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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Feb 15. 2022

아이를 망치는 법

"초등학교 때 자살하려고 했어요."


내가 학생의 입에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끔찍했던 대화였다. 그 말을 너무도 덤덤하게 하면서 학원 문을 나서던 아이로 인해 나는 그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시험이 끝나는 날에는 학원에 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모님이나 우리도 그날의 자유를 용납하는데, A는 시험이 끝난 그날 학원에 있었다. 중학생 아이들 모두가 놀러 간다며 학원에 오지 않은 날이었다. 고등학생들 중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지만, 중학생의 경우엔 좀 특별했다. 그때 A는 우리 학원에 와서 처음 시험을 보고 난 후로 기억한다. 나는 학원에서 첫 시험을 했던 탓에 아이가 잘 모르고 학원에 왔다고 생각했다.


"오늘 시험 끝났잖아? 놀아도 괜찮은데 왔네?"


보통 중학생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신나서 그럼 집에 가겠다고 노래를 부른다. 그래도 학원에 온 아이를 그냥 보낼 수는 없어서 간단한 국어 퀴즈(끝말잇기나 초성 퀴즈)를 하거나 상담을 해서 보내기는 한다. 역시나 나는 그럴 요량으로 아이의 앞에 앉았는데...


"집에 가면 혼나요."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국어 시험은 나쁘지 않게 봤기 때문에 다른 과목들의 성적을 쭉 확인을 했더니, 국어와 과학은 꽤 많이 오른 점수였다. 나머지 과목은 특별하게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하위권이라 더 떨어질 성적도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국어 과학은 그래도 잘 봤잖아. 성적이 쉽게 휙휙 오르지는 않아. 이번에 시험 준비한 기간이 좀 짧았잖아? 다음엔 다른 과목들도 잘 볼 거라고 말씀드려."


아이를 그렇게 달래고 학원 문 앞까지 토닥이며 배웅을 해주는데, 나를 돌아보고 아이가 툭 던진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초등학교 때 자살하려고 했어요."


A는 수업시간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언제나 조금 웅크린 자세로 다녔다. 다소 직설적이고 괄괄한 성격인 선생 탓에 A가 수업 시간에 보이던 여러 행동들을 나는 그저 이 낯선 선생과 적응 중인 과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날 알았다. A는 속이 여러모로 망가져 있음을...


이후로도 A는 유독 시험이 끝나는 날에 학원에 더 오래 있으려 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A의 성적을 이유로 쏟아지는 폭언들 때문이었다. A는 그로 인해 엄청나게 기가 죽어 있었다. 


"왜 1번인데?"


나는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답을 되묻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의 A의 반응은 언제나..."글쎄요."였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답을 박박 지워버렸다.


"여기까지 할 수 있겠어?"

"아마도요."


"이건 이해된 거니?"

"...... 아마..."


"이거 해 볼까?"

"저 못해요. 쌤, 저 멍청하잖아요."


A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 었다. 항상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는 법이 없었다. 늘 부정적인 표현들이 가득했고 그런 A의 대화에서 늘 속상하게 했던 것은 스스로가 자신은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A에겐 전국 단위 모의고사에서 최상위 그룹에 속한 형이 있었고 부모는 그 형과 비교하면서 A의 부족함을 지적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A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나는 확신했다. A를 망치고 있는 것은 그 부모라는 것을 말이다. 어머니의 말투 곳곳에서 A를 무시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과연 자기 자식을 말하고 있는 게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왜 1번인데?"

"아 맞다니까요!"

"진짜?"

"그니까... 어... 아! 잘못 봤어요! 하하하"


A와 같은 학교에 다니던 B는 늘 그런 아이였다. 우선 본인의 답을 내지르고 잘 우겼다. 자신의 답에 늘 확신이 있었고 오답임을 확인해도 그저 웃어넘겼다. 학습 초기엔 A가 B보다 정답률이 높았다. B는 오답이 넘쳤지만 그것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나아갔고, 시험 직전이 되었을 때 B는 완벽하게 이해를 한 상태가 되었다. 반면 A는 초기에는 잘 풀던 문제마저 줄줄이 틀리면서 자신의 머리 나쁨을 탓했다. 그런데 A가 풀어둔 문제를 보면 정답을 택했다가 지운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자신에게 확신이 없으니 A는 몇 번이고 수정을 반복하다가 결국은 틀리는 상황이 되었다.


"모른다고 화내지 않으니까 모르면 모른다고 해. 그거 괜찮아."

"남들이 너에게 그렇게 말을 해도 네가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왜 너 스스로 그렇게 말해. 그런 말 하지 마."

"공교육에선 대단한 지능을 요구하는 수업을 하지 않아. 지레 겁먹지 마."

"봐 이만큼이나 했잖아. 할 수 있잖아."


A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나는 그 아이에게 지식 차원의 수업보다는 그런 말들로 가득 채웠다. 물론 성적 문제가 있고 우린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 있는 탓에 A를 채근하는 날들도 많았다. 시간이 몇 년 흐르니 A에게 국어는 좋아하는 과목이자 자신이 있는 과목이 되었다. 스스로 멍청하다는 말도 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주말 보강이 있는 날이면 A는 누구보다 학원에 일찍 왔다. 학원 문이 열리기도 전에 와서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왜 그렇게 일찍 오는지 물으면 엄마를 피해서 도망 나왔다는 답이 나왔다. 때로는 급하게 도망치듯 나오느라 밥도 못 먹고 오는 날도 있어 편의점 도시락을 사 준 적도 있었다. 수업이 끝나도 집으로 가지 않고 학원에서 시간을 때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공부도 안 할 거면서 학원에서 그러고 있지 말라고 혼이 몇 번 날 정도로 A는 집을 싫어했다. A의 부모가 A에게 폭언을 자주 한다는 것은 학원 선생님들 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만한 자녀를 키우시는 동료 교사께선 저러다 A가 탈선을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하시기도 했었다.


"쾅!!"


학원에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어수선했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동료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A였다. 고등학생이 된 A가 처음으로 사고를 친 날이었다. 중학교보다 학습량이 많기 때문에 A에게 과제를 주었지만, A가 그것을 다 하지 못했고 그래서 선생님이 혼을 낸 상황이었다. 같이 있던 반 아이들에게 들어보니 선생님의 훈계에 부당함은 없었다. A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다만 스스로가 그 감정이 감당이 안 되었던 것 같다. A는 자신의 분에 못 이겨서 주먹이 까지도록 벽을 쳤다. 동료 교사의 예언은 결국 현실이 된 것이다. A의 폭주 증상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있었다. 오래 지도하셨던 선생님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A와 수업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과는 마찰이 계속 생겼다. 고등학생이라 해야 할 학업량은 많은데, A가 하지 못하니 문제가 되었고, 다 하지 못한 숙제로 혼을 내면 A가 발작에 가깝게 폭주했다. 남자 선생님, 여자 선생님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 A를 훈계하는 것은 나와 부원장님으로 한정 지어버렸다. 다른 분들은 A에게 어떤 훈계도 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조정이 된 후로 A의 반에 평화가 찾아왔다.


폭주하는 문제로 나는 A를 앉혀두고 때로는 한 시간 넘게 상담을 해야 했다. A는 내 앞에서 울기도 했다. 여전히 A는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었다. 아니 고등학생이 되어 석차 등급을 마주하고는 A는 더 스스로의 한계를 체감하는 것 같았다. A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 A의 어머님은... 


"거긴 수준이 좀 낮은 고등학교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거기서도 그 모양이니..."


라는 답이 나왔다. A의 형은 자사고을 다녔고, A는 지역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어머님은 A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A에게 화를 내셨고, 학원을 그만두게 하겠다는 협박을 아이에게 하셨다. 우습게도 아이가 집보다 학원을 좋아해서, 부모의 그 협박을 A는 두려워했다. 아이에게 하는 협박 못지않게, 어머님이 학원에 넣는 압박도 있었다. 때문에 3년 동안 연차가 많은 선생님들이 전담하여 A어머님의 상담을 도맡아 하셨었다. 매번 A 어머님은 A의 낮은 성적을 문제 삼으셨고, A를 더 압박하기를 원하셨다. 어떤 날에는 방학인데 일찍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원에 전화를 하신 적도 있다. 결국 정규 수업보다 2~3시간을 먼저 와서 A는 자습을 해야 했다. 마지막엔 내가 A어머님의 상담을 맡았었는데, A가 스트레스성 장염에 걸렸을 때도 부족한 학습을 걱정하셨었다. 시험이 한 번 끝날 때마다 A 어머님은 낮은 성적을 이유로 학원을 관두시겠다고 했지만, 우린 딱히 말리지도 않았다. 사실 선생님들이 그 어머님께 너무 시달린 탓에 원장님께서 A는 잡지 않기로 결정하신 상황이었다. 담당했던 선생님들이 그 어머니께 받았던 스트레스가 그 정도였으니 아이는 오죽했으랴. 그런데 A가 계속 다니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마지막 6개월을 내가 A어머니의 담당자가 되었던 것은 A가 좋아하는 선생님이라서였다. 그나마 A를 통제할 수 있고, A가 그나마 따르는 사람이 나라는 걸 어머님도 아셔서 내게 다른 교과 공부들까지 부탁하셨다. 덕분에 한동안 A를 향한 모든 잔소리가 내 몫이었다. 어느 날은 A의 어머니가 아무래도 애가 머리가 그것밖에 되지 않는 것 같으니, 지가 흥미 있다고 하는 바리스타나 시켜야겠다고 했다. 그러니 그런 학과가 있는 전문대학을 좀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A에게 물어보니 딱히 그런 말을 어머니께 했던 것은 아닌 거 같았다. 그래도 전문대학으로 목표를 조정하신 후라 A에게 학업 스트레스는 덜 주시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A는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부모님이 사교육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형이 SKY에 떡하니 합격을 한 후로 A에 대한 집중 관리체계로 집안 분위기를 바꿔서였다. 그렇다고 이후에 드라마틱하게 A의 성적이 상승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가정학습이 늘어난 이 시국에 나는 A의 안부가 더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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