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중학교 2학년, '두리'가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형제와 처음 만났다. 두 아이 모두 보통의 남자아이들이었다. 공부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중학생. 친구들과 장난치고 노는 게 더 즐거운 중학생. 적당히 게임도 하고 PC방도 다니고, 맛있는 거 좋아하고 잘 먹는 씩씩한 개구쟁이들. 차이가 있다면 둘째인 두리가 조금 더 영특해서 학교 성적은 조금 더 좋은 편이었다는 것뿐이었다.
'하나'와의 첫 해는 '전쟁'이었다. 숙제를 주면 너무 당연하게 안 해왔다. 수업 시간에 딴소리를 하고 집중을 안 하는 것도 기본이었다. 새 학원에서의 첫 시험을 앞두고 그런 '하나'와 나는 전쟁을 벌이는 수밖에 없었는데. 보강 첫 주에 나는 완벽하게 승리했다. 되도록 초반에 확실하게 잡는 편이라서 나는 내 주말 스케줄을 다 포기하고, '하나'가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다 마무리할 때까지 기다렸다. 나중에 '하나'가 한 말을 빌리자면, 6시가 되면 적당히 끝날 줄 알았단다. 그래서 최대한 자기도 안 하고 버티려고 했는데, 이 선생이 절대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여서 망했다고 생각하고 했다고 했다. 그 뒤로 '하나'는 내가 내주는 과제는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반면 '두리'는 비교적 편안한 일 년이었다. 장난기는 다소 있었지만, 영특한 아이라서 문제를 푸는 속도도 빠르고 이해력도 빠른 편이라 힘을 들이지 않았다. 수업 때 조금 장난을 치기는 했어도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은 금방금방 잘 마무리했다. 그 무렵 형제의 어머니에게 고민거리는 말썽 많은 '하나'였지, '두리'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고민이 완전히 뒤집어진 순간은 '하나'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부터였다. 여전히 개구쟁이이긴 했지만, '하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무렵부터 조금씩 변했다. 학업과 진로를 고민했고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고민도 했다. 학습에 전보다 의욕적으로 변한 것은 물론이고, 생활 습관도 긍정적으로 변화는 과정들이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그동안 부족했던 공부 탓에 높은 성적을 얻지는 못했지만 '하나'는 그것에 좌절하지 않고 다음을 위해 애썼다. 다음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하나'가 기특해서 선생님들 모두가 저 녀석 나중에 뭐가 돼도 될 거라고 칭찬을 했다. 반면 '두리'는 완전 반대 상황이 되고 있었다.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은 둘째고, 당장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학폭위'가 열렸고 어머님이 속상해서 학원을 찾아와 우셨다. 학교에서 이미 '두리'를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은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놀란 것은 내가 본 아이와 학교에서 사고를 친 아이가 전혀 같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실한 타입은 아니었다고 해도 그런 사고를 치고 다닐 애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선생님, 애들이 우리가 보는 게 다가 아니에요."
그때 곁에 계셨던 고참 선생님의 말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두리'는 정말 그런 아이가 되었다. 내가 보는 게 다는 아닌 아이. 그런데 정말 내 앞에 보이는 그 아이는 착한 아이였다. 성실하지 못해 높은 성적을 받지는 못해도 머리는 좋았고, 공부를 좋아하지 않고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기는 해도 '문제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두리'는 정말 '문제아' 그룹에 속해 버렸다. 학교를 점심시간에 이르러서야 등교하여 학교에서 경고가 날아들었고, 속상해하는 학부모를 대신하여 우리가 '두리'를 몇 번이나 상담해야 했다. 같은 방을 쓰는 '하나'에게 제발 네가 아침에 동생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더니, 자기 말도 잘 안 듣는다며 '하나'가 툴툴거렸다.
형제의 어머니는 '두리'의 장래에 더 기대가 있으셨었다. 어려서부터 똘똘한 것은 '두리'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아이는 그저 사고만 안쳤으면 하는 상황이 되었다. 성적에 관심도 없고 학교 출결마저 엉망인 녀석이 학원은 꼬박꼬박 오는 것이 아이러니였지만, 우리는 계속 아이와 함께했다. 이렇게라도 부족한 학습을 채우기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마음이었다. '두리'가 고2가 되었을 때, 학교도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학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학생들을 그룹으로 묶어서 야외활동을 시켰다. 다른 아이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시간에 '두리'는 그 그룹원이 되어서 등산을 했다. 두리의 담임 선생님은 전년에 '하나'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분으로 초반부터 두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셨다. 미리 '하나'와도 상담을 하셔서 '두리'와 일 년을 잘 지내보려는 의사를 표하시기도 했다. 두리는 최소한 그해부터는 사고 치는 아인 아니었다. 자기 형이 고3이고, 제법 공부를 잘한다는 것을 두리가 의식하기도 했다. 그랬다. 고1 때는 하위권이었던 '하나'는 일 년 사이에 중위권으로 올라섰고, 고3이 되어서는 나름 공부 잘하고 열심히 하는 그룹의 학생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하나'의 성장을 보며 기뻐하고,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하나'의 입시 결과는 좋았다. 입시 후에 '하나'의 어머님이 저녁 식사를 대접해 주신 것은 물론이고, 손수 만드신 목도리까지 선물을 해주셨었다. 이 모든 것이 선생님들 덕이라며 감격해하시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하나'에게 학업적인 기대는 없으셨던 어머님이셨는데 말이다. 모두가 '하나'를 축복하고 응원했다. 녀석은 무엇을 해도 될 녀석이라고 말이다. 형의 성과를 보고 자극을 받은 것인지 '두리'도 조금씩 변했다. 고3 '두리'는 새로운 진로를 찾았고, 직업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일반적인 길은 아니었지만, 본인이 지망하는 직업 분야로 나아갔다.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던 '두리'는 자신의 말단 생활을 엄청 툴툴거렸지만, 그래도 꽤나 건강해 보여서 안심했다. '하나' 역시 군입대를 앞두고 우리를 찾아와 인사를 하더니, 그 뒤로도 휴가 때마다 인사를 오고, 최근엔 전역 인사를 왔었다.
두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어느 누구도 그런 굴곡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똘똘했던 '두리'가 그렇게 문제아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개구쟁이였던 '하나'가 그렇게 멋진 청년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원한 문제아가 될까 우려스러웠던 '두리'가 건실한 청년이 될 것도, 하위권 '하나'가 입시에 성공할 것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영원한 문제아도 영원한 우등생도 없다. 아이들은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고 변한다.
내 앞에서 보이는 이 착한 아이가 어딘가에선 악마처럼 돌변할 수도 있고, 내 눈엔 앞날이 깜깜했던 아이가 성공가도를 달릴 수도 있다.
결국 두 아이가 다 착하게 성인이 된 것을 보면, 가정에서 아이들의 뿌리는 잘 영글어 주신 게 아닌가 싶기도 한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우리 선생님들의 노고도 조금은 있었겠고, '두리'의 마음을 돌려주는데 애써주신 학교 선생님들도 있었을 거다. 아이가 삐뚤어진 명확한 이유도 몰랐지만, 아이가 다시 올곧아진 명확한 이유도 나는 모른다. 그저 나에게 이 형제들은 내가 선생으로 살아가는데 큰 교훈이 되었다. 반드시 안 되는 아이도 없고 반드시 되는 아이도 없다고. 아이들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고, 누구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누구 한 사람도 책임이 없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결국 잘 영글어진 아이들은 내 삶의 훈장으로 남는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