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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Oct 11. 2024

1급 발암물질? 조리흄이 뭔데?

검증하지 않는 언론보도

1. 오늘 팩트체크 주제는 "조리 흄 1급 발암물질"인데요조리 흄이 뭔가요? 맥락을 좀 살펴봐야겠습니다

-가정에서도 많은 분들이 매일 요리를 하시고 요리가 직업인 분들도 많이 계시잖아요. 조리 흄이란 일반적으로 기름을 사용해 볶거나 튀기는 요리를 할 때 배출되는 배출물을 말합니다. 영단어 흄(fume)의 사전적 의미는 매연 혹은 (유독) 가스를 의미합니다. 산업안전 현장과 관련 학과에서 통용되는 의미로는 흄은 금속 등 고체가 순간적으로 고온을 받아 기체가 됐다가 냉각되면서 만들어진 미세한 입자를 뜻하는데요.  대표적인 게 용접 흄(welding fume)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조리 흄은 고체가 기체로 변했다가 다시 고체가 된 흄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름을 사용한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물을 ‘조리 흄’이라고 부릅니다.

튀김, 볶음, 구이 과정에서 기름이 에어로졸 형태로 분산되기도 하고, 연소 부산물과 가스 형태의 유기 오염물질, 조리과정에서 식재료가 뿜어내는 수증기가 발생합니다. 조리 과정, 특히 튀기거나 볶는 요리는 실내공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미세 입자들을 만들어 냅니다. 다환방향족탄소(PAHs), 포름알데하이드, 아세트알데하이드, 아크릴아마이드, 아크로레인 등의 발암물질도 만들어냅니다. 이런 유해한 물질이 조리과정에서 배출되기 때문에 유해물질로부터 조리 작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겁니다.


2. 조리할 때 배출되는 여러 가지 유해한 물질이라고 보면 되겠군요그런데 이게 1급 발암물질이라는 이야기는 어디서 나온 건가요

- 학교급식이 실시된 이후 학교 급식실 종사자들의 건강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급식실에서 조리를 담당한 노동자들이 폐암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문제가 노동계를 중심으로 제기됐습니다. 이에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섰는데요. 전국 급식실 종사자 2만 4065명을 검진한 결과, 31명에서 폐암이 확진된 걸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발표는 서울, 경기, 충북을 제외한 중간 결과였는데요. 최종 결과는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학교 급식이 아닌 일반 기업체 급식실 종사자들에게서도 폐암이 확진된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관련된 내용을 전하는 언론보도에서 '조리 흄은 1급 발암물질'이라는 내용이 최근까지도 굉장히 많이 눈에 띕니다.      


3. 그런데 조리 흄은 1급 발암물질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닌가요?

-사실이 아닙니다. 많은 언론들이 세계보건기구(WHO)가 2010년 조리흄을 1급 발암물질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깁니다. 조리흄에는 여러 가지 발암물질들이 섞여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WHO가 조리흄을 1급 발암물질로 정했다는 건 사실과 다릅니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암물질을 평가해 목록을 만드는데요. IARC는 발암물질을 그룹으로 분류하는데 인과관계가 규명된 정도에 따라 1, 2A, 2B, 3 그룹으로 분류합니다. 그룹 1은 ‘인체 발암성(Carcinogenic to humans)’, 그룹 2A는 ‘거의 확실히 인체 발암 가능(Probably carcinogenic to humans)’, 그룹 2B는 ‘발암 가능성 있음(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입니다. 우리말로 옮길 때는 1군(群) 또는 1그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바람직합니다. ‘1급 발암물질’이 주는 강력한 어감 때문에 ‘1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정확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게다가 이 조리 흄은 1그룹으로 분류돼 있지도 않습니다. IARC는 2010년 보고서를 통해 “가정에서의 고체연료 사용과 고온에서의 튀김 요리”의 발암 위험성을 분석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IARC는 고온의 튀김요리에서 발생하는 배출물질을 2A군으로 분류합니다. 인체에 암을 일으킨다는 제한적인 증거가 있고, 정제되지 않은 고온의 유채씨 기름에서 유발된 배출물이 실험동물에게 암을 유발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밝힙니다. 고체연료 부분은 저개발 국가에서 석탄과 나무, 등유 난로 등을 가정에서 취사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부분이고요.      


4. 1급 발암물질이라는 말 자체가 없는 거네요조리흄은 2A 그룹거의 확실히 인체 발암 가능한 물질로 분류가 돼 있다는 것이고요그럼 위험하긴 한 거네요관련 연구도 나와있다면서요.

-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제목이 <조리 시 발생하는 공기 중 유해물질과 호흡기 건강영향> 인데요. "학교 급식 조리과정에서의 공기질 평가에서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미세분진, PAHs, 포름알데히드,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복합물질에 노출되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단일물질로도 허용기준이나 관리기준을 초과하는 사례가 확인되었고, 일부 지표의 단일 물질 노출평가에서도 장기 노출 시 호흡기 및 심혈관 질환 등 다양한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역학적 근거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대만에선 비흡연 폐암 여성 1302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있는데요. 조리 흄, 이 연구에서는 조리 오일 흄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 연구에선 조리흄에 대한 누적 노출이 폐암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5. 급식실에서 장시간 조리 업무를 하시는 분들은 직업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건데요대만의 연구는 좀 충격적이네요가정에서 조리하시는 분들도 이런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뜻 아닙니까?

- 가정에서 이뤄지는 조리와 건강 피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여성 폐암 환자의 90% 정도가 비흡연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폐암학회 연구위원회는 2017년부터 2년간 전국 10개 대학병원에서 비흡연여성폐암 환자 478명과 비흡연여성 환자 4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습니다. 설문결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일주일에 4일 이상 겪는 경우 3일 이하인 여성에 비해서 폐암 발생률이 1.5배 높았습니다. 주방이 분리되어 환기가 잘 안 되는 공간에서 요리를 하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서 1.4배 높았고, 요리할 때 눈이 자주 따갑거나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환기가 안 되는 경우 폐암 발생률이 각각 5.8배, 2.4배로 높았습니다. 이 경우 튀기거나 부침 요리 등의 기름을 많이 쓰는 요리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대만 연구는 요리법을 팬프라잉, 스터프라잉, 딥프라잉으로 구분해서 살폈거든요. 팬프라잉은 프라이팬에 생선 구울 때처럼 기름 조금만 두르고 굽는 조리법이고요, 스터프라잉은 중국식 채소볶음 할 때 센 불에서 뒤섞어 가면서 하는 볶는 요리법이죠, 딥프라잉은 끓는 기름에 재료를 담가서 튀기는 닭튀김 같은 방식이고요. 팬 프라잉이 폐암 확률을 1.53배 높이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조리용 기름은 라드, 그러니까 돼지기름을 사용했을 때 식물성 기름보다 1.92배 폐암 위험이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6. 조리 방법에 따라 얼마나 오염물질이 배출되는지 알아본 연구는 없나요?

- 우리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조리방법은 크게 굽기 삶기 튀기기 이 정도일 텐데요.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육류의 조리방법에 따라 실내 오염물질 농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조사해 놓은 게 있습니다. 우선 수육 같은 육류를 삶는 요리를 할 때는 실내 오염 농도의 변화가 미미합니다. 반면 굽는 요리를 하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급증하는 걸 볼 수 있었고, 튀김요리는 총 휘발성유기화합물 농도가 굉장히 높아지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실내공기질을 위해서라면 굽고 튀기는 요리보다는 삶고 찌는 요리법이 더 적합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7. 학교나 사업장 급식실에서 조리할 때그리고 가정에서 조리할 때 유해 물질이 배출된다는 사실을 잘 알겠는데요위험을 낮추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급식실 조리환경 개선 방안’이 참고가 될 텐데요. 가장 먼저 환기설비 개선을 꼽았습니다. 환기가 제대로 이뤄지면 유해물질로 인한 위험도를 크게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하에 배치돼 있는 조리실을 지상으로 옮기거나, 불충분한 배기시설 용량을 확충하고, 급기 시설을 갖춰 배기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다음으로는 조리방법 및 식단 개선입니다. 튀기거나 볶는 요리를 프라이팬이나 웍을 이용해서 하는 것보다 오븐을 이용해 조리하면 사람이 불 앞에 들러붙어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유해물질 노출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오븐에 적절한 환기시설을 배치한다면 조리 공간의 오염도를 낮출 수 있기도 하죠. 다음은 개인보호구 개선입니다. 오염물질을 걸러줄 수 있는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을 참고하면 우리 가정에서도 조리 과정에서의 유해물질 노출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조리할 때는 항상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합니다. 레인지후드 등 기계식 환기 장치가 있다면 꼭 가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리 방법도 튀기거나 볶는 등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보다는 찌는 요리가 유해물질을 덜 배출합니다. 꼭 기름을 사용해야 하는 요리라면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을 사용하면 유해물질 노출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프라이팬 앞에 달라붙어서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를 하면 오븐 또는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할 때보다 유해물질 노출량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오븐을 다용도실 등 별도의 공간에 넣고 가동하면 실내로 유입되는 유해물질을 차단할 수 있겠죠.     


8. 이제 겨울이 다가오는데요. 환기하기가 싫어지잖아요창문 열면 추우니까요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 물론 한 겨울에 창문 열고 환기하면 추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환기는 정말 중요한 겁니다. 실내오염물질 농도를 낮추는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이거든요.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실내는 곰팡이 발생 우려가 크고요, 반지하 같은 곳은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공기보다 무거워서 가라앉는 특성이 있거든요. 창문을 열어서 환기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춥다고 움츠리지 마시고 산책도 자주 하고 조리하실 때 식사할 때마다 창문 열어서 환기하는 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돕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점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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