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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Mar 26. 2021

[4] 욕심은 죄를 낳고

오페라 '라인골드' '맥베스'

권력에 대한 무한한 탐욕을 경고하다


사랑에 대한 질투를 넘어 권력에 대한 욕심은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무시무시한 탐욕 중 하나다. 바그너의 오페라 ‘라인골드’는 권력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결국은 저주를 받는 신과 인간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절대권력을 지닌 반지에 대한 온갖 군상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모티브이기도 한 ‘라인골드’는 이후 ‘니벨룽의 반지’ 3부작으로 이어지며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무너지는 신과 인간의 다층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메트라폴리탄 오페라(Met Opera) '라인골드' 한 장면

라인강의 바닥에 숨겨져있는 금을 지키는 요정들을 희롱하던 니벨룽의 난쟁이족 알버리치는 요정들로부터 라인강의 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금으로 반지를 만들어 소유하고 있는 이는 절대권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유일한 조건은 사랑을 단념하는 것이다. 색을 탐하는 알버리치가 이를 절대 단념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마음놓던 요정들의 생각과는 달리 알버리치는 어차피 자신의 못생긴 외모로 사랑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권력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이내 금을 가져다 반지를 만들어 니벨룽 족들을 지배하며 금을 계속해서 축적한다. 

한편 거인족들과의 거래를 통해 신의 요새를 지은 우두머리 신 보탄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거인족들이 원하는 처제이자 젊음의 신 프레이아 대신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 불의 신 로게를 부른다. 애초에 이 거래를 성사시킨 장본인인 로게에게 보탄은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다. 

대안을 위한 꾀를 내던 로게는 라인골드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를 듣고 보탄은 라인골드를 구해 거인족들에게 주기로 서로 합의한다. 보탄과 로게는 금을 찾아 나서고 욕심많고 우매한 알버리치를 속여 성공적으로 금과 반지를 뺏는다. 반지를 빼앗긴 알버리치는 “반지를 가진 자는 걱정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이러한 저주에도 불구하고 보탄은 이미 자신의 손에 낀 반지에 대한 욕심이 자라나 이를 거인족들에게도 주기를 거부한다. 그 때 대지의 신 에르다가 나타나 반지를 가지고 있으면 신들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어쩔 수 없이 반지를 빼어 거인족들에게 주자 곧이어 반지를 놓고 거인 둘이 싸우고 결국 그 중 한 명이 죽음을 맞고야 만다. 

반지의 저주가 실현되는 와중에도 자의든 타의든 반지를 빼앗긴 자들은 반지에 대한 욕심을 지우지 못한다. 반지를 둘러싼 신과 영웅, 난쟁이 등 수많은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는 절대권력에 대한 뿌리칠 수없는 유혹과 욕심, 그에서 비롯되는 다툼과 계략, 죽음과 복수 등 다양한 변주들을 양산한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대서사시, 바그너의 '라인골드'


‘라인골드’를 시작으로 총 4편의 오페라로 이루어진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는 각각의 오페라가 네다섯 시간에 이르는 엄청난 길이와 수많은 등장인물, 복잡한 인물관계 속에서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장대한 서사로 이루어진다. 

자칫 길이에 압도되어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거나 복잡하고 장대한 이야기에 흐름을 놓치거나 지루하고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위기의 순간들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바그너의 오페라는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성찰을 얻게 하는 작품이다. 

장대한 서사를 수놓는 웅장하고 장구한 음악과 환상적이고 탄성을 자아내는 무대장치가 만들어내는 바그너의 오페라는 오페라라는 장르의 장점을 적극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오페라에 담긴 겹겹이 쌓인 상징적인 의미들을 파헤치면서 얻게 되는 통찰은 귀에 남는 음악, 눈에 담긴 무대를 통해 오래도록 기억 속에 각인된다. 

장구한 대서사시의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는 절대권력을 주는 반지에 대한 욕심과 그로 인한 파멸,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권력에 대한 탐욕과 유혹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마주하는 추악한 모습과 참혹한 결말은 인간의 본질적 한계를 드러내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반지를 가진 자는 파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지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불안 속에 떨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 이끌리는 것은 어쩌면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뺏고 빼앗기는 반지 쟁탈전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절대 권력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만은 지배할 수 없는 모양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한번 반지를 품었던 이는 그에 대한 욕심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반지의 노예처럼 반지를 쫓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절대 권력이라는 것은 반지에 있을 뿐 반지를 가진 이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욕심에서 비롯된 반지의 소유는 오히려 독이 되어 그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침내 파멸하고 마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권력이 가진 속성에서 기인한다. 권력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는 순간 과도한 집착을 불러오며 손에 넣는다 하더라도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결코 만족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은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나서야 끝이 나는 것이다.


권력에 내포된 비극적 속성을 포착한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심과 권력에의 집착으로 인한 타락과 파멸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맥베스는 마녀들에게서 Thane of Cowdor와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지만 이와 더불어 그의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반쿠오의 자손들이 왕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메트로포리랕 오페라(Met Opera) '맥베스' 한 장면 

승전의 보상으로 현재의 왕 던칸에게서 Thane of Cowdor의 지위를 얻게 된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이 이루어지자 흥분하고 아내에게 소식을 알린다. 남편 맥베스가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들은 아내는 던칸이 자신의 성에 머무르리라는 소식을 듣고 예언의 실현을 앞당기고자 한다. 

던칸의 살해를 종용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 맥베스는 머뭇하지만 이내 잠자고 있는 던칸을 칼로 살해한다. 왕위에 오른 맥베스와 그의 아내는 하지만 즐겁기는 커녕 권력의 안위에 대한 불안으로 또 다른 살인을 계획한다. 바로 반쿠오와 그의 아들을 살해하도록 지시한다. 이에 반쿠오는 죽임을 당하지만 그의 아들은 도망친다.

애초에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살인을 저질렀지만 맥베스는 살인을 결코 즐기지는 못했기에 자신이 저지른 죄는 그의 손을 더럽혔고 그의 뇌리에 각인되어 시도 때도 없이 망령처럼 나타나 맥베스를 괴롭힌다. 더구나 예언은 어김없이 실현되어 가고 그 예언이 더 이상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지 않기에 맥베스는 이를 막기 위해 살인을 거듭한다. 

다시 한번 마녀들을 만난 맥베스는 버냄 숲이 그의 성으로 진군해 오기까지는 무적일 것이고 여자에게서 난 자는 그 어떤 이도 그를 해할 수 없다는 예언을 듣고 마음을 놓는다. 그리고 맥더프를 조심하라는 경고에 그와 그의 가족을 모두 죽이도록 한다. 

하지만 맥더프는 피난민의 행렬에 합류하고 살인 누명을 쓰고 영국으로 도망친 던칸의 아들 말콤과 만나 영국군을 지원군으로 하여 맥베스를 물리치기로 한다. 버냄 숲에서 나뭇가지로 몸을 덮고 위장하여 성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맥베스는 실현되지 않으리라 여겼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지만 여전히 여자의 자궁에서 난 사람은 그를 절대 해할 수 없다는 예언을 믿고 의기양양하다. 

맥베스를 치기 위해 나타난 맥더프와 대결을 벌이던 맥베스는 맥더프가 여자의 자궁에서 나지 않고 제왕절개를 통해 배에서 끄집어내졌다는 말을 듣게 되고 결국은 맥더프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이로써 짧고도 추악했던 맥베스의 권력은 끝이 나버린다. 

베르디는 권력의 욕심에 눈이 멀어 한순간 돌변하는 인간의 추악함을 극적으로 보여준 동시에 그 욕심이 죄가 되어 그의 삶을 망쳐놓는 과정을 참혹하게 그려낸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은 현란한 언어의 향연이 두드러지지만 대사가 중심이고, 대사가 많다보니 말로 모든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기에 벅찬 느낌이 드는 면이 있다. 따라서 배우들이 감정을 극적으로 보여주기가 어렵다. 장면의 전환이 잦고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므로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급급해 극적 긴장감이나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베르디는 오페라의 장르에 맞게 극적인 장면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아리아를 삽입함으로써 극적인 장면을 더 강렬하게 전달할 수 있다. 대사가 간결하다 보니 의미의 전달은 지나치게 단순할 수 있지만 음악의 힘을 빌어 극적인 감정의 표현과 각 인물의 갈등과 고뇌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전도유망하고 의기양양하던 맥베스가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똘똘 뭉쳐 무너져가는 과정이 강렬하게 다가와 오래도록 떠오르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오페라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오페라가 전하는 다소 과장된 감정은 아리아, 이중창 등과 어우러져 완벽한 한 편의 드라마로 완성되고 오페라가 끝난 뒤에도 선명한 장면과 귓가에 맴도는 선율로 오래도록 남는다. 


과도한 욕심이 부른 죄의 연속과 그로 인한 파멸의 길을 걷는 인물들을 보면서 비극이 지닌 카타르시스를 넘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훌륭한 계기를 만들어낸다. 잘못한 인간이 괴로워하다 결국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지만 그들의 감정과 행위가 결코 자신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기에 서늘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욕심이라는 것이 인간에게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죄로 이어져 결국은 파멸하게 되는 비극은 평범한 악의 모습이기에 더욱 더 각성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악인의 모습이 평범함을 넘어 악 그 자체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있다. 

이러한 악에 대해서는 과연 피해갈 길이 있기는 한 걸까.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는 악의 모습을 허구로나마 들여다보며 경계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오페라에서 그들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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