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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Feb 01. 2022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어느 선생님이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아이들이 있다. 모든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아이들이 늘 말을 잘 듣는 것은 아니므로 늘 예쁘기는 힘들다. 그런데 정말이지 뭘 해도 예쁘기만 한 애들도 있다. 


A가 딱 그런 아이였다. 내 입에서 종종 A의 부모님이 A덕에 너무 행복하실 거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학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A는 존재감이 확실했다. 쾌활한 웃음소리와 함께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교실에 내가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반기며 인사하고, 내가 나갈 때도 인사를 잊는 법이 없다. A는 학원을 나갈 때도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인사성'의 중요성을 말씀하실 때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막상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그게 참 중요하긴 중요하다. A처럼 밝게 인사하는 아이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업 시간엔 A로 인해서 나는 늘 인기 스타가 되는 기분이었다. 선생님들은 사실 관심을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두가 나의 말을 경청하고 집중할 때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A는 수업 시간에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이였다. 나의 말과 동작 하나까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A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집중했다. 내 말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A의 얼굴을 보는 일은 그 교실에서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나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수업 때마다 내가 들고 들어오는 커피를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언제나 A였다. "오늘도 캔커피시네요?" "쌤, 오늘 이디야 다녀오셨어요?" "그거 스벅이죠?" "쌤 그건 무슨 커피예요?" 내가 들고 들어오는 커피 브랜드가 바뀌면 바뀌는 족족 알아봤고, 자주 들고 들어오는 종류도 알았다. 때로는 내가 뭘 마시고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는데 그럼 무한한 관심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실에서 가장 열심히 대답을 하는 사람도 A였다. 소리를 내어 대답하는 것은 성향에 따라 다른 문제이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호응을 열심히 하는 학생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A는 확실히 수업 참여도가 높은 학생이었다. 내가 하는 질문에 답을 열심히 하기도 하고, 잘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또 열심히 물어도 봤다. 본인이 납득이 안되면 말도 안 된다고 외칠 때도 있지만 아이의 말투 어디에도 짜증은 없었다. 늘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는 어려운 고비를 넘겨서 이해를 하고 나면 그 기쁨 역시 드러내는 아이였다. 드디어 알아내서 기쁘다는 듯이 말하는 학생을 보는 것은 선생으로서 정말 보람찬 일이다. 


주어진 숙제를 꼬박꼬박 잘해오는 것은 학생의 당연한 의무이지만, 지키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기 때문에 열심히 해오는 친구들은 예쁘다. 나는 아이들에게 누누이 다 맞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잘해오는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라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A가 딱 그 표본이었다. 나는 겨울 방학마다 아이들에게 매일 읽고 푸는 문제를 준다. 중등부 아이들의 경우에는 학습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계획표를 붙여주고, 확인 도장도 찍어준다. 다 맞은 날에는 기분이라도 좋으라고 좀 다른 도장을 찍어주는데, A는 그 '올백 도장'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A는 항상 제일 먼저 숙제를 내는 아이였다. '올백 도장'을 못 받은 것을 속상해는 했어도 이내 내일은 꼭 다 맞겠다는 투지를 불태우는 아이였다. 열심히 하는 아이만큼 예쁜 아이가 어디 있을까? A는 그런 아이였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A는 참 예쁜 행동만 했다. 자신보다 부족한 친구에게 잘 설명해주고, 말썽을 부리는 친구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말도 해주는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에 항상 그 명랑한 톤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반대로 자신이 무언가를 도와줄 때엔 그걸 생색내지 않았다. 영단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친구를 항상 기다려주면서도 어떤 불평도 하는 것을 못 보았고, 그저 그 시간에 자신의 숙제를 하는 아이였다. 때로는 친구의 가방까지 주렁주렁 들고, 친구들을 챙겨서 등, 하원을 하기도 했다. 만일 내가 A와 또래였다면 정말 친구 하고 싶은 아이였다. 


종종 A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날 배운 소설이 재미있으면 집에 가서 부모님께 배운 소설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하루는 배운 작품을 집에 가서 아빠에게 말했더니 아빠가 그 이야기 슬프지 않냐고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명랑한 아이가 집에 와서 부모님 옆에서 쫑알거리며 배운 소설을 말할 때, 아마 A의 부모님은 먹지 않아도 차고 넘치게 배부르지 않았을까? 그분들은 어떤 천운으로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얻으셨을까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절대 그건 운만은 아니다. 타고난 성격도 분명히 있겠지만, 중학생 여자아이가 아빠와 소설 이야기를 다정히 나누는 사이라니... 가정의 분위기가 이미 사랑이 차고 넘칠 것만 같았다. 그분들이 넘치는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주신 덕에 내가 교실에서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났구나 싶었다. 


선생님들끼리 모이면 공통의 입에 오르내리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가 '쟤는 진짜 저러다 뭐가 되려고'하는 걱정을 하게 만드는 아이가 있는 반면 '쟤는 정말 뭐가 돼도 될 거다.'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전자는 선생님들을 여러모로 고생시키는 쪽의 아이이면서 성적도 나쁜 경우지만, 후자는 성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평가다. 아이가 너무 괜찮아서 뭐가 되어도 잘 될 거라는 뜻으로 가장 큰 칭찬이다. A도 우리가 늘 그렇게 말하는 아이였다. 매년 그렇게 A처럼 학년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들이 있는데, 다년간의 경험으로 정말로 그런 아이들은 입시와 관계없이 잘 산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아이이니 너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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