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부니 Dec 12. 2024

이혼가정, 결혼식에 누굴 앉히냐고?

새엄마를 꼭 앉혀야 한다는 아빠, 결혼식 준비부터 쉽지 않았다

엄마, 아빠의 이혼이 크게 걸림돌이 된 적은 없었다. 나 스스로 위축되는 거 말고는 사회에서 내 가정사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 결혼을 기점으로 엄마, 아빠의 이혼이 가시덩굴처럼 여겨졌다. 벗어나고 싶어도 자꾸 나를 찌르는 아주 뾰족한 가시덩굴. 그 가시덩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빠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새로운 여자를 만나 따로 나가 살았다. 아빠의 여자는 공식 문서에만 '엄마'로 올라와있었을 뿐 나와 전혀 왕래를 하지 않았다. 명절 때 겨우 얼굴을 마주쳤고 함께 식사를 하거나 안부 전화를 하거나 따로 인사를 하지도 않았다. 나를 집에 초대한 적도 없었고 입학식, 졸업식 등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내게 권한이 있었다면 법적 엄마가 되는 걸 반대했을 것이다. 새엄마라는 말도 어색하다. 가까운 친척처럼도 지내지 않았기에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였다. 아빠와 같이 사는 사람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사람. 그 선을 지키며 지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는 함께 살이를 하지 않아 어색했지만 그래도 매일 같이 전화를 하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며 부모의 역할을 다 하려고 했다. 그 점이 항상 고마웠다. 내 결혼식에 아빠를 앉히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문제는 엄마 자리였다. 엄마랑은 이혼 후 계속 따로 살았지만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고 만남을 유지하고는 있었다. 아빠의 옆자리에 누구를 앉히느냐, 내 결혼식 청첩장에 '엄마' 이름으로는 누구를 쓰느냐 하나하나 걸림돌이 되었다. 


아빠는 당연히 새엄마의 이름을 쓰고 새엄마가 혼주 자리에 앉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버진로드에도 새엄마가 올라가서 촛불을 켜며 양가 엄마 입장을 도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그게 덜 쪽팔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빠가 여태껏 미우나 고우나 같이 살았고 계속 함께 한 사람이야. 보는 사람도 많은데 순리대로 해야지. 그리고 어떻게 너희 엄마 같은 사람을 자리에 앉히냐! 말도 안 된다." 


체면. 아빠에게 중요한 건 체면이었을 것이다. 체면 말고는 중요한 게 없는 사람이니까. 딸의 감정이 어떠한 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저 그런 감정으로 결혼식 분위기를 흐리지 말자는 게 아빠의 입장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일은 둘이 해결해야 맞았다. 이혼 후에도 엄마, 아빠는 서로를 탓하며 자식들에게 서로의 욕을 했다. '너희 엄마가 이래서 이혼했다.' '너희 아빠가 이래서 이혼했다.' 특히 아빠는 엄마를 많이 원망했다. 시간이 흘러 이젠 엄마를 다 용서했다면서도 자녀들이 엄마를 만났다고 하면 노발대발했다. 내 결혼식을 앞두고도 딸인 내 감정이 어떤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순리대로 하면 된다. 그건 그냥 아빠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아빠를 앉히는 건 맞지만 새엄마를 앉히는 건 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나를 한 번도 챙기지 않은 사람이 그저 체면 때문에 아빠 옆에 앉고 내 엄마 행세를 하다니. 어쩌면 평생 남을 나의 결혼식 사진에 내 엄마가 아닌 사람이, 전혀 엄마 역할도 하지 않은 사람이 남겨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물론 내가 새엄마 품에서 컸고 서로 왕래도 있었다면 아빠의 말을 순순히 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단 하나의 왕래도 없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형제에게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었고 만나더라도 늘 시큰둥한 표정으로 있다가 헤어질 뿐, 정말 불편하고 어색한 사이였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엄마 역할을 하겠다고, 자기 자리라며 목소리를 내는 게 불쾌했다. 상견례 자리에 와서도 뚱한 표정으로 밥만 먹고 간 사람이다. 


'왜 내가 그래야 할까. 지금까지 엄마, 아빠 원하는 대로 살아놓고 결혼식 하나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걸까.' 


결혼식 혼주 한복을 맞추는 일도 그랬다. 예비 시어머니는 새엄마를 불러 한복집에서 비슷한 한복을 맞춰 입 자고 하셨다. 결혼식을 할 때 양가 어머니는 보통 비슷한 한복 계열로 맞춰 입고 버진로드에 선다. 하지만 그것도 새엄마는 싫다고 했다. "집에 한복이 많은데 굳이 그렇게 맞춰야 하냐. 각자 한입고 가자"며 말도 안 되는 거절을 했다. 아빠는 그걸 옹호하며 시어머니의 제안을 대신 거절했다. 중간에 있는 나와 신랑만 난처해졌다. 정말 친엄마였으면 그랬을까. 절대 그러지 못한다. 


결혼 준비를 하며 서럽고 마음 상하는 일이 많았다. 어떻게도 결론을 못 짓고 시간만 흐를 때쯤, 아빠는 예비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꼭 새엄마를 앉혀야 한다고 피력했다. 친엄마는 결혼식에 앉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예비 시아버지는 아빠와 통화가 끝난 후 신랑에게 전화해 "장인어른이 이토록 고생하며 딸을 키웠는데 원하는 대로 너희가 해드려라"며 우리를 설득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선 물불 안 가리는 아빠. 예비 시아버지에게 전화해 이혼한 전처 욕을 하면 예비 며느리인 딸이 어떤 입장일지는 전혀 생각도 못 하는 걸까. 자신의 목적, 체면만 챙기면 되는 건가. 시아버지까지 새엄마를 앉히자고 한 목소리를 내면서 나는 그렇게 무기력하게 어른들의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족 대 가족의 만남이기에 신랑 쪽 부모님께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시부모님은 나를 이해하고 품어주셨다. 아빠를 이해하라며 더욱 다독여주셨다. 


결국 내 결혼식엔 새엄마가 엄마 역할로 앉았다. 엄마는 결혼식장 뒤편에 서서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울컥하면서도 짜증이 났다. '자기가 이혼해서 떠나놓고 왜 저 뒤에서 울고 있는 거야.' 가족, 친척, 친구들 사진까지 모두 찍고 모두가 나간 결혼식장. 우리는 그때를 기다려 조용히 엄마와 사진을 찍었다. 


그때 우리 부부는 몰랐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피로연장에서 상영되고 있는지를 말이다. 엄마와 사진을 찍는 장면이 결혼식 피로연장에 나왔고 이 장면을 본 새엄마는 아빠를 들들 볶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