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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Mar 01. 2022

흰 종이수염

문학과 아이들

2학년 B반은 중하위권 성적의 아이들이 모여있는 반으로 하루가 조용할 날이 없는 반이었다. 그 반에서 특히 말썽이 많은 남학생이 둘 있었는데, 두 녀석의 사이가 또 각별하게 좋아서 문제였다.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흥미 없는 그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밀리터리'였다. 하루는 두 아이가 바삐 어디를 다녀왔는데, 알고 보니 군용기가 보고 싶어서 전쟁 박물관에 다녀왔단다. 그 소리를 듣고서 이 녀석들은 엄청난 '덕후'구나 싶었다. 두 아이, 강산과 바다(가명)는 주말이면 어딘지 모를 시장까지 가서 군용 모자 같은 것을 구하러 다녀왔고, 어떤 날엔 강산이가 깔깔이를 입고 나타나고, 어떤 날엔 바다가 아버지와 엄청난 협상 끝에 비행기 프라모델을 샀다며 자랑을 했다.  

쫑알거리며 떠들기 좋아하고, 하라는 공부엔 집중을 못하는 애들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공격적인 말들을 쉽게 하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같은 반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쉽게 놀리고, 조금만 흥분하면 욕을 했는데 두 녀석이 쌍둥이처럼 합심하는 탓에 지도하는 교사들마다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다. 명색이 국어 선생인지라 욕설을 하면 내가 듣는 족족 혼을 내서 최소한 학원에서 욕을 하는 일은 없어지기 시작했지만, 다른 친구들을 놀리는 행위는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다. 보통은 여학생들이 어지간한 말싸움에 지지도 않는데, 이 두 녀석은 여학생들과의 말싸움에도 지는 법이 없어서 늘 일을 키웠다. 그러니 매번 그 반을 수업하는 교사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악명은 학교에서도 유명했는지, 신입생이 들어올 때 그 아이들이 다니고 있어서 등록을 고민했다는 소리도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아이가 갑자기 동떨어져 앉았다. 그 전에는 선생님들이 일부러 자리를 떼어 놓았다면 그날은 자의적으로 교실의 양극에 앉아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렇게 좋아하는 둘의 수다도 사라졌다. 교실의 맨 뒷자리로 자리를 옮긴 아이는 '강산'이었다. 두 아이가 늘 반의 문제의 중심에 있기는 했지만, 사실 항상 사건의 시작은 '바다'녀석이긴 했다. 물론 녀석이 시작한 일을 '강산'이가 안 받아주면 될 문제였지만, 같이 낄낄대는 것이 좋아서 인지 자꾸 편을 들어서 일을 키웠다. 그래도 선생님들 사이에선 '강산'이를 조금은 더 높게 평가했는데, 녀석은 초등부 시절부터 오래 본 탓에 최소한 선생님께 버릇없이 군 적은 없었다. 반면에 '바다'는 종종 어른들께도 버릇없는 말을 해서 혼이 나는 아이이긴 했다. 어찌 되었든 두 아이가 갑자기 거리를 두면서 교실엔 갑자기 평화가 찾아왔다.

'바다'가 아무리 장난을 시작하려고 해도 받아주는 '강산'이 없으니 일은 커지지 않았다. 수업 시간 중에 '바다'가 몇 번 입을 열었지만, 받아주는 이가 없으니 재미가 없었는지 이내 조용해졌다. 갑자기 찾아온 평화에 선생님들은 일차적으로 환영하긴 했다. 하지만 이내 고민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강산'이가 단순히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거의 교실의 구석자리에 박혀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빨리 확인한 원장님이 아이와 따로 면담을 하셔서 두 아이가 심각하게 다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길아! 니 책보 우쨌노?”
“…….”
동길이는 얼른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마치 저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것처럼…….
“응? 책보 우쨌어?”
그러자 옆에서 창식이란 놈이 가벼운 조동아리를 내밀었다.
“빼앗심더.”
“빼앗기다니, 누구한테?”
“선생님한테예.”
“뭐, 선생님한테?”
“예.”
“와?”
“사친회비 안 낸 아이들은 다 빼앗고 집으로 쫓았심더. 사친회비 안 가져온 사람은 방학도 없답니더.”
동길이 아버지는 입술이 파랗게 굳어져 갔다.


'흰 종이수염' 작가 '하근찬'의 단편 소설이다. 주인공 동길이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으로 오랜만에 집으로 귀환한다. 요즘처럼 국가에서 교육을 책임져 줄 수 없던 시절,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동길이는 사친 회비를 내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학교에서 쫓겨났다. 내 어머니도 어린 시절 가난으로 인해 학교에 낼 돈을 내지 못해 많이 혼이 났었고, 중등 교육은 꿈도 못 꾸신 분이었다. 나는 내 어머니의 일화를 예를 들어 사친 회비를 설명했다. 여기에 덧붙여 지금 국가가 너희를 책임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라는 잔소리도 붙었다. 돈이 없다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매우 놀라워 하지만 감사하라는 잔소리를 귀담아듣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그날의 수업 분위기도 그러했다. 아이들은 내 잔소리를 들으며 소설을 돌아가며 계속 소리 내 읽었다.


“동길이 즈그 아부지 외팔뚝이.” 
 “외팔뚝이 새끼 목욕하네.”
“학교는 안 오고 목욕만 하네.”
맨 마지막으로, 
“외팔뚝이, 오늘 학교 왔더라.” 
 하는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소리였다. 그리고 살금 아이들 뒤로 숨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창식이란 놈이 틀림없었다.          


한국 전쟁에 노무자로 징용되었다 돌아온 동길이의 아버지는 한 팔을 잃었다. 모처럼 마주한 아버지를 봤을 때 동길이는 그런 아버지의 텅 빈 소매에 반가움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어린아이였다. 책보 일이 있을 때 함께 있었던 친구 창식이가 그런 동길이 아버지를 본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아이들의 놀림은 모두 문제의 창식이 때문이라는 것을 동길이는 알았다. 

'강산'이와 '바다'는 둘도 없이 친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창식이가 동길이의 상처를 소문을 내어 화나게 했던 것처럼... 두 아이의 싸움도 그러했다.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던 두 아이였으니, 처음 시작은 아주 사소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기 싫어하고 타인을 놀리거나 험한 말을 하길 서슴지 않았던 '바다'가 친구인 '강산'이가 가장 아파할 말을 내뱉어 버린 것이다. 정확한 문장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당시 부모님의 이혼 문제로 '강산'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바다'가 바로 그 부분을 걸고넘어졌다는 것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워낙 타인을 잘 놀리고 험한 말을 잘하던 '바다'이기도 했지만, '바다' 역시 한부모 가정의 자녀였기에 '강산'이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알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니까 '강산'이는 가장 아픈 곳을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에게 맞은 것이다. '강산'이가 교실 뒤로 자리를 옮기고 사소한 농담마저 하지 않고 입을 꾹 닫은 것이 내가 본 아이의 고통의 크기였다. 


 “아, 오늘 김 주사가 한턱내더라. 우리 목공소 주인 김 주사가 말이지, 징용 나가서 고생 많이 했다고 한턱내더라니까. 고생 많이 했다고……. 팔뚝을 하나 나라에 바쳤다고……. 으흐흐흐흐…….”
 그러고는 또,
 “이놈! 너, 오늘 와 핵교 안 갔노, 응? 돈이 없어서 안 갔나, 응? 응? 이 못난 자식아! 뭐, 핵교를 안 댕기겠다고?”하고 마구 퍼부어 댄다.
“이놈아, 오늘 내가 핵교에 갔다. 핵교에 갔어. 너거 선생 만나서 다 얘기했다. 이봐라, 이놈아! 내 팔이 하나 안 없어졌나. 이것을 내보이면서 다 얘기하니까 너거 선생 오히려 미안해서 죽을라 카더라. 죽을라 캐. 봐라, 이렇게 책보도 안 받아 왔는강.”          


동길이 아버지의 원래 직업은 목수였다. 한 팔을 잃어버린 목수. 그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좌절하고 슬퍼할 틈도 없었다. 자신의 체면을 챙길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본래 일했던 직장으로, 아들의 학교로 부지런히 오가면서 자식을 걱정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이를 지키겠다는 아버지의 책임감. 아버지의 사랑. 그의 술주정 속 그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에서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글을 읽는 아이들의 순서가 돌고 돌아서 '강산'이의 차례였다. 아이가 소설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선은 활자에 머물러 있었다. '바다'와의 다툼 탓인지 그날따라 유독 낮게 읽는 '강산'이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아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고 나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아이를 봤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녀석의 눈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읽던 것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읽어 나가는 '강산'이의 목소리는 다시금 평온을 찾은 듯했지만, 읽기를 마치고 고개를 드는 아이의 눈이 붉어져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들은 그 묵직하게 내려앉으면서도 미묘하게 떨렸던 그 소리가 아이의 짧은 울음임을 확신했다.


“내가 비록 이렇게 팔이 하나 없어지긴 했지만, 이놈아, 니 사친회비 하나를 못 댈 줄 아나? 지금까지 밀린 것 모두 며칠 안으로 장만해 준다. 방학할 때까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장만해 준단 말이다. 오늘 너거 선생님한테도 그렇게 약속했다. 문제없단 말이다. 애비의 이 맘을 알고 니가 더 열심히 핵교에 댕기야지, 나 핵교 때리챠 버릴랍니더가 다 뭐꼬? 이눔으 자식! 그게 말이라고 하는 기가?”


이후에 알게 되는 사실은 아버지가 흰 종이 수염을 붙이고, 커다란 북을 치며 극장 광고를 하는 일을 결정한 날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좀 우스운 꼴이 될 지라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아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결말에 다다르기도 전에 '강산'이는 아버지의 몇 마디에 울었다. 나는 소설의 이 구절이 '강산'이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지금도 모른다. 다만, 부모님의 갈등 중간에 있던 녀석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던 이 구절이 작은 위안은 되었길 바란다. 

'강산'이가 울컥했다는 사실은 그날 교실에서 어쩌면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하게 그저 수업을 하고 있었고, 친구가 소설을 읽건 말건 책 한 귀퉁이에 낙서나 하는 녀석들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소설을 수업하면서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나조차 상상하지 못했었다. 벌써 몇 번이나 수업을 했던 작품이었고, 그저 책에 있으니 진도를 나갈 뿐이라 그 이야기가 품은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날 나는 문학이 우리의 삶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이후로도 결국 두 아이는 화해하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두 아이는 그토록 열을 올리던 취미생활도 관두었다. '강산'이의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하셨고, 집안 사정을 이유로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뒤로도 나는 이 소설을 보면 녀석이 생각났고, 그날 끝내 꾹꾹 눌러 참은 그 울음이 지금도 생각이나 마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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