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연구결과들
1. 오늘 팩트체크 해 볼 주제는 '정년연장이 청년층 일자리 줄인다'인데요. 이번 주에 이런 기사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습니다. 먼저 맥락을 좀 살펴보고 시작하죠.
- 네 행정안전부와 대구시청이 소속 공무직 근로자의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새로 취임한 대한노인회장이 노인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75세로 높이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고요. 임금피크제와 연동한 75세 정년 연장안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언론들은 이런 내용을 보도하면서 정년 연장이 청년층 일자리를 줄일 우려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2. 언론사들이 보도했다면 근거도 있을 텐데요. 어떻습니까?
- 경제지들을 중심으로 이런 보도를 많이 내놨습니다. 매일경제는 <“일자리는 그대론데 정년 늘리자고?”…집에서 그냥 쉬는 청년 더 늘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는데요. 전문가들의 코멘트와 연구논문을 인용했습니다. 서울경제는 사설에서 <일률적 ‘정년 연장’ 아니라 유연한 ‘계속고용’ 방안 논의할 때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설에서도 "기존의 임금 체계나 근무 조건을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하면 청년의 신규 일자리 감소에 따른 세대 갈등,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 급증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중앙일보는 <행안부 '정년연장' 신호탄?…재계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부터">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고요. 이 보도에선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을 인용해 “법정 정년을 일률적으로 연장할 경우 청년 일자리를 줄이고 노동 시장 이중 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보수 정치권과 경제신문 등은 대체로 재계 입장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요. 정년 연장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늘리고, 청년 고용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그런 것보다는 고용 유연성을 높이자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죠.
3. 하나씩 따져보죠. 정년 연장이 청년층 고용을 줄인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 KDI정책포럼이 2020년 발간한 ‘정년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원 수가 10~999인 규모의 사업체에서 고령자 1명의 정년을 연장했을 때 청년(15~29세) 고용은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년을 65세로 늘린 후 제도 도입 5년이 지난 시점이 되면 국내 기업들은 한 해 15조 8626억 원의 추가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분석(한국경제연구원)도 있고요.
2022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에선 세대 간 고용대체 관계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고령 노동자들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걸 검증한 연구이고요. 55세 이상 고령자와 35세 미만 청년층 사이에서 고용대체 관계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해 노동경제논집에 발표한 '정년 연장의 청년층 일자리 효과' 논문에 따르면 2016년부터 시행된 60세 정년 의무화로 23~27세 청년층의 전일제 임금 근로 일자리가 6% 감소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4. 정년연장이 청년층 고용을 줄인다는 연구가 굉장히 많은데요. 그럼 다른 결과를 도출한 연구는 없나요?
- 60세 정년 의무화 법안이 제정된 게 2013년인데요. 이 무렵에도 정년 연장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굉장히 거세게 일었습니다. 당시에도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을 줄인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있었는데요. 2013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정년연장, 청년층 고용 악화 요인으로 보기 어려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개발원은 "세대 간 고용률의 상호 보완관계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더 많으며, 앞으로 우리나라 고용 정책은 특정 연령대만을 위한 정책보다는 세대통합적 정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 당시까지 나온 해외 연구들을 봐도 세대 간 일자리 대체설, 그러니까 고령층 고용이 늘면 청년층 고용이 줄어든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보다 세대 간 일자리 보완관계를 지지하는 연구가 더 많았다고 밝힙니다.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2023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결과가 나와있는데요. 이 연구에선 "정년연장에 따른 고령층 고용의 증가가 청년층 고용이 아닌, 중장년층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습니다. 2013년 기준 정년연장 대상자가 1명 더 많았던 사업장은 2013~2016년 기간 15~29세를 0.37명, 30~44세 근로자를 0.61명 추가 고용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45~54세는 총고용이 늘어났음에도 고용인원이 줄어든 걸로 나타납니다.
5.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을 줄인다는 주제에 대해선 상반되는 연구가 나와있는 셈이군요. 그런데 이 정년 연장 논의를 살펴보면요. 좀 공허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주변에 정년퇴직 하시는 분들은 공무원, 교사, 공공기관 이런데 근무하시는 분들밖에 없는 것 같단 말이죠.
- 네 맞는 말씀입니다. 네 국회 미래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정년제가 2016년 도입됐지만 노동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시기는 정년 연장 이전에 비해 오히려 빨라진 걸로 나타났습니다. 2012년만 해도 노동자들이 주된 일자리에서 평균 19년 7개월 일하고 53세에 퇴직한 걸로 나타나는데요. 2022년에는 주된 일자리 근로 기간 15년 5개월, 퇴사 연령 49.3세로 짧아졌습니다. 2012년과 2022년 당시에 각각 55~64세였던 사람들만 놓고 봐도,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49.3세로 동일해, 10년 동안 변화가 없었습니다. 보고서는 정년 연장의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고 분석했습니다.
아무리 법적으로 정년을 늘려놓는다고 해도 실제로 민간기업에서 정년을 채워서 일하는 건 굉장히 소수의 이야기입니다. 대기업들도 50살 넘겨서 회사에 붙어있는 게 굉장히 눈치 보이는 일이 된 지 오래고요. 은행권 같은 데선 경영 압박 요인이 생기면 희망퇴직을 실시해 선임 직원들을 정리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정년 연장 논의를 공허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죠.
6. 그렇다면 왜 정년연장을 하려고 하는 걸까요? 법적으로 정년을 늘려놓으면 국민 개인의 삶이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 정부가 정년 연장을 모색하는 이유로는 저출생고령화 심화를 들 수 있는데요. 젊은이가 줄어들고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데 현재 노동시장 구조를 그대로 두면 결국 일할 사람이 줄어들게 된단 말이죠. 그렇게 되면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요. 경기 침체와 마이너스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죠.
그런데 노인들의 수명이 길어지고 건강 상태도 좋아져서 이제는 환갑잔치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됐잖아요. 70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도 일하시는 분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요. 정부는 노인과 여성인력을 활용하면 이 저출생고령사회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노인들이 좀 더 늦게까지 노동시장에 남아서 일을 하면 젊은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발생하는 노동력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거죠. 여기에 경력단절 여성들이 사회로 나와주는 것도 포함이 되고요.
당장 정년을 늘렸다고 해서 우리 삶이 확 바뀌지 않을 겁니다. 2013년 바뀐 법으로 60세 정년을 보장해 놨는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오히려 빨라진단 말이죠.
7. 일각에선 연금 개시 시점과 정년퇴직 시점을 일치시켜서 소득 공백을 막는다. 이런 취지로 설명을 하고 있기도 한데요?
- 네 행안부 관계자는 “공무직의 정년 연장은 국민연금의 수급 개시 나이에 맞춰 소득 공백을 없애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년이 60세인데 국민연금은 65세부터 받게 되니까 5년 동안은 붕 뜨게 되잖아요. 이걸 막고 연금이 나올 때까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인데요. 이 방안이 발표된 뒤에 그럼 공무직이 아니라 공무원한테도 확대 적용되는 거냐, 민간으로도 확대되냐 이런 논란들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유혜미 대통령실 저출생 대응 수석 비서관은 방송에 출연해 "일반 공무원의 정년 연장과는 별개의 문제다. 공무원 정년 연장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명확한 건 정부가 노인들이 더 오래도록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나갈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현 노동시장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정년만을 연장하는 건 재계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단 말이죠.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정년까지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는 노동자는 강력한 노조가 조직돼 있는 사업장 종사자란 말이죠. 노조가 없거나 있어도 힘이 없는 사업장은 결국 개별 노동자가 싸워가면서 정년을 채워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죠.
8. 청년 취업난은 가중되고 여기에 정년 연장으로 일자리까지 빼앗긴다는 박탈감이 청년세대엔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뾰족한 해법이 없을까요?
-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사 협상을 통해서 정년은 늘리되 근속연수가 늘어나는 만큼 임금은 적정 비율로 삭감해 사측의 인건비 부담을 줄여주고, 젊은이들을 채용할 여력을 늘려주자 이런 취지입니다. 신임 대한노인회장이 정년을 75세까지 연장하고 해마다 받는 임금을 깎아서 마지막 해에는 가장 많이 받던 금액의 20% 정도만 받도록 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취지는 굉장히 좋은데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것이고, 논의 과정이 필요한 거죠. 지금 노조 조직률이 10% 안팎에 머물고 있어서 대타협을 이뤄낸다고 해도 그걸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만 최근 들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공무원 타임오프 한도 합의를 이뤄내는 등 사회적 대화가 재개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는 합니다. 정년 연장 논의도 연말 또는 내년 초 결과를 내놓겠다고 공언하는 상황이라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