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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Sep 27. 2024

한국 전기요금 싸다는 게 왜 불편한 진실일까?

에너지 가격 팩트체크

1. 오늘 팩트체크 주제는 "한국 에너지 가격 외국에 비해 정말 싸다"입니다. 먼저 어떻게 나온 이야기인지 맥락을 좀 살펴보죠.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입니다. 이런저런 현안에 대해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 전기요금이 동결된 것 등을 두고 “에너지값은 원가를 반영해서 상당한 수준으로 (에너지)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라고 밝힌 건데요. 장기적으로 국제 에너지 원가를 반영해 요금을 올리고 국민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겁니다. 지난 23일 정부와 한국전력이 4분기에 적용될 전기요금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당장은 전기요금이 오르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요금이 현실화될 때까지 꾸준히 오를 수밖에 없다는 걸 확실히 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 총리는 "우리나라 에너지값은 외국에 비해 굉장히 싸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2. 그렇다면 우리나라 에너지 가격이 외국에 비해 정말로 싼 지 알아봐야겠네요어떻습니까?

- 한국전력이 2023년 8월 기준으로 OECD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공동으로 발표하는 전기요금 관련 통계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는데요. OECD 평균 전기요금 수준을 100으로 산정하고 비교를 하면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54에 그칩니다. 우리나라보다 전기요금이 낮은 나라는 헝가리, 튀르키예, 멕시코 밖에 없습니다. 주택용 전기가 그렇고요. 세계 각국은 산업용 전기와 주택용 전기 요금을 달리 매기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도 싸기는 마찬가집니다.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OECD 평균 대비 66% 수준으로 매우 쌉니다. 우리나라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싼 나라는 캐나다, 멕시코, 미국 밖에 없습니다. 산업용 전기는 광업과 제조업 등 대규모 사업장이 한전과 계약을 맺고 사용하는 전기인데요. 주택용 전기는 발전소에서 나온 고전압의 전기를 여러 단계를 거쳐 220 볼트로 낮추는 데 반해 산업용 전기는 고전압으로 공장에 보내는 게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변압 비용 등이 덜 들어가기 때문에 단가도 낮게 책정된다. 이런 이유가 하나 있고요. 우리나라 제조업 위주의 경제구조 때문에 정책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낮게 가져가는 것이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산업용 전기 요금 단가가 주택용보다 낮은 게 사실이긴 한데요. 점점 격차는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3. 전기요금 인상은 한국전력의 막대한 부채에 대한 해결책으로 접근해 왔었는데요한국전력의 재무 상황은 어떤가요?

- 한전의 부채총계는 지난해 말 기준 202조 원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정부 한 해 예산이 650조 원 정도 규모인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큰 금액인데요. 지난해 한 해 이자비용으로만 4조 5000억 원을 썼다고 합니다. 한전은 정부와 산업은행이 지분 51%를 소유하는 시장형 공기업인데요.

적정 이익을 내지 못하면 전력 설비를 건설하기 어려워지고, 차입금 부담이 커지면서 이자비용이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전기요금 현실화를 외쳐왔습니다. 그런데 전기요금 올린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으니까 표심을 살피는 정치권이 이걸 항상 다음 정권으로 미루는 행태가 되풀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정부에서 한 차례 올렸고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네 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요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4. 결국 한전이 망하지 않게 하려면 궁극적으로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야 할 텐데요.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하려면 전기요금을 얼마나 올려야 할까요?  

- 국회입법조사처 분석(한국전력공사 영업손실 현황분석과 개선과제)을 살펴보면요. 한전이 영업손실을 영업이익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2022년 기준 판매단가 116.38원/kWh에서 약 52%에 해당하는 60.47원/kWh 인상한 176.85원/kWh이 돼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게 2022년 연말에 나온 보고서였는데요.

올해 7월 한전의 전력 판매단가는 172.5원을 기록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불안해지면서 연료비용이 급등하고 전력 구매비용이 판매 비용을 웃도는 역마진 상황이 한참 지속되다가 지난해 5월부터 국제 에너지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이 역마진이 해소됐거든요. 그러다가 다시 구입단가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한전은 전력구매단가보다 판매단가가 22원 정도 높아야 손실을 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건 새롭게 손실이 쌓이지 않는 정도를 말하는 거고요. 한전의 막대한 누적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 이상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한 거죠.     


5. 일각에선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건 산업용 전력 부문인데한전은 주택용 전기 요금을 인상해 적자를 메우려고 한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이건 어떤가요?

- 한전은 전기요금 종류를 부문별로 나눠서 달리 적용하고 있는데요. 주택용, 일반용, 교육용, 산업용, 농사용, 가로등, 심야 이렇게 7가지로 나눠놓고 있습니다. 사용량 비중을 살펴보면 산업용이 54%로 가장 많습니다. 그다음이 일반용 23%이고요, 주택용은 15%를 차지합니다. 농사용이 4%, 심야 2%, 가로등과 교육용이 각각 1%씩을 차지합니다. 우리나라 총 전력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산업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한전의 연간 전기 판매 단가는 요금 인상이 본격화하기 전인 2021년 108.1원에서 2023년 152.8원으로 41.4% 올랐습니다. 이 기간 주택용은 37.2%, 산업용은 45.7% 올라 산업용의 상승 폭이 더 컸습니다.

우리나라 전력망이 단일 계통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모든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하나의 전력망으로 들어와서 섞이고 주택과 산업현장으로 전달되거든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산업용 전기는 고전압 상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단가가 낮아진다는 주장도 있고, 하루 중 시간대에 따라서 전력 소비가 들쑥날쑥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 발생이 덜해 낮은 단가가 정해진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반대로 주택용 전기는 산업용보다 수요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발전기를 돌리고 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한전 입장에선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죠.


6.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네요.

우리나라 전력망에 연결돼 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발전기가 있습니다. 원자력발전도 있고, 석탄화력, 가스화력, 태양광, 풍력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급전이라고 해서 발전단가가 낮은 발전기부터 차례대로 가동을 하거든요. 그래서 항상 고정적으로 사용되는 전력인 기저부하를 원전이 담당을 하고, 원전 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면 석탄발전을 켭니다. 그래도 전기가 모자라면 가스발전기를 켜고요. 태양광 풍력발전은 햇빛이 나고 바람이 불어야 전력이 생산되기 때문에 약간 성격이 다르긴 한데요. 여름철과 겨울철 전력수요가 많을 때는 피크타임을 원활하게 넘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역할을 합니다. 다만 전력수요는 많지 않은데 발전량이 많은 봄가을에는 필요 이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한전은 전력 수요에 맞춰서 이런 종류별로 발전기 가동을 지시하고 전기를 사들이게 되는데요. 항상 일정량의 전기를 사용하는 산업용 전력은 발전기를 껐다 켰다 할 필요가 적기 때문에 한전 입장에선 단가가 적게 들어가는 기저전력으로 상계할 수 있는 셈이죠. 산업용 전력보다 수요가 들쑥날쑥한 주택용 전력은 발전기를 추가로 가동하고 정지시켜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런 변수를 정확히 반영해서 전력요금 종별로 단가 산정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종별로 얼마나 요금을 인상해야 한전이 정상적으로 경영을 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7. 국무총리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서 전력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는데요전기 요금이 비싸지면 서민들이 고통받는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 네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OECD 국가 중에서 싼 편인 것은 사실입니다.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부가 개입을 했고, 그 대가를 한전이 치르고 있는 건데요. 한전은 회사채를 발행해서 빚으로 손실을 메꾸고 있는 상황인 거죠. 그래서 막대한 이자 비용을 지불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걸 방치하면 한전의 조달비용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경영 지표는 계속 악화하게 되고요. 그렇게 되면 회사의 신용등급이 낮아져 회사채 발행에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되죠. 최악의 경우 파산인데요. 이 지경이 되면 결국 세금이 투입되게 되죠. 결국 값싼 전기 요금의 대가는 혈세 투입이라는 결말을 맺게 되는 건데요. 그걸 막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은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즉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총리의 발언도 올바른 방향인 걸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발전에서 차지하는 에너지원의 비중은 석탄이 31.4%로 가장 많고, 원자력 30.7%, LNG 26.8%, 신재생에너지 9.6% 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전기 가운데 절반 이상이 화석 연료를 태워서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에 전기 사용을 줄이면 탄소배출을 분명히 줄일 수 있습니다. 전기요금을 높이면 전기 사용량이 분명히 줄어들게 되죠.

그렇다고 갑자기 전기요금을 훌쩍 인상하게 되면 서민들 특히 빈곤층이 더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냉장고 돌리고, 집 안에 전깃불 켜고, 전자레인지 돌리고, 티브이 보고, 이런 기초 생활이 전기 없이는 유지가 되지 않기 때문인데요.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빈곤층 피해를 추산해서 에너지 바우처 형태로 지급하는 복지 정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8. 전기요금이 앞으로 꾸준히 오를 것 같아 보이는데요. 일반 가정에서 전기요금을 아끼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 전기요금 아끼는 방법을 말씀드리기에 앞서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꼭 필요한 전기는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령 폭염이나 혹한이 찾아왔는데. 전기 아낀다고 에어컨 틀지 않고, 전기 난방기 사용하지 않고 이런 것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생명이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이웃 일본에서도 폭염기간 동안 에어컨을 켜지 않고 버티다가 온열질환으로 고령자들이 숨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전기요금 아끼려고 하다가 변을 당한 거죠. 곧 추위가 찾아올 텐데, 꼭 필요한 난방기구는 반드시 가동해야 합니다.

대신 의미 없이 계량기만 돌리고 사라지는 대기전력을 차단하는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안 쓰는 가전제품 전원을 콘센트에서 뽑아놓는 것이죠. 여름철 지났는데 에어컨 전원이 콘센트에 꽂혀 있다면 당장 뽑으시고요. 셋톱박스 전원도 외출 시에는 뽑는 게 좋습니다.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사용할 때만 켜두면 되는 가전제품은 평상시엔 전원을 뽑아 놓거나 스위치 달린 멀티탭을 이용해 꺼놓는 게 전기요금을 줄이는 길입니다. 특히 전기밥솥 보온 기능 사용을 줄이면 전기요금을 굉장히 많이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난방온도 2도 낮추기, 비데 절전기능 사용, 빨래는 모아서 한꺼번에, 고효율 가전제품 사용하기 이런 방법들도 가정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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