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정수 Sep 02. 2024

이틀 만에 BACK! 나처럼 준비하지 마셈~

두 집 살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산골생태유학을 하기로 한 뒤에 실행에 착수했다. 나와 딸아이는 진동2리 도농교류센터(유학센터)라고 부르는 마을펜션에 머물게 됐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펜션인데 침실1, 주방과 붙은 거실1, 욕실1, 다락1, 다용도실1 형태의 원룸이다. 감사하게도 인제군에서 월 60만 원을 체류비로 지원해 준다. 다만, 내게 직접 주는 건 아니고 내 명의로 마을 계좌로 펜션 임대료로 바로 입금이 되는 구조다. 어쨌든 나와 딸아이는 주거비 걱정 없이 산골살이를 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수도요금과 인터넷요금도 마을에서 부담해 준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주거비 지원 60만 원에 대한 세금 6만 원과 전기요금뿐이다. 난방은 기름보일러를 때는데, 인제군에서 정착지원금으로 지급해 준 '그리고카드' 지역화폐 60만 원(30만 원 x2인)으로 기름 2 드럼을 구입하면서 아직까지는 걱정 없이 지내고 있다. 그 밖에 핸드폰요금, 딸아이와 내가 먹는 반찬값, 밥값, 이런 건 당연히 내 주머니에서 나간다.


산골생태유학은 학기 단위로 신청을 한다. 기본 6개월 신청을 하고, 한 학기를 더 연장할 수 있다. 최대 1년까지 산골유학으로 머물 수 있는 셈이다. 우리는 떠나올 때부터 1년 동안 머물 생각을 하고 왔다. 그런데 1년이란 기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작은집'에 새로 세간을 들이기에는 짧고, 그렇다고 세간 없이 무작정 버티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란 뜻이다. 다행히 산골생태유학을 운영하는 인제로컬여행사업단과 진동 2리 마을에서 붙박이로 들여놓은 세간들이 있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TV,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옷장, 식탁과 식탁의자2, 인덕션 전기레인지, 커피포트, 냄비와 프라이팬, 청소기 등을 지원해 줬다. 아직도 감사한 마음으로 잘 쓰고 있다.


산골유학 들어오기 전에 이런 물품들이 지급된다는 걸 미리 통보받고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체크했다. 2024년 3월 1일 아이의 개학을 이틀 앞두고 산골로 떠났다. 아이가 공부할 책상과 책상의자, 나와 아이가 지낼 침대, 아내와 왔다 갔다 하면 쓸 여분의 침구, 그릇과 수저, 조리도구, 옷가지 등을 챙겼다. 우리 집 소형 SUV의 2열 시트를 접어서 밴 형태로 만들어 하나 가득 짐을 실어 날랐다. 설피마을 첫날 짐을 내리고 정리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전기 콘센트가 가전제품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요리를 해 먹기에는 조리도구와 양념들이 너무나도 빠진 게 많았다.


아이는 눈 쌓인 설피마을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 신나게 눈놀이를 하면서 놀았지만, 내 마음은 패닉에 빠졌다. '지내면서 차근차근 모자란 것 하나씩 사야지'라고 하기엔 근처에 가게가 없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산 아래 서양양 IC 인근인데 10km를 가야 한다. 그마저도 눈이 많이 내리면 차가 움직이기 어렵다. 계란이 없어도, 양파가 떨어져도 가장 가깝게 장을 보러 갈 수 있는 곳은 양양 읍내 또는 인제군 현리인데, 두 곳 모두 차로 40분을 나가야 한다. 일단 밤이 늦어서 가져온 침구를 깔고 잠을 청하는데 외풍이 매서웠다. 워낙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 이중창과 블라인드만으로는 한기를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남은 짐을 정리하는데 막막함이 가시지 않았다. 당장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만들고는 남아서 눈놀이를 하겠다는 아이를 달래서 과천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멀티탭, 커튼과 커튼봉, 공구, 냄비, 프라이팬, 빠진 조리도구와 양념 등을 챙겨야 했다. 개학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부족한 세간을 실어 나르느라 바빴다. 양양과 현리에서 장을 볼 수 있는 곳을 파악하는 것도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게다가 언제라도 폭설이 닥치면 고립될 수 있다는 압박감이 더해지면서 즉석밥, 생수, 부탄가스와 가스레인지, 쌀 등 생존 물자들을 비축해야 한다는 강박도 조금 생겼다.

처음 두메산골에 들어와서 한 일은 눈을 파헤쳐서 쓰레기장 통로를 만드는 일이었다. 반면 아이들은 언제나 신났다.

내 준비가 허술했다는 점은 순순히 자백한다. 그러나 100% 내 탓만은 아니다. 당시 숙소 리모델링 공사가 예정돼 있었고, 그 공사가 끝나는 시점은 1월 중순이었다. 그러나 공사가 자꾸 지체되면서 입주 가능시점도 뒤로 뒤로 밀렸다. 비탈진 숙소 진입로에 눈이 쌓여서 공사 차량이 들어오지 못해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진 것이다. 결국 완전히 눈이 녹은 다음으로 공사가 연기되긴 했다.


좀 더 일찍 입주가 가능했다면 최소 2주 전에는 입주를 해서 이웃과 안면도 트고 먼저 산 선배 이웃님들의 노하우도 전수받고, 뭐가 모자란 지도 시간을 두고 파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집 살림하느라고 새로 들여온 세간은 프레임 두 개를 겹쳐 쌓으면 소파로 변신하는 침대, 형님이 선물해 준 12kg 건조기, 보리차 끓여 담을 주전자, 브리타 정수기, 프라이팬, 당근에서 2만 원 주고 산 책상 역시 당근 한 책꽂이, 싱크대 상부장 밑에 붙여놓은 LED 조명, 식탁등 대신 벽에 붙여 놓은 LED 조명 정도다. 이 정도면 목돈 안 들이고 두 집 살림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세간은 이만하면 되었다.


정작 이 산골에서 가장 불편하게 느껴지는 점은 장보기가 불편하다는 거다. 지금은 주로 양양읍내를 이용하지만 현리와 양양 두 곳 모두 차로 40분, 왕복 1시간 20분이 걸리므로 장 보러 가는 건 최소화하는 게 좋다. 그래야 나도 글을 쓰고 집안일도 할 시간이 생긴다. 일주일에 한 번 장 보는 걸로 원칙을 세우고 모자란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한다. 초기엔 딸아이에게 양양 가자고 하면 잘 따라오더니 이제는 아빠나 혼자 갔다 오라고 한다. 그 시간에 아이들하고 놀아야 하는 사정이 있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쫌 서운하다. 아주 쵸큼.


나는 원래 살림을 했던 남자기 때문에 괜찮은데, 혹시나 산골유학을 계획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그중에 요리를 하나도 못하는 분이 있다면 일단 요리부터 배우기를 권한다. '요리 못하면 어때, 뭐 사 먹으러 나가면 되지'라고 생각했다간 큰코다치고 맨날 라면만 먹어야 된다. 일정 정도 생존능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힘들다. 중도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기본 생존능력 부족에서 비롯된 경우도 왕왕 있다. 이건 다음 기회에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산골유학하면서 정말 잘 써먹는 아이템은 토스터, 계란 삶는 기계(에그 쿠커 또는 계란찜기), 무선청소기, 제습기와 건조기다. 바쁜데 잘 먹지도 않는 아침식사를 밥으로 해먹이면 재앙이 찾아온다. 들인 시간과 정성이 있는데 아이가 졸린 눈 비비면서 밥을 잘 먹지 않으면 굉장히 대미지를 먹는다. 그래서 아침밥은 최소 공력만 투입하면 되는 것들로 준비한다. 그게 바로 식빵 토스트와 삶은 계란, 팩우유, 과일(또는 채소) 1종이다. 신선우유를 사다 놓으면 반 정도는 버리게 되는 이상한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장기 보관이 가능한 팩우유가 좋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은 준비하기 편하면서 건강한 음식인데 아이가 잘 먹는 것이 최고다.


자동차는 집에서 타던 소형 SUV를 데려왔다. 눈길에 미끄러지면 어쩌나 하고 4WD 중고차를 사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지만, 눈이 많이 오면 차를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2WD나 4WD나 큰 상관없다는 걸 깨달았다. 큰길은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아무리 늦어도 그날 안에는 치워주기 때문에 멀리 가는 건 큰 문제가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건 큰길에서 꺾어 들어와 숙소로 올라가는 그 비탈길이다. 도로가 아닌 주택(펜션) 진입로는 면사무소에서 치워주지 않기 때문에 집주인(또는 입주자) 책임이다. 그런데 지난겨울엔 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또 자주 내려서 그 눈을 치우지 못했다. 그 덕에 아이들은 눈 쌓인 비탈길에서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놀았다.


장황하게 글이 길었지만 결론은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거다. 새 학기 시작하기 넉넉히 전에 미리 들어와서 살아보면서 부족한 점을 찾는 게 최선의 방법일 거다. 도시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 놓을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두메산골에서 살아가려면 '산골의 룰'에 적응하고 어느 정도 불편은 감수할 열려있는 마음이 필요하단 거다. 

 

이전 02화 생태유학지 설피마을... 이렇게 골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