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두리'는 그 입시 지옥에서 행복했던 연년생 고딩 남매였다. '하나'는 중학교 때부터 학습에 의욕적인 여학생이었는데, 아이돌을 좋아해서 '덕질'에도 온갖 정성을 쏟는 친구였다. '하나'의 어머니는 그런 딸의 취미생활에 크게 제재를 가하시지는 않았다. 옆에서 봤을 땐 '하나'는 조금 많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했어도 일상을 망칠 정도는 아니었고, 시험 기간엔 누구보다 공부에도 열정적인 아이라서 사실 어머니가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할 정도는 아니기도 했다. 야무지게 본인이 챙겨야 할 것들을 잘 챙겼고, 동아리 활동도 적극적이라서 부장까지 하고 축제 때마다 바빠 보였다. '하나'는 소위 이름값이 있는 4년제 대학을 가는 것이 목표이긴 했어서 공부를 소홀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친 듯이 공부를 한 것은 또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선생 입장에서는 똘똘한 '하나'가 조금만 더 미친 듯이 공부하면 좋겠다 여겼지만, 아이도 학부모도 그 상황에 큰 불만이 없었으므로 나설 일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는 '하나'가 노력하는 만큼 도와주었고, 결국 목표로 했던 대학에 '하나'는 무사히 진학했다. 뭐 별거 아닌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진짜는 '두리'였다.
보통 대한민국의 '남매'들은 서로 으르렁 거리는 것이 일상 다반사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학원에 같이 다니는 형제자매들을 보면 그렇게 살갑고 다정한 경우는 별로 못 본다. '하나'와 '두리'도 그런 보통의 남매였었다. 딱히 둘이 대화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둘이 대화를 하는 것을 봐도 '하나'가 '두리'를 갈구고 있거나, '두리'가 '하나'에게 깐족거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고3이 되어서 '하나'의 성적이 제법 잘 나왔던 시험이 끝나고 '두리'가 자신의 반에서 '누나 자랑'을 했다. 나에게 "누나 국어 잘하죠?"라면서 친구들에게 확인까지 시켜가면서 말이다. 그 상황이 어찌나 당황스러우면서 귀여웠는지 모른다. 내가 그 일을 나중에 '하나'에게 말했더니, "본인 성적이나 좀 신경 쓰지."라고 '하나'가 툴툴거렸다. 맞다. '두리'는 딱히 어디 가서 자랑할 성적은 못되었다.
'두리'는 고등학교 입학 무렵부터 목표가 명확했다. 첫 상담을 했을 때, 이런 답을 한 아이가 처음이라서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두리'는 명확했다. "전문대 XX과 갈 건데, 제가 가고 싶은 대학은 4등급만 나오면 돼요." 보통 학원에 보내시는 부모님들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나는 좀 조심스럽게 '하나'에게 '두리'의 장래희망을 아냐고 물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남학생이 선호하는 학과도 아니기도 했어서 여러모로 걱정이었었다. 부모님의 의사와 아이의 뜻이 달라서 갈등이라도 겪으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하나'는 너무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걔가 원래 그걸 좀 좋아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당연히 '두리'의 부모님 반응도 그랬다. 아이가 좋다면 상관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사실 비싼 사교육비를 들여가면서 교육시키면서 목표를 그렇게 잡는 게 쉽지는 않으실 텐데, '두리'의 부모님은 아이가 학원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본인이 목표로 하는 그 점수만 딱 맞는다면 일절 말씀이 없으셨다.
'두리'의 삶은 꽤나 즐거워 보였다. 배드민턴 동아리였던 '두리'는 지역대회에도 참가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는데, 또 딱히 상을 받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두리'는 대회 참가에 의의를 두고 동아리 활동을 무척 즐겼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이 때로는 PC방으로 몰려다니고, 아이들이 한다는 게임도 적당히 다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놀다가 지각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지만, 신기한 건 시험기간이 가까워지면 또 열심히 학원에 나와 제 몫의 공부는 하는 것이었다. 암기력이 좋은 편이라서 일주일만 붙잡고 해도 어지간히 암기는 잘하니, 매번 사회 선생님이 조금만 더 공부하면 진짜 좋겠다고 하셨지만 '두리'는 딱 고만큼만 공부했다. 문과 아이들이 제일 먼저 포기하는 수학도 '두리'는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다만 정말 딱 기본 문제만 맞힐 정도로 적당히 공부했다. 연년생인 누나가 4년제 대학에 떡하니 붙었을 때도 '두리'는 별로 신경 쓰여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누나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정도였지 본인의 목표는 흔들림이 없었다. 고3 '두리'는 더 자유로워 보였다. 하고 싶은 것 즐기고 싶은 것을 다 만끽하면서 본인이 생각한 대학에 '두리'는 무사히 입학했다.
'하나'와 '두리' 모두 입학 후에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원하던 여행도 다녀오고, 좋아하던 취미생활들도 마음껏 하는 듯이 보였다. 가끔 찾아와서 인사를 하는 남매의 얼굴은 늘 밝고 환하다. 그 밝음, 그 행복을 위해 아마 아이들의 부모님은 큰 인내를 하셨어야 했을 수도 있다. 듣자 하니 '두리'는 친척 중에도 유일한 아들이라 할머니가 워낙 예뻐하신다고 했는데, 기대가 과연 없지는 않으셨을 거란 생각도 종종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꿈을 믿고, 아이들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신 부모님들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들인가. 그 믿음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입시 지옥에 빠지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고도 원하는 바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