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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Mar 31. 2021

[5-1] 악의 모습

오페라 '토스카' '로엔그린'

오페라 속 악인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권력을 이용하여 유린하고 때로는 불안과 의심을 불러일으켜 스스로 파멸에 이르도록 유도한다. 심지어 유혹을 하다 안 되면 아예 상대를 죽이는 것도 불사할 정도로 그들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는 욕심, 그 한가지에만 집착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이를 절대 포기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일이 잘못되어 자신이 스스로 파멸할지라도 멈출 줄 모르는, 말하자면 악 그 자체가 스스로의 정체성인 것이다. 그것을 악마라고 부르든,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든 그들의 존재는 악으로 똘똘 뭉쳐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토스카' 한 장면

베르디의 ‘토스카’ 속 스카피아는 토스카에 대한 욕정으로 가득하다. 비밀경찰의 수장인 그는 반정부인사 안젤로티가 탈출하자 그를 잡기 위해 수사를 펼치고 토스카의 연인 카바라도시가 그를 숨겨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토스카의 질투심을 유발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수사를 펼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토스카로 하여금 남자친구에 대한 의심과 그로 인한 분노를 유도하여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 

결국 찾으려던 안젤로티는 찾지 못하고 대신 카바라도시를 잡아들인 그는 토스카를 불러들여 고문을 당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토스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바로 그녀의 정절을 바치라는 것이다. 토스카는 고통받고 있는 남자친구를 그저 모른 체 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통해 욕정을 채우려는 스카피아의 더러운 계략으로 인해 남자친구가 필요 이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스카피아는 남자친구에 대한 처형을 완전히 무효시킬 수는 없으며 단지 거짓으로 처형하는 것처럼만 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자신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처형식이 끝난 뒤 자신과 남자친구가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도록 통행권을 써달라고 요구한다.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애통해하는 토스카의 아리아를 듣고 있으면 착잡한 심정을 어쩔 수 없다. 이내 토스카는 탁자 위에 있던 칼을 보고 스카피아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도저히 악에 굴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통행권을 받은 뒤 자신에게 달려드는 스카피아를 칼로 찔러 죽이고 토스카는 서둘러 처형장으로 향한다.

https://youtu.be/bLc6nfvgN8A

카바라도시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고 처형을 당하는 척 연기한 뒤 함께 떠나기로 한 두 사람. 하지만 처형을 당한 카바라도시가 일어나지 않자 스카피아가 거짓말을 한 것을 알아챈 토스카는 스카피아의 부하들이 자신을 잡으러 오자 스스로 성벽 아래로 떨어진다. 

스카피아가 계략을 통해 토스카를 능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토스카에 대한 욕정을 한껏 드러내며 그녀를 반드시 자신의 뜻에 따라 능욕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는 아리아는 그가 얼마나 끔찍한 인간인지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면 그만이라는 생각,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마치 자신이 자비를 베푸는 양 교묘하게 접근하는 모습이 더욱 더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https://youtu.be/zzz808Cn3LQ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하는 공감, 동정심, 양심, 선의 등은 전혀 없고 오로지 더러운 욕망과 그것을 채우기 위한 계략만이 존재하는 끔찍한 인간을 마주하는 순간 그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얼굴이 찌푸려지는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로엔그린' 한 장면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악인의 모습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도 등장한다. 앤트워프의 하인리히 왕은 헝가리 군대의 침입에 맞서 싸울 군사를 동원하기 위헤 브라반트 영지를 방문한다. 영주인 텔라문트 백작은 우선 그곳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 심판을 해달라고 왕에게 부탁한다. 

바로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전 영주의 딸 엘사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었다. 죄목은 동생 고트프리트를 살인한 죄였다. 백작은 자신의 아내 오르트루트의 목격담만을 듣고 엘사가 동생 고트프리트를 강에 빠뜨려 죽였다고 생각했다. 물론 엘사를 처벌하는 것이 자신의 권력욕을 채울 수 있는 길이기도 했기에 기꺼이 믿고 싶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사실은 오르트루트가 고트프리트에게 마법을 걸어 백조로 변신시켰고 이를 엘사에게 뒤집어씌운 것이었다. 

엘사를 처벌하려던 텔라문트 백작은 엘사를 지키기 위해 나타난 기사 로엔그린과의 결투에서 패배하고 하루 아침에 그곳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에 백작은 아내 오르트루트를 원망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오르트루트는 이에서 물러서지 않고 남편 텔라문트를 다시 한번 꼬드겨 로엔그린을 죽이려는 계략을 꾸민다. 

엘사가 가진 모든 것, 즉 영주의 아내로 누릴 수 있는 권력이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르트루트. 영지에 대한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영주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고트프리트를 제거한 오르트루트는 엘사 또한 제거하려던 자신의 계략을 무산시킨 로엔그린이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손아귀에 거의 들어올 뻔 했던 욕망의 대상을 눈 앞에서 빼앗겼으니 이를 쉽사리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오르트루트는 로엔그린을 제거하고자 이번에는 엘사를 이용하기로 한다. 로엔그린이 엘사에게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절대 물어보아서는 안된다고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건 것에서 실마리를 찾은 오르트루트는 엘사에게 불안과 의심을 심기로 한다. 

마음이 따뜻한 엘사에게 동정심을 유발하여 엘사를 꼬드긴 오르트루트는 엘사를 위하는 척 하면서 교묘하게 로엔그린에 대한 의심을 하도록 한다. 로엔그린의 출신이 고귀하지 못하거나 정결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즉 마법을 부리는 자가 아닌지, 자신의 출신과 정체를 숨기는 것은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로엔그린에 대한 엘사의 믿음은 점점 그 견고함을 상실해가고 그 균열을 감지한 오르트루트는 더욱 더 엘사를 자극하고 몰아친다. 결국 의심과 불안을 참지 못하고 결혼식 후 엘사는 로엔그린에게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고야 만다. 결국 로엔그린은 엘사를 떠나가게 된다. 

로엔그린이 떠나가자 오르트루트는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며 뛰쳐나와 즐거워한다. 남편 텔라문트는 로엔그린을 죽이려다 죽임을 당했기에 더 이상 권력을 되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사의 행복을 앗아갔다는 것, 눈엣가시인 로엔그린을 떠나보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쁨이 넘쳐 주체하지 못했던 것이다. 

https://youtu.be/ZOcmFp_kutI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이나 분노를 넘어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남도 갖지 못하게 했다는 것에서 더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도록 한 대상이 눈 앞에서 사라지도록 하는 것에서 더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애초에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을 탐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탐욕이 좌절되자 자신이 갖고자 한 것을 가진 자와 자신의 탐욕을 좌절시킨 자를 모두 파멸시키려 한 오르트루트는 악의 화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은 치를 떨게 하기에 충분하다.  (악의 모습-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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