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구독과 좋아요, 제2의 전성기

시간의 다방 : 그레이네상스, 다시 피어나는 꽃

by 공감디렉터J


“여러분, 안녕하세요! '순이네 부엌’의 김순이입니다!”

작은 링 조명 하나 켜놓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향해 인사하는 김순이(68세) 씨.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오늘은 며느리도 안 알려주는 묵은지 고등어조림 비법을 공개할게요.”

30년 전업주부 경력. 요리 솜씨만큼은 동네방네 소문났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영락없는 초보였다.


“할머니, 목소리가 너무 작아요.”
“편집이 너무 촌스러워요.”


달리는 댓글들. 악플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의 냉정한 피드백에 순이는 의기소침해졌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유튜브를 한다고...’

편집하다 지쳐 잠시 잠든 사이, 꿈속인지 현실인지 모를 공간에 와 있었다.
유튜브 로고가 붉게 빛나는 스튜디오.

[시간의 다방 - Creator Studio]


화려한 조명, 방송용 카메라.
그리고 '실버 버튼’을 들고 있는 멋쟁이 할머니.
빨간 립스틱에 선글라스를 낀, 100만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를 닮은 분이었다.

“어머, 순이 씨? 구독자 300명 축하해. 시작이 반이라니까.”

멋쟁이 할머니가 호탕하게 웃었다.
순이는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워요. 늙어서 주책인 것 같고... 애들이나 하는 거지, 이걸 내가 어떻게 해요.”

“주책은 무슨! 인생 70부터야. 나도 이 나이에 화장하고 춤추고 다 해. 재밌잖아.”

할머니가 쟁반을 내밀었다. 노트북과 커피.

“자, 알고리즘의 선택이야.”

“구독 버튼을 누르면, 구독자 100만 명을 선물로 줄게. 자고 일어나면 스타가 되어 있을 거야. 방송국에서 섭외 오고, 광고 찍고, 돈방석에 앉는 거지. 악플? 그런 거 다 매니저가 처리해 줘.”

“삭제 버튼을 누르면, 채널을 폭파해 줄게. 유튜브 하느라 받은 스트레스, 눈 아픈 편집... 다 잊고 그냥 평범한 할머니로 돌아가. 경로당에서 10원짜리 고스톱이나 치면서.”

“업로드 버튼을 누르면... 넌 계속 그 링 조명 앞에서 혼잣말해야 해. ‘좋아요’ 하나에 울고 웃으며, 오타 난 자막 수정하느라 밤새워야 해. 악플러랑 싸우기도 하고.”

순이는 구독 버튼을 쳐다봤다. 100만 유튜버.
그럼 무시하던 며느리 코도 납작하게 해주고, 손주들한테 용돈도 팍팍 줄 텐데.

하지만...
순이는 지난주에 달린 댓글 하나를 떠올렸다.


‘할머니 영상 보고 엄마 생각나서 울었어요. 자취생인데 덕분에 밥 잘 해 먹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그 댓글 하나를 백 번도 넘게 읽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누군가에게 내 밥상이 위로가 된다는 것. 내 평생의 노동이 헛되지 않았다는 인정.
100만 명의 환호보다, 단 한 명의 진심이 더 고팠던 것일지도 모른다.

“언니.”

순이는 구독 버튼을 밀어냈다.

“나 공짜는 싫어. 내 요리도 30년 걸려서 완성된 맛인데, 인기도 숙성이 돼야지.”

“오, 멘트 좋은데? 썸네일 각이야.”

“그리고... 편집하다 보니까 재밌어. 내가 자막으로 ‘존맛탱’ 이런 말 쓰면 우리 손녀가 깔깔 넘어가. 나 그 재미로 해.”

순이는 블랙커피를 들었다.

“악플? 달리면 달리는 거지 뭐. 내 묵은지 맛을 모르는 놈들이 불쌍한 거지.”

순이는 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까지!”

멋쟁이 할머니가 박수를 쳤다. 스튜디오 조명이 팡팡 터졌다.


잠에서 깬 순이는 다시 거실 식탁 앞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이 켜져 있었다.


‘순이네 부엌’ 구독자 301명

한 명이 늘었다.
순이는 빙그레 웃으며 앞치마를 고쳐 맸다.

“자, 이번엔 NG 없이 가보자! 레디, 액션!”

순이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부엌은 이제 단순한 조리 공간이 아니었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송국이자, 제2의 인생이 끓어오르는 뜨거운 현장이었다.




[작가 노트]
주인공 순이에게 유튜브는 단순한 돈벌이나 유명세가 아니라, 평생 해온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세대와 소통하는 창구입니다. 요행으로 얻는 인기나 도전을 포기하는 안주 대신, 서툴지만 진정성 있게 소통하며 성장하는 현재를 선택합니다. "100만 명의 환호보다 단 한 명의 진심이 소중하다"는 깨달음은 디지털 세상에서도 변치 않는 인간관계의 본질이 아닐까요?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