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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SPC에선 왜 산재가 끊이지 않나?

언제까지 피 묻은 빵을 용납할 건가??

by 선정수

1. 오늘 살펴볼 주제는 <SPC삼립 산재 사망사고>입니다.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식품기업인데요. 이 SPC그룹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어떻게 된 일인지 개요를 좀 짚어보죠.

- 지난 19일 새벽 3시쯤 경기도 시흥시 소재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직원 A 씨가 작업 도중 숨졌습니다. 언론을 통해 전해진 바로는 뜨거운 빵을 식히는 작업 과정에서 제품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데, A 씨는 벨트가 잘 돌아가도록 윤활유를 뿌리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 작업 도중에 기계에 몸이 끼어 숨진 걸로 전해졌습니다. 1차 부검 소견은 다발성 골절로 인한 사망이라고 나왔는데요. 말 그대로 몸의 많은 부분이 부서졌다는 뜻입니다.

사고 이후 SPC삼립은 홈페이지 등에 사과문을 게시했는데요. 사고 직후부터 공장 가동을 즉각 중단했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직원들의 심리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과 후속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고인과 유가족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사건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겠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A 씨의 시신은 부검을 거쳐 유가족에게 인도됐고요. 지난 22일 발인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 네 참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요.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서 윤활유를 뿌린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 이번 사고가 발생한 공정은 크림빵을 만드는 공정이었다고 합니다. 뜨겁게 구워낸 빵을 식힌 뒤에 크림을 얹고 빵을 포갠 다음에 비닐봉지로 포장해 제품은 완성하는데요. 고인이 된 A 씨는 빵을 식히는 공정에서 가동 중이던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러 벨트 밑으로 들어갔다가 기계에 끼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통 이런 끼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계를 멈춘 뒤에 정비 작업을 해야 하고, 실수로 다른 누군가가 재가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접근 및 조작 금지를 시행하고, 만의 하나 사고가 있을지도 모르니 2인 1조로 작업해야 하는 원칙이 있거든요. 수작업으로 하기엔 힘들고 위험할 경우에는 무인화, 자동화하는 방법도 있고요. 이번 사고가 난 컨베이어벨트도 자동으로 윤활유를 뿌려주는 장치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왜 사람이 윤활유 작업을 하러 들어갔는지도 밝혀야 할 부분이고요. 작업자의 피로가 큰 상태에선 재해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니까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이 작업장 같은 경우 12시간 2교대로 돌아가는 걸로 전해졌는데요. 작업자들의 피로 누적을 막기 위해 4조 3교대로 전환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안전 조치들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것이죠.


3. SPC 계열사의 산재 사망사고는 반복되고 있는데요. 자세한 실태를 좀 살펴보죠.

- SPC그룹 계열사인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는 2022년 10월 20대 여성 직원이 소스 교반기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공장에서는 50대 여성 직원이 작업 중 손가락이 기계에 끼어 골절상을 당하거나 20대 외주업체 직원이 컨베이어가 내려앉는 사고로 머리를 다치기도 했습니다. 또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는 2023년 8월 50대 여성 직원이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고 때문에 허영인 SPC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고, 국회 국정감사에 SPC 계열사 경영진들이 불려 나가 질타를 받기도 했죠.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SPC 계열 공장에서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발생한 산재 사고는 572건에 이르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월평균 11회 꼴로 산재 사고가 일어난 셈입니다.

4. 허영인 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거액의 안전 투자를 약속했던 것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텐데요. 그동안 SPC 그룹은 뭘 했었나요?

- SPC 허영인 회장은 2022년 10월 대국민사과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안전관리 강화는 물론,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정착시켜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이죠. 재발 방지 대책도 내놨는데요. “향후 3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해 전사적인 안전 관리를 강화하겠다. 안전시설 확충 및 시설 자동화에 700억 원, 작업환경 개선과 안전 문화 형성에 200억 원, 사고가 발생한 SPL에는 산업 안전 개선을 위해 100억 원을 집중 투자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SPC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해 2022년 4분기부터 2024년까지 목표 금액의 약 84%에 해당하는 835억 원을 해당 기간의 계획보다 빠른 속도로 집행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고를 막는데 실패한 거죠.

노동계에선 안전경영시스템 집행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SPC 안전경영 합동검증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투자금이 얼마나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취지입니다.

그룹 총수가 여러 차례 대국민 사과를 하고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했음에도 또다시 사망사고가 일어났다는 건 안전 대책이 충분치 않았음을 방증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많은 분들이 왜 빵을 만드는 회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지 의구심을 가지실 겁니다. 왜 그런가요?

- 가정이나 소규모 제과점에서 빵 만드는 걸 연상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SPC 계열사들은 산업적으로 그러니까 대규모로 빵을 만듭니다. 엄청나게 큰 기계가 돌아가고 있고 라인도 길고 작업에 투입되는 사람도 많죠. 그런데 설비는 노후화됐고 안전에 대해 투자를 하고, 무인화 자동화 시도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곳곳에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위험한 일들이 많죠. 이런 것들이 철저하게 관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겁니다.

식품산업 전제적으로 봐도 산업재해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살펴보면요. 2024년 식료품제조업의 업종별 재해율은 0.99%입니다. 모든 산업을 합쳐서 평균을 내면 재해율 0.67%가 나오는데요. 식료품제조업이 영세한 기업이 많고 설비 노후와 부족한 안전시설, 매끄럽지 못한 공정 자동화 등이 재해율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그런데 SPC의 경우엔 대대적인 안전 투자를 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 사고의 원인 규명 과정을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SPC의 안전 대책이 제조 공정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6. 재난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어요?

- 네. 산업안전과 관련해서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1대 29대 300의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중대한 산업재해가 1건 발생하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미한 산업재해가 29건, 그리고 산업재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징후가 300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버드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는데요. 사망 사고 1건이 발생하기 전에 경상으로 이어진 사고 10건, 물적피해 30건, 사고가 날뻔한 아차사고 600건이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또 스위스치즈 이론이라는 것도 있는데요. 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 같은 장벽을 여러 개 세웁니다. 이 장벽이 산업안전 조치인데요. 한 가지 조치가 완벽하지 않아서 구멍을 통과하더라도 여러 겹의 안전 조치 장벽을 세워놓으면 구멍을 통과해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다중 안전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고요. 산재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여러 가지 안전조치들이 무력화됐기 때문에 사고로 이어진다. 이런 걸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이번 사고도 조사가 진행되면 어떤 원인들이 연쇄적으로 뚫렸는지 찾아낼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7. SPC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이 다시 불붙을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면서요?

- SNS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SPC그룹 계열사 브랜드 전체를 공유하면서 불매운동에 동참하자는 내용의 게시물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SPC그룹 불매운동 움직임에 대한 언론 보도도 늘어나고 있고요. 특히 이번 사고가 일어난 SPC삼립의 크보빵에 대한 불매운동이 가장 눈에 띄는데요. 크보빵은 한국프로야구를 주관하는 KBO가 SPC삼립과 제휴해 야구 구단을 상징하는 빵을 만든 제품입니다. 야구팬들을 중심으로 이 크보빵을 불매하자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습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 인기에 힘입어 이 빵도 출시 3일 만에 100만 봉이 팔리고, 41일 만에 1000만 봉이 팔리는 등 매출이 늘면서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는데요.

일부 야구팬들은 "노동자 피 묻은 빵 먹을 수 없다"라며 KBO가 SPC와 협업을 그만두라고 촉구하기도 합니다.

8. SPC 계열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애가 많이 탈 것 같은데요?

- 네 SPC가 워낙 많은 프랜차이즈를 가지고 있다 보니 불매운동이 확산하면 직격탄을 맞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가 대표적인데요. 2022년 SPL 노동자 사망사고 때도 불매운동이 강하게 일어났었죠. 당연히 SPC그룹사 임직원들과 가맹점 관계자들은 매출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겠죠.

이게 참 복잡한 문제긴 한데요. 소비자들이 '우리는 노동자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업은 이용하지 않는다'라고 외치면서 불매운동을 벌이면, 정작 기업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된 가맹점주와 직원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단 말이죠. 그렇지만 계속 이런 후진적인 사고가 되풀이되는 걸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는 없는 일이고요.

그래서 가맹사업법은 가맹계약서 기재사항으로 <가맹본부 또는 가맹본부 임원의 위법행위 또는 가맹사업의 명성이나 신용을 훼손하는 등 사회상규에 반하는 행위로 인하여 가맹점사업자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의무에 관한 사항>을 넣도록 규정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는 SPC삼립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가맹사업법의 '가맹본부'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 따져봐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원천적으로는 SPC그룹이 안전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맹점에 피해를 끼친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룹 차원의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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