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북선생 Jun 01. 2021

엄마는 죄인이 아니다.


"제가 아이에게 너무 소홀했나 봐요."


고등학생이 되어 아이의 성적이 하위권이 된 B 어머니와의 상담이었다. 학원을 보냈는데 성적이 왜 이모양이냐고 화를 내는 것이 차라리 내 속이 더 편하다. 그간 자신이 돌보지 않아서 아이가 이렇게 된 것 같다며 하소연을 하는 어머니를 마주하는 건 내가 더 애가 탄다. 다음 시험을 위해서 학원에서 애쓰기로 한 부분을 말씀드리고 집에서 어머님께서 신경 써주셨으면 하는 부분들을 전달하는 것으로 오늘의 상담을 마쳤다. 몇 시간 후에 B가 세상 신나서 교실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니 내 속이 다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잘못을 했다면 네가 잘못을 했지 엄마가 무슨 죄인이냐고 아이에게 한바탕 쏟아붓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엄마들은 뭐가 그렇게 미안한 걸까. 물론 부모의 잘못으로 아이가 엉망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자녀의 성적 하락을 죄스러워하는 대부분의 어머님들은 그들의 잘못은 없다. 그분들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보면 자신이 더 강압적으로 공부 압박을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신다. 그런 어머님들 대부분이 세상 법 없이도 살 것처럼 온순한 성품이시다. 그러니 학원에 와서 왜 내가 돈을 이렇게 썼는데 애 성적이 왜 이러냐고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을 탓하시지... 


자책하는 B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난 뒤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몇 해 전 있었던 학부모 상담이 생각났다. A군은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학원에 왔었다. 중학교 내내 학업에 큰 뜻이 없어서 적당히 설렁설렁 지내던 아이였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야 하니 공부를 좀 해보겠다고 온 것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친구 따라 강남 온 경우였다. 사교적이고 밝은 A는 다른 학교 친구들과도 금방 친해졌고 수업시간에도 쾌활하게 잘 지냈다. 모범생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선생님들에게 예의 없는 학생도 아니었다. 성격으로는 그 반에서 최상위에 속할 만한 아이였다. 그러나 공부습관이 자리잡지 못해서 주어진 공부만 설렁설렁했고, 틈만 나면 친구들과 장난치고 놀기 바빴으며, 자습을 하라고 하면 취침을 했다. 중학교 성적은 크게 나쁜 아이는 아니었지만 고등학교와 중학교의 간격은 컸다. A는 중간에도 못 드는 성적을 받았다. 한 계단도 아니고 두 세 계단 정도는 뚝 떨어져 있는 아이의 성적표에 A집안이 난리가 났고, 결국 학부모께서 방문하셨다.


학부모 상담을 아버지가 오시는 일은 특이한 일이 아니지만, 부모님 두 분이 함께 나오시는 일은 흔한 광경은 아니었다. 내 앞에 마주 은 두 분을 보면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었다. 잔뜩 화가 난 얼굴의 아버지와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어머니. A의 아버지는 단도직입적이셨다. 아이의 성적으로 가능한 대학이 있겠냐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가능한 대학은 수도권 4년제 대학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성적으로는 말씀하시는 수준의 대학은 힘들다고 말이다. 그러나 아직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니 향후 성적 향상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라질 수는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이끌기 위해서는 A의 부족한 기본기를 우선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몇 가지 A의 나쁜 학습습관에 관한 이야기도 말씀드렸다. 이미 아이의 성적으로 놀란 A의 아버지가 A의 핸드폰을 압수하셨다고 했다. 해서 놀러 나다니는 일은 확실하게 가정에서 잡을 것이라고 하셨다. 학원의 대책을 들으면서 A의 아버지는 조금 화가 누그러지신 것 같았지만, 곁에 계시던 A의 어머니의 안색은 점점 심각해지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왈칵 눈물을 쏟아 내셨다.


"일 때문에 애들 문제를 애엄마한테만 맡겨놨더니..."


A의 아버지가 하신 그 말이 도화선이었는지도 몰랐다.  


"큰 애라 잘 몰라서... 제가 더 일찍 학원에 보냈어야 했는데..."


그건 A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었다. 학원 선생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일찍 보내셨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은 했다. A의 학습습관이나 기본기 문제는 확실히 더 어려서 일찍 잡았으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어머니의 잘못은 아니다. 중학교까지 학원이나 학습지 같은 어떤 사교육도 없이 잘 지내고 고등학교 올라와서도 큰 무리가 없는 학생들도 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사교육은 의무교육과정이 아니므로 그것을 부모가 못했다고 죄인인 것은 아니다. A는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는 아이도 아니었고, 중학교 성적도 중위권이었다. 그런 A를 스트레스 없이 키우시던 그 맘이 나쁜 것이 아니다. 더욱이 삼 남매를 키우고 있는 A의 어머니 입장에서는 사교육비 지출을 최소화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 모든 마음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어머니는 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그 방 안에서 그녀만이 유일한 죄인 같았다. 고등학교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 아이의 문제를 이렇게 깊게 들여다보았을지 의문스러운 A의 아버지와 돈을 받아가며 지도하고 있는 담당 교사로 그 돈값을 못한 이 선생을 곁에 두고, 오직 그녀만이 죄스러워하며 한참을 울었다.


어머님을 겨우 달래 드리고, 학원 측에서도 더 각별하게 신경 써서 돌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두 분을 배웅했다. 그리고 그날 학원에 온 A를 나는 조용히 불렀다. 이미 자신의 성적표 때문에 아버지에게 혼나고 핸드폰도 압수당한 탓에 A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부모님이 다녀가신 사실도 알고 있었으니 A는 나에게 또 혼날 것을 생각하는 듯했다. 평소였으면 잔소리가 늘어지고 한껏 올라간 톤으로 화를 냈겠지만, 그날은 달랐다. 엄한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지만 나는 있었던 사실만 A에게 전했다. 부모님이 다녀가셨고 너의 성적 문제로 속상해하셨으며 그러다 결국 어머니가 죄스러워하며 눈물을 보이셨다고 말이다. 너의 어머니가 내 앞에서 우셨다고... 그리고 물었다.


"엄마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내 앞에서 우셔야 하니?"


A는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아이의 흔들리는 눈을 보고 난 다음 나는 다른 말을 더 하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 A의 태도는 조금씩 변했다. 성품이 워낙 착한 아이라 엄마를 그렇게 속상하게 한 것에 많이 반성하는 듯했다. 그 후 일 년간 A는 꾸준하게 성장했고, 나는 그렇게 착한 성품의 아들로 키우신 것에 어머님이 자랑스러워하셨으면 했다. 워낙에 못하던 수학을 제외하면 A는 전반적으로 성적이 상승해 중상위권이 되었고, 이후 그 부족한 수학 때문에 우리와의 인연은 끊어졌다.


인성 바르게 아이를 키워내신 어머님이라면 절대 성적 때문에 죄스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성적은 그다음의 문제인데 이건 누구 한 사람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만나는 수많은 교사들, 친구들, 학교, 학원 등에 가정의 영향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 자신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얘들아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하면 안 될까?






이전 09화 입시 지옥에서 행복한 고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