히 겨울과 봄의 어중간한 환절기 날씨따른 옷차림과 추위가 질병인 라이테를 위한 특별맞춤 방한용품 등을 챙기길 조언하셨어요. 사파가 해발고도가 높은 고산지대여서 하노이 지역보다 낮은 기온이었고 한국의 겨울애 해당하는 계절에 사파를 직접 여행하신 이야기를 보더라도 방한용품은 요긴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부분은 쉽게 나오는 정보가 아니었어요. 브런치스토리 이웃작가로서 짧지 않은 기간의 소통, 특별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작가 개인에 대한 앎을 최대한 반영한 조언이었어요. 여행 시 일반적인 정보는 웹에도 많이 나와있었지요, 그러나 천사 작가님께서 제가 꼭 알아야 할 맞춤정보, 사파 중심으로 슬리핑 기차로 이동시 필요한 숙소, 맛집, 선택하지 않아야 좋을 메뉴, 심지어 마사지숍, 관광 포인트까지 얼마나 속속들이 도움을 주셨는지 표현하기 힘든 사랑과 친절을 옷 입은 분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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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사막여우를 만나기 한 시간 전부터 즐겁다는데 우리는 만나기 50일 전부터 카톡을 트고 즐겁기 시작했어요.

친절의 절정은 바로 하노이에서 저녁식사 제안. 라이언과 동행이니 아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사양해도 좋다는 조건까지도 친절히 붙이셔서 부담 없게 배려하셨어요. 게다가 제 글을 꾸준히 읽으신 분이라면 알 수 있는 라이언의 나이를 짐작하시고 댁에도 비슷한 연배의 아들이 있으니 만남에 둘째 아드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겨주셨지요.

아들들과의 동행만남 제안아들들과의 동행만남 제안

만나지 않을 이유가 단 한 개도 없었어요. 우리가 만나기 딱 좋은 조건들이었지만 만약 아들이 동행을 원하지 않는다면 저 혼자라도 천사작가님을 만나 뵐 작정이었어요.

만나 뵙기 전부터 천사작가님의 천성이 어떤 분인지 짐작이 되었어요.

휴머니즘이 기본으로 장착된 데다 유머러스하시고 부지런하시고 다방면의 예술 감각이 뛰어나신 열정과 친절의 품격 높은 분. NGO 단체에서 파견되어 현지인과 울고 웃으며 동고동락하는 해외 선교 소식지에서나 만날 만한 분. 하노이의 천사 마틸다 하나 씨 작가님의 천성이 그랬어요.

우리 만남 이야기가 천사작가님 글에 있답니다.




이틀 전 지역에 내린 큰 눈으로 지역에서 전날 밤 11시쯤 꽃분이를 타고 출발한 우리는 발권시간보다 훨씬 넉넉하게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노숙하는 신세로 두 시간쯤을 버텼어요. 일찍 대기한 덕분에 발권수속은 줄 서기 30여분 만에 이루어졌어요. 공항 검색대를 지나고 셔틀트레인을 타고 탑승동으로 이동했어요. 트레인에서 하차 후 라이언이 탑승구로 가기 전 들러야 할 곳이 있다고 했어요. 탑승시간까지는 1시간도 넘게 남은 상태였어요. 얇은 패딩을 입은 제게 넓은 공항은 여전히 싸늘했으니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낫겠다 싶었지요.


"엄마, 비행기 타기 전에 잠깐 들러서 찾아가야 할 게 있어."

"그래? 뭔데?"

"신라면세점에서 구매한 게 있는데 인도장에 가서 찾으면 되는 거야. 가서 얘기해 줄게."

"출국하기도 전에 벌써 지름천사가 임했구먼."


저는 한마디 붙이고 라이언을 순순히 따라갔지요.


거듭 말씀드렸다시피 돈 관리가 철저한 라이언에게도 펑펑 지름천사가 임할 때가 있으니 그게 바로 여행에서였어요. 지금까지 지름천사가 홀연히 나타난 사례가 모두 해외여행에서였어요. 그동안 수년 내 몇 차례 다녔던 여행에서 라이언을 보면 과하다 싶게 현지에서 판매하는 간식류를 구매해 오곤 했어요. 그때마다 잔소리를 하면

"엄마, 해외여행 가서 가족들 선물 사 오는 게 내 기쁨이야. 내가 다른 때 과소비하는 거 봤어?"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다 먹을 것들인데 차라리 필요한 물건을 사든지."

"뭘 사든 내가 알아서 할게. 내 용돈으로 내가 쓴 거니까 이 즐거움을 뺏지 말아요."


아쉬움은 있었지만 라이언을 인정할 수밖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어요. 타지에 있다가 집에 오더라도 라이언은 엄마와 누나를 위한 소소한 것들을 사 오곤 했는데 이것은 소천하신 시부를 닮은 내력 같았어요. 시부께서 살아계실 적에 퇴근 때 자주 소소한 간식들을 사다 주셨거든요. 라이언은 시부께서 소천하신 이후 태어나서 한 번도 조부를 뵌 적이 없는데 참 신기한 게 내력인 것 같아요. 얘기가 잠깐 옆으로 샜군요.


'예약한 걸 수령한다니 그분이 진작 왔다갔구만' 속으로만 투덜 하면서 면세품 인도장에 도착했어요.

거긴 수납장 칸칸마다 포장이 된 물품들이 즐비했어요. 라이언은 판매원과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물건을 받아 들었어요.


"엄마, 이거 향수. 엄마 거야."

"뭐? 내 거?"

라이언이 내민 투명 포장비닐 안에는 명품브랜드 축에 끼는 향수가 들어있었어요.

브런치 글 이미지 4

"작년 가을에 일본으로 졸업여행 갔을 때 엄마 사다 주고 싶었는데 그때 시간이 촉박해서 웹주문을 놓쳤어. 웹주문이 매장판매가보다 저렴했거든."


유일하게 제가 갖고 있는 명품브랜드 제품이라곤 생일선물로 받은 립스틱과 향수입니다. 명품브랜드를 누릴 수 있는 형편도 아니지만 그다지 관심이 없는 제가 딱 한 가지 욕심나는 것이 바로 향수였거든요. 그것을 라이언은 알고 있었던 거예요.


"엄마, 누나한테 부탁해서 엄마 또래들이 즐겨 쓰는 향수가 뭔지 알아냈어. 향이 마음에 들면 좋겠네. 누나랑 반띵 했어."


아, 이번엔 라이언과 딸의 반띵이 적용되는군요? 역시 반띵을 좋아하는 우리 .

무슨 향이면 어떻겠습니까. 설사 두리안 냄새가 나더라도 엄마에겐 천상의 향기처럼 끝장나지요.


지금까지는 제가 라이언의 보호자였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라이언과 제 위치가 바뀌었어요. 하노이-사파 여행에 관한 한 언어, 순발력, 정보, 체력, 식성 등 모든 면에서 더 우위의 조건에 라이언이 있으니 그래야 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딴지를 걸거나 어설픈 풍월로 하는 꼰대 마인드를 장착해서는 안 되겠기에 꼰대 마인드는 비행기를 타기 전 인천공항에 꽁꽁 자물쇠를 채워 놓기로 다짐했지요.

여행 시작하자마자 대박 선물을 받았는데 뭐든 라이언이 하자는 대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헌법 5조 2항보다 더 우위에 놓기로 했습니다.

반띵 등골 메이커반띵 등골 메이커

우리는 드디어 하노이행 비행기에 올랐고 지역에서 출발한 지 12시간 만에 하노이  노이바이국제공항에 도착했어요.


내 나라에서야 맘껏 라이언 등골을 빼먹어도 걱정 없지만 해외에서는 우리가 서로, 아니 제가 라이언을 단단히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등골 빼기는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합니다. 해외에서 등골 빼다가 물벼락 맞을 일은 만들지 말아야지요.


라이언의 대박선물은 자발적 등골 빼주기로 인정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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