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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Mar 15. 2021

조금 다른 아이

학습 부진아, 경계성 지능 장애, 자폐성향

신입생이 들어왔다. 수업을 들어가기 전 동료 선생님께서 우려를 표하셨다. 장애가 있는 아이라고 다른 아이들이 싫어한다고 말하셨다. 약간의 자폐 성향이 있다는 이야기, 경계성 지능 장애라는 말도 들었다. 여러 사람의 말을 통해 전달받아 명확한 아이의 진단명은 확인할 수 없었다. 수업에 들어갔고 아이가 수업을 조금도 이행할 수 없겠다는 판단 바로 들었다. 국어과목은 그렇다. 도구과목이고 이것을 자기 학년에서 소화하지 못한다면 다른 과목은 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아이가 의사소통부터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고, 지난 일이 생각났다.


2년 ~ 3년 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면 신입 강사 생활을 좀 호되게 한 편이다. 3년 차 정도까지는 초등부도 지도를 하기는 했었는데, 그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당시 그 학원에 초등 4학년 반은 사실 없었다. 경영 상태가 좋지 못했던 당시 학원에서 원장님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받은 아이였는데, 엄마와 아이의 상황과 학원이 딱 맞은 셈이었다. 지적 수준이 조금 모자라는 아이이니 하나하나 끼고 설명을 해주어야 할 것이라고 들었다. 그 아이는 아마 경계성 지능 장애였던 거 같다. 그 아이와의 반년은 정말 힘들었다. 눈 앞에 빤히 적혀 있는 것을 옮겨 적는 일도 버거운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의 불성실이 아니니 화를 내서는 안 됐지만, 신참 선생은 매일이 화가 났다. 정말 ‘참을 인’ 자를 매일 같이 백번을 세기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몇 번은 기어이 참지 못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나와 함께 소리 내어 읽고 바로 아래 같은 것을 적는데 잘 못쓰고 있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면 이 아이가 나와 장난을 치나 싶어 졌다. 그러다 왼쪽 페이지에 있는 어떤 개념의 ‘뜻’을 오른쪽에 적는 문제가 나왔었다. “왼쪽에 있는 뜻을 쓰면 돼.”라고 나는 가볍게 말했고, 아이는 오른쪽에 정직한 글씨로 ‘뜻’을 썼다. 그게 내가 화를 내면 안 되는 이유였다. 그 순간을 맞이했을 때 나는 더 참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겼다. 부족한 사람이라 몇 번은 참지 못하고 그렇게 화를 냈음에도 아이는 내가 싫지는 않았던 건지 한 학기를 나와 함께 공부했다. 싫다는 것을 어머니가 억지로 보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그 아이와 문제집 한 권을 다 풀었다는 사실이 나는 내가 더 대견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아이를 학원에까지 보내가며 학교 수업을 따라가게 하려고 애를 쓰는지 나는 그 부모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뭘 모르는 신입 강사였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따라가게 하고 싶은 것은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다. 아이가 우수한 성적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남들처럼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생각해 보니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그런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고등학교엔 아예 특수학급으로 불리는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경계성에 있는 친구들은 그 특수학급에 들어갈 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아이들과 견주면 분명히 조금은 부족하다. 어떻게 보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도와주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도 있는 게 경계성에 있는 친구들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학원을 보내서라도 학교 수업을 어떻게든 따라가게 하려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새로 오게 된 이 아이의 어머니도 이해가 간다. 아니 안타깝다. 얼마나 절박한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오셨을지 알 것 같아서다.


동료 교사가 말했다. 아마 다른 학부모들이 싫어해서 오래 못 있을 거라고...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여긴 학교가 아니고 학원이다. 다른 고객들의 컴플레인을 들어가면서 아이를 살필 수는 없다. 내가 신입일 때처럼 학원경영 악화로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어머니를 안타까워하신 원장님의 마음이었다. 아이의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병원에서의 정밀 검사를 하라고 권한 분이 원장님이셨다는 이야긴 나중에 들었다. 중학교 1학년이지만 초등학생용 국어 어휘 책을 주문했다. 아이에게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게 국어과목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영어 시간엔 다른 아이들의 원활한 수업을 위해 따로 분리하여 보조 강사가 파닉스나 기초 단어 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다른 교과는 앉아 있는 것에 의의를 두는 쪽으로 결정지었다.


우린 학교가 아니다. 사교육이고 입시 교육을 중점으로 한다. 성적에 눈을 밝히고 아이들을 닦달하며 공부시킨다. 돈을 받고 학부모의 요구에 맞는 수업을 진행한다. 그게 학원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또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 조금 부족한 아이이니 그 부족함을 채워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았으니 우리는 아이를 위해 커리큘럼을 기획하고 수업을 진행한다. 학부모의 요구는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채우는 것이고, 우리는 단지 그 아이가 학교 수업을 들을 수라도 있게 도와준다. 어쩌면 다른 학부모의 요구보다 레벨이 낮지만 그 어떤 요구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입시 강사들이지 특수교육 전공자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아이와 앞으로 얼마를 함께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부족했던 신입 강사 딱지는 떼었는데, 내게 주어진 업무는 막중하고 나는 여전히 이런 교육에 있어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정작 내가 부족한 선생이라서 이 아이를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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