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유학 46. 생태유학 산골 집에 벌레가 많은 이유
지난 3월 곰배령 아래 설피마을 도농교류센터(마을펜션)에 입주한 뒤로 엄청나게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바로 집게벌레와 노린재였다. 어마어마하게 어디선가 기어 나오는 집게벌레와 노린재. 특히 노린재는 특유의 비릿한 풀냄새 같은 유쾌하지 않은 냄새를 풍긴다. 숙소는 바깥은 황토로 내부는 목재 패널로 마감을 했는데, 한랭습윤한 이곳의 기후 때문에 온갖 벌레들의 먹이터가 된다. 축축하고 따뜻한 나무 패널 뒤 틈에서 벌레들이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될 즈음 벌레들은 나무 틈에서 빠져나와 대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동안은 뜸했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고 영하의 날씨가 예고된 이즈음. 벌레들의 향연이 시작됐다. 기온이 뚝 떨어진 아침나절에 벌레들은 기를 펴지 못한다. 변온 동물의 특성 탓이다. 그러다가 햇살이 퍼지고 기온이 오르는 오전 10시 30분 전후로 벌레들이 날아오른다. 목표는 겨울날 곳 찾기다. 우리 집은 여섯 집이 모여있는 마을 펜션 중에 산과 바로 붙어있고, 옆벽이 햇볕을 받는 시간이 길다.
요즘 같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집게벌레가 짧은 날개를 펼치고 우리 집 옆벽을 향해 날아든다. 도시에서도 집게벌레는 많이 봤지만 그 녀석들이 날아다닌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산골에 살면서 처음 본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집게벌레는 날다람쥐가 나는 것처럼 짧은 거리를 활공하는 식으로 난다. 귀 옆을 스치고 가면 '부우웅'하는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하튼 이 녀석들은 벽에 새까맣게 붙어 집안으로 들어올 구멍을 찾는다. 서둘러 방충망을 꺼냈다. 벨크로로 만들어진 거실창, 방문창 양쪽을 모두 막는 대형 사이즈다. 답답한 게 싫어서 떼놓고 있었는데 아차 싶었다. 일단 방충망을 설치해 거실과 방은 막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전면 방충망이 설치되지 않은 다락이 눈에 띄었다. 접이식 사다리를 열고 다락으로 올라갔는데 이미 벌레가 잔치를 벌이고 있다. 집게벌레 노린재면 그냥 못 본 체 했을 텐데 말벌이 두 마리 노닐고 있는 거다. 이건 가족의 안위와 연관된 문제기 때문에 다락에도 전면 방충망을 설치하기로 했다.
산골에 살면 웬만한 집안일은 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 거실과 방의 LED 전등과 전등기구를 교체했고, 방울방울 물이 떨어지는 샤워기도 고치고, 화장실 창문에 불투명 시트지도 붙였다. 커튼도 달고, 부엌 수도에 직결식 정수필터도 혼자 달았다. 손이 갈 데는 많은데 사람을 부르기엔 너무 두메산골이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해결하는 게 속이 편하다. 마을에 계시는 다른 펜션 사장님들도 대부분 '맥가이버' 수준으로 잘 고치신다.
지난번 방충망 작업을 하고는 작업자들이 놓고 간 자재를 이용했다. 다락 창문을 다 떼고 안에서 바깥으로 몸을 빼서 벨크로 테이프를 붙이고, 빌려온 전동 드라이버로 나사를 박아 고정시키고 방충망을 붙였다. 측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좀 울기는 했지만 그래도 벌레를 막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다락 방충망을 붙여놓고 한숨 돌리려는데 창문 밑으로 벌레가 드나드는 구멍이 보였다. 나무 재질의 창틀 밑 부분에 마감처리가 안 된 것이다. 보통 실리콘으로 마감을 하게 마련인데 밑 부분이라서 놓쳤는지 몇 군데 틈새가 보였다. 이미 날이 기울고 있어 실리콘 작업은 다음날 하기로 했다.
아침이 되자 마음이 바빴다. 아이 학교 보내고 차를 몰아 양양 읍내로 향했다. 실리콘과 철제 방춤망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실리콘은 앞서 말한 틈새를 막을 용도고, 철제 방충망은 주방 레인지 후드 배기구와 욕실 환풍기 배기구를 막을 용도다. 10시반까지 돌아와야 벌레가 설치기 전에 틀어막을 수 있다! 철물점에서 자재를 구입해 다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오산이고, 자연은 위대하다. 틈새를 찾으러 잔뜩 몰려든 집게벌레가 현관문 위쪽에 다닥다닥 붙어있다가 문이 열리면 후드득 낙하한다. 집게벌레가 진짜로 비처럼 쏟아진다. 그리고는 바닥에 툭 떨어진 뒤에 열린 현관문으로 기어 들어온다. 어찌나 재빠르고 틈새를 잘 파고드는지... 이거 정말 막기 어렵다.
자연은 위대하다. 인류 역사는 자연과의 투쟁이었다. 여태까지는 인류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류가 바꿔놓은 기후는 비수가 되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설피마을도 자연의 것이다. 원래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그 옛날부터 사람이 빌려 들어와 살고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주인은 자연이고, 벌레고, 짐승이다. 사람은 그저 빌려 살뿐이다. 벌레들은 죄가 없다. 다만 벌레의 땅에 허락 없이 들어와 집을 짓고 벌레가 들어오는 것이 싫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 죄일 뿐.
난 자연이 좋다. 벌레도 싫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구분된 공간에 벌레가 함께 들어와 사는 건 싫다. 자고 있는데 벌레가 몸 위를 기어 다니는 건 더욱 싫다. 아무리 틀어막는다고 해도 빈틈은 존재하고, 그 틈으로 벌레가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틈새에 수많은 벌레들이 겨울을 날지도 모른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구분됐다고 믿는 내 공간에 들어온 벌레가 눈에 띄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이 벌레들은 삼면을 자른 사각형 생수병으로 잡아서 밖으로 내보낸다. 어제오늘 내보낸 집게벌레와 노린재, 말벌이 모두 합하면 족히 30마리는 넘을 거다.
다음 주엔 영하의 날씨가 예고됐다. 요즘 산골은 해도 짧아지고 아침저녁으론 매섭게 춥다. 입김도 난다. 벌레들은 누가 안 알려줘도 알고 있는 거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말이다. 이미 얼어붙은 한파가 들이닥쳤는데도 모르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Winter is coming! 이 아니다. 그들에겐 Winter has come!!이다. 벌레들의 지혜를 배워라.
P.S> 집게벌레 퇴치에 좋다는 잔류형 살충제는 쓰지 않기로 했다. 분명히 죽은 집게벌레 사체를 다른 곤충이 먹거나 해서 먹이사슬을 통해 퍼져나갈 테니까. 최대한 틀어막고,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가 걸린 녀석은 내보내는 걸로 이번 겨울을 나기로 했다. 어차피 엄혹한 겨울이 찾아오면 벌레는 움직이지 않으니 이 번거로움도 길어야 2~3주면 끝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