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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Aug 01. 2021

말은 씨가 된다.

언어폭력, 정서 학대

내가 어릴 때, 우리 이웃에 살던 가족은 많이 이상했다. 사람들을 유독 꺼리고 피하는 가족이었는데, 외출하다가 우리 가족과 마주치면 엘리베이터 탑승을 포기하고 걸어 내려가는 정도였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아빠 얼굴이 험악해서 그 집 식구들이 무서워 도망친다고 했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그들을 이상하게 여긴 진짜 이유는 하나뿐인 아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아이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떠나 그 집 엄마는 아이에게 상스러운 욕을 사용했다. 어린 내 앞에서 절대 욕을 사용하지 않으시던 우리 부모님과는 다르게 말이다. 엄마가 그렇게 폭언으로 아이에게 욕을 하는 동안에 그 집 아빠는 집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아이는 중학생이었고, 폭력이 오가는 거 같지는 않았다. 단지 엄마의 말들이 수위를 자꾸 넘었다. 우리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욕은 원수에게나 할 법한 수준이었다.


우리 엄마는 지금도 내가 농담으로 혹은 그저 습관으로 ‘못 살아, 못 살겠어.’라는 말을 하면 꼭 귀여운 이모티콘과 ‘그래도 살아’라는 말을 꼭 붙이신다. 우리 아빠 역시 출근하는 나에게 종종 ‘오늘 너무 예쁜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신다. 두 분 다 화가 나셨을 때는 엄청 무서운 분들이지만, 나에게 사용하는 말들은 되도록 예쁜 말들이었다. 그런 우리 가족의 입장에서 옆집 엄마의 그 상스러운 언어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이 되고 아이들을 접하면서 우리 옆집에 살던 부모 같은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정서에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제는 이런 정서적 학대에 대해서 대처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린 학부모에게 돈을 받는다. 때문에 감히 “어머님, 어머님의 태도를 고치셔야 해요.”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이가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중고생인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더 어렵다. (우린 일방적으로 아이가 하는 이야기만 듣기에 사실 확인이 어렵고, 사춘기 반항으로 못할 소리를 하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기는 하다.) 분명 부모가 아이에게 거친 언사를 퍼붓고 있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것을 따질 것이며 이게 신고가 가능한 일일까? (아동학대 교육에서는 이런 언어폭력도 분명한 아동학대이며 신고대상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도 정말 신고하고 싶다. 그래서 이게 해결이 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결국 우리의 선택은 최소한 아이가 우리와 있을 때만큼 마음을 다독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자주 접하는 언어폭력은 아이의 성적 문제와 밀접하다.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폭언을 하는 경우들인데, 내 주변의 동료 교사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바로 그 폭언이 아이의 성적을 망치고 있다고 말이다. 좋은 말을 듣고 자라 정서가 안정된 아이들이 학업에도 열심이다. 본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니 학교 생활도 원만하고 그래서 학습 결과도 좋다. 반면 폭언을 들은 아이는 그 불안한 정서로 인해 학습 의욕을 상실하거나 자신감이 없어 학교 생활이 원만하지 못하고 때문에 학습 결과도 나쁜 경우를 본다. 그 결과로 부모에게 또 폭언을 들어야 하니 참으로 악순환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순환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먼저 만들어야 한다.


우리 조카들이 어려서 친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유가 할머니가 만나기만 하면 무서운 이야기를 해서였다. 경찰 아저씨를 불러 혼을 내준다느니,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느니 하는 옛날 어른들이 흔하게 하는 그런 말이었으나, 평소 외가에서 그런 소리를 들을 일이 절대 없는 아이들이라 그게 공포로 느껴진 것이다. 유치원생에게 너희가 할머니 말을 이해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없다. 결국 어른이 고치고 어른이 먼저 바뀌어야 맞는 거다.


내 친구의 집안 어른은 자녀로 인해 화가 나도 ‘망할 놈’이라는 말은 절대로 안 쓰시는 분이 있으셨다. 말이 씨가 되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말이다. 대신 답답하실 때마다 ‘저런 부자가 될 놈 같으니’라는 참으로 길고도 긴 작명을 하셨다고 했다. 그분의 자녀는 정말 그분 말씀대로 되었다. 매우 어려운 공부를 성취하여, 모두가 부러워하는 전문직 종사자가 되었고,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지금도 끝없이 자기 계발을 하고 계신단다.



말은 정말 씨가 된다. 폭언을 쏟아부은 그 자리는 절대로 예쁜 꽃을 피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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