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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부니 Dec 05. 2024

그냥 평범한 가족의 딸이고 싶었는데...

콩가루 집안인 우리 집이 죽을 만큼 싫었다

동생이 8살이 됐을 때의 일이다. 집으로 두 가족이 찾아왔다. 동생의 같은 반 친구들의 부모들이었다. 그들 부모에 따르면 아이들 셋이 같이 놀다 내 동생 때문에 오해가 생겼고 그것 때문에 할머니에게 따지러 우리 집까지 쫓아온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과하세요." 


그쪽 부모들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집에는 허리 굽은 할머니와 동생이 있었다. 할머니는 홀로 두 가족을 상대하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오해가 될 부분이 있으면 사과도 하고 겨우 부모들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방 안에서 친구 부모들의 이야기를 숨죽여 듣고 있었다던 동생. 그날 이후 동생은 풀이 확 죽은 채 학교에 다녔다. 그 부모들은 이혼가정의 자녀인 내 동생과 자신의 자녀가 어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생은 더 이상 그 친구들과 놀지 못했다. 고작 1학년, 몸보다 더 큰 가방을 메고 다니는 꼬마 아이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내 동생은 태어나고 겨우 몇 년이 지나서 부모의 헤어짐을 경험한 최대 피해자다.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했다. 정말 사소한 유치원 졸업식, 학교 입학식, 생일 파티 같은 것도 완전한 축복 속에 즐기지 못했다. 늘 따뜻한 품이 그리워 언니를 찾고 엄마를 찾았다. 


동생뿐 아니라 나와 오빠도 괴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오빠는 정말 사춘기의 한가운데에서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사업 실패 이후 일에만 빠져 살던 아빠는 경제적인 지원만 해줄 뿐 우리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아예 다른 지역에 가서 사는 엄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할머니가 밥을 챙겨줬지만 밥 외에도 사춘기 소년, 소녀에게는 필요한 관심이 많았다. 온기라곤 없는 집에서 행복한 기억은 별로 없다. 


부모의 이혼 후 나는 더 열심히 살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이혼 가정의 자녀라고 손가락질받지 말아야지. 방황을 할 때도 있었지만 할 건 하고 놀았다. 학교도, 학원도 빠짐없이 다녔고 학교에서도 줄곧 반장, 부반장을 도맡았다. 친구들과도 잘 놀고 학교 생활도 성실하게 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 혼자 더 잘하려고 애썼다. 


아빠는 사업이 다시 잘 됐다. 사업이 바빠 밤늦게 집에 와서 잠만 자고 나갈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집에 와서 우리에게 인사만 하고 다시 나갔다. 그리고 안 들어왔다. 아빠도 할머니와 함께 살며 부딪히는 게 많았고 이후 여자가 생겨 밖에 살림을 차린 것이다. 우리에겐 호적상으로 세 번째 새엄마가 생긴 셈이다. 아빠는 딸과 아들에게 매일 전화도 하고 저녁마다 얼굴을 비추고 가긴 했다. 어차피 함께 사는 것도 아니었고 아빠도 계속 바빴기에 아빠가 따로 산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새엄마가 있다 해도 우리와 만날 일이 없었다. 아빠가 누구랑 살든 상관없었다. 그냥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너무나도 콩가루 집안 같은 우리 집이 싫었다. 


나는 그냥 평범하고 싶었는데... 우리 집은 보통의 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 같았다. 내가 어릴 때에는 가끔 가족끼리 모여 웃기도 했을 것이다. 다 같이 저녁도 먹고 이야기도 나눴을 것이다. 어쩌면 같이 이불 덮고 누워 토요명화를 봤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따뜻한 장면이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쯤은 나도 있겠지, 없진 않을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를 쥐어짜도 '가족'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없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이 집을 떠나고 싶었으니까. 


부모의 이혼 후 자녀가 가장 고통받을 때는 언제일까. 부모가 이혼한 바로 직후? 아니면 사춘기?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미성년자일 때는 잘 살았다. 내가 부모를 미워하는 것도 모른 채 그냥 살아냈다. 힘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누구보다도 축복받고 인정받아야 할 결혼이라는 걸 했을 때 부모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에서 나는 엄마, 아빠가 내 부모인 게 죽을 만큼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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