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탐구와여정 Dec 22. 2020

[3-1] 질투가 불러온 비극

오페라 '토스카' '오텔로'

인간의 감정에서 질투만큼 미묘하고 강렬한 것은 없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미련,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집착이 불러오는 질투는 그것이 자신에게로 향하면 발전의 토대가 될 수도 있지만 남에게로 향할 때 결국은 비극으로 끝을 맺고 만다.



질투의 방식 1.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조바심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속 열정적인 여인 토스카는 연인 카바라도시에 대한 사랑 또한 불타오르듯 뜨겁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연인에 대한 경계와 집착으로 한순간 냉담해지고는 한다. 마치 냉탕과 온탕을 오고가듯 감정의 기복이 심한 토스카지만 그녀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기만 한 카바라도시는 토스카가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그녀에게 맞춰주는 훌륭한 연인이다.

https://youtu.be/HT33Y8zRVdI

하지만 카바라도시는 질투심이 강한 토스카에게 비밀을 갖게 된다.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이전 정부의 핵심 인사이자 정치동지인 안젤로티가 감옥을 탈출한 뒤 숨겨주고 그가 도피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면서 이를 토스카에게는 비밀에 부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토스카가 고해성사 시 왕당파 편에 있는 사제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것이기 때문에 카바라도시는 이를 토스카에게 비밀로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비밀과 질투의 조합은 비극의 훌륭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었지만 카바라도시의 행동들은 토스카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꺼리를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더구나 하필이면 화가 카바라도시가 그리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초상이 안젤로티의 여동생인 마르케사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본 토스카는 질투심에 불탄다. 카바라도시는 간신히 이를 진정시키지만 토스카의 질투는 완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한편 왕당파 비밀경찰 대장 스카피아는 도망친 반정부인사를 찾아다니다 카바라도시가 그를 숨겨주고 있다는 단서를 찾아낸다. 토스카를 탐하는 스카피아는 토스카로 하여금 연인 카바라도시에 대한 질투심을 유발시키는 방법으로 토스카가 카라바도시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한다. 부하들을 시켜 토스카를 뒤따르도록 한 뒤 안젤로티를 잡으려는 수작이다.

하지만 결국 안젤로티는 잡지 못하고 대신 카바라도시를 잡아들인 스카피아는 토스카를 불러들여 더러운 타협을 시도한다. 토스카로 하여금 연인을 살리기 위해 몸을 바치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연인 카바라도시가 고문을 받으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던 토스카는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연인이 결국 죽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역제안을 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Met Opera) '토스카' 한 장면


토스카는 카바라도시의 처형을 거짓으로 행하고 자신과 카바라도시가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도록 통행권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이를 받아든 토스카는 탁자 위에 놓여있던 칼을 들어 스카피아를 찔러죽이고 연인 카바라도시에게로 달려간다. 

카바라도시에게 모든 상황 설명을 마치고 거짓 처형에 맞춰 그럴듯한 연기를 주문한 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토스카는 그러나 처형이 끝난 뒤 카바라도시가 진짜로 죽은 것을 확인하고 절망한다. 스카피아의 거짓된 속임수가 드러난 것이다. 이내 자신을 잡으러 온 스카피아 부하들에게 쫓기게 된 토스카는 스카피아를 향해 “신 앞에서 만나자”고 외치며 성벽 아래로 떨어진다.



비밀과 불신은 질투의 완벽한 레시피


열정적인 여인 토스카와 역시나 열정적인 카바라도시의 사랑은 이렇듯 비극으로 끝을 맺고 만다. 물론 토스카의 질투가 비극의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그녀의 질투를 이용하려 한 스카피아의 손쉬운 먹잇감이 됨으로써 카라바도시의 비밀이 손쉽게 드러나고 결국은 고통으로 귀결된 것이다. 

질투에게 있어 비밀은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독약과도 같아서 파멸을 일으킬 수도 있다. 더구나 열정적인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짧고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어느새 앞뒤 재지 않고 행동을 취하게 마련이다. 어느 하나가 꼬여버리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들어서는 것은 순식간이다.

오페라 초반에서 토스카가 보여준 질투 섞인 투정은 사랑하는 연인 간의 흔한 연애행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지만 질투는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자각과 대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더구나 완벽한 비밀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에 비밀을 간직하는 순간 아무리 막아도 미세한 틈을 통해 새어나오는 일상의 균열은 불신의 깊이를 더할 뿐이다. 

비밀과 불신은 질투의 완벽한 레시피가 되어 토스카와 카바라도시의 삶과 사랑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리고 말았다. 열정적인 두 남녀의 서로를 향한 사랑의 노래는 뒤로 갈수록 복잡한 사건과 사악한 인물과 얽혀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맞으면서 비통함 속에서 뿜어내는 통한의 노래로 바뀐다. 

특히, 처형을 앞두고 사랑하는 연인 토스카에게 전할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카바라도시가 부르는 노래 ‘E lucevan le stelle (별은 빛나건만)’은 극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정치적 소신을 지키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던 카바라도시가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감미로운 기억, 그녀와의 영원한 이별에 대한 절망, 삶을 향한 절실함을 절절하게 표현하면서 무대를 뜨거움과 안타까움으로 가득 채운다.

https://youtu.be/EjPvj-1WHIc



파괴적인 폭력성이 질투에 불을 지르다 


토스카의 질투가 무모하지만 일견 안쓰러움을 자아낸다면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 속 오텔로의 질투는 파괴적이면서도 통탄스럽다.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오텔로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컴플렉스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면서 죽음을 부르는 폭력성을 드러내며 비이성적인 미치광이가 되어간다.

비록 이아고의 간계로 처음부터 끝까지 짜여진 각본으로 일이 진행되기에 오텔로의 질투의 대상인 데스데모나와 카시오는 물론이고 오텔로 또한 희생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오텔로의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아고가 이러한 치명적인 시나리오를 짤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전적으로 오텔로의 이러한 성격에 기반한 것이었다. 질투는 파국에 다다르도록 힘을 발휘하는 작은 불길일 뿐이었다. 질투와 배신에 눈이 멀어 모든 상황을 그 프레임 안에서 받아들이고 그 틀 안에 갇혀 스스로 덫에 걸린 사냥감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아고로부터 처음으로 질투와 배신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순결한 데스데모나를 의심하는 것이 가당치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갑작스레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순식간에 이성을 잃는 모습은 곧 들이닥칠 비극의 서막을 알린다.

말로는 스스로가 이성적인 것처럼 증거가 있어야 확실하다면서 이를 요구하지만 이는 오히려 조작된 증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약점으로 작용할 뿐이다. 실체도 없는 배신으로 괴로워하고 파괴를 불러오는 질투에 사로잡힌 오텔로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몸부림치며 스스로를 더욱더 옥죄고 옭아맨다. 

https://youtu.be/njs-aQy_89c

이 오페라에서 형언할 수 없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배신에 대한 의심과 잘못된 확신에 가득한 오텔로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의 분노가 향한 데스데모나의 처참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리라. 오로지 오텔로를 사랑한 죄, 다른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려 한 것이 유일한 죄인 데스데모나는 갑자기, 뜬금없이, 별안간 오텔로가 분노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실마리도 잡지 못한 채 속수무책 당하기만 한다. 

오페라 초반에서 오텔로와 데스데모나가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중에 오텔로는 데스데모나의 순결에 반하고 데스데모나는 오텔로를 연민으로 사랑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두 사람의 성격과 사랑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순간에 데스데모나의 정절을 의심하게 된 오텔로는 더이상 데스데모나를 사랑할 수 없었지만 오텔로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던 데스데모나는 오텔로의 광기에 찬 행동에도 그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그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고 강압적인 태도와 협박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데스데모나는 자신의 슬픔과 절망감을 표현할 뿐 오텔로에게 원망과 증오를 보내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오텔로, 당신을 사랑한 것밖에 없다고 데스데모나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오텔로의 썩어가는 마음에는 전혀 닿지 못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Met Opera) '오텔로' 한 장면


결국 자신의 손으로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난 뒤에야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텔로는 어리석고 추악한 자신의 마음을 목도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질투의 화신이 되어 상대가 타들어가도록 파괴의 힘을 발산한 오텔로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랑을 불태우고 그 자신 또한 한 줌의 재로 남고 말았다. 

이렇듯 질투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으리라는 조바심에서 상대를 불신하고 상대에게 화를 뿜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할 뿐이다. 그토록 소중한 대상을 잃게 될 뿐 아니라 결국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는 무서운 결과를 남긴다. 질투는 결코 상대의 파멸로만 끝나지 않는다. 자신 또한 사랑을 잃게 되고 상대를 파멸로 이끈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게 된다. (3-2에서 이어집니다)


이전 03화 [2-2] 복수라는 이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