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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Dec 16. 2020

[2-2] 복수라는 이름

오페라 '햄릿' '일렉트라'


누구를 위한 복수인가


셰익스피어의 ‘햄릿’ 또한 오페라 버전이 존재한다. 프랑스 작곡가 앰브로아즈 토마스의 오페라 ‘햄릿’은 복수와 그에 얽힌 삶과 죽음의 문제를 더욱 강렬하게 다룬다. 오페라 ‘햄릿’에서 비극은 햄릿은 물론이고 그 주변의 모두에게 찾아온다. 왕인 햄릿의 아버지가 죽고 왕위에 오른 삼촌과 그의 왕비가 된 어머니. 이러한 상황이 맞지 않다고 느끼는 햄릿에게 아버지는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

삼촌이 자신을 죽였다는 사실을 밝히며 복수를 부탁하는 아버지. 햄릿은 충격과 혼란, 배신감에 몸서리친다. 진실을 마주한 햄릿의 입장에서 복수를 다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삼촌에게 있어 햄릿은 걸림돌일 수밖에 없으므로 가만히 있다가는 햄릿 또한 안전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햄릿에게 있어 복수는 아버지의 원수를 처단하는 것이자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응당 자신의 것이어야 할 왕위를 되찾는 일이 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Met Opera) '햄릿'의 한 장면


하지만 햄릿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의감 하나로 시원하게 복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이 많은 햄릿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삶의 부조리와 허무함, 인간의 욕심, 잔인함, 어리석음을 목도하면서 근본적인 회의감에 빠진다. 

권력을 향한 삼촌의 탐욕을 혐오하고 아버지를 배신한 어머니를 경멸하지만 이는 햄릿에게 분노만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삶에 대한 의지마저 꺾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아버지의 살인에 연인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우스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디에서도 삶의 위안을 받을 수 없는 지경 속에서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고통이 너무도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상태에서 햄릿이 외치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명제는 그의 절박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 상태에서 햄릿이 미친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물론 햄릿 스스로가 진실을 알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숨기기 위해 미치광이처럼 행동하기도 하지만 삼촌을 비롯해 어머니 등 모든 이들은 햄릿이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정곡을 찌르는 말과 행동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든다.   

https://youtu.be/14XWkj7Qpzw

유일하게 자신을 목숨보다도 더 사랑해주는 순수한 여인 오필리아가 있지만 그녀의 사랑도 거부한 채 삶의 무게에 짓눌려있을 뿐이다. 햄릿은 결국 오필리아의 죽음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마지막 칼날을 삼촌에게 날린 뒤 오필리아의 오빠 레어티스에게 죽임을 당한다. 

자신을 둘러싼 삶의 온갖 추악함과 부조리 속에서 삶 또는 죽음을 선택하게 만든 복수로의 초대. 복수는 과연 정의를 불러오는가. 삶을 희생하면서 되찾은 정의는 복수의 정당성을 입증하는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삶의 비애만을 느낀 채 죽어간 햄릿이 안쓰럽게 여기지는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정당한 복수는 있다. 그럼에도 그 결말은 언제나 비극


스트라우스의 오페라 ‘일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그녀의 연인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찬 일렉트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지만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연인 아이기스토스에 도끼로 죽임을 당한다. 

궁전 안에서 노예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며 살고 있는 일렉트라는 아버지를 살해할 때 쓰인 도구인 도끼를 고이 간직하고 언젠가 그 도끼로 복수를 하리라 다짐한다. 무덤에 묻힌 아버지 아가멤논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위해 처절한 복수를 외치는 일렉트라의 아리아는 광기가 가득하다.

https://youtu.be/mdgPHaimDGo

어느날,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일렉트라에게 찾아온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그녀는 신기가 있고 솔직한 일렉트라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자 일렉트라는 희생 제물이 필요하다며 그것은 바로 ‘여자, 그리고 남자’라고 말하며 서늘하게 웃는다.


한편 어렸을 때 궁전 밖으로 보내진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돌아와 함께 복수할 수 있기를 기다리지만 낯선이 둘이 찾아와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린다. 절망에 빠진 일렉트라는 여동생 크리소테미스에게 함께 복수를 하자고 하지만 크르소테미스는 복수심은 거두고 차라리 시골 농부와 결혼해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혼자서라도 복수하겠다고 생각하는 일렉트라에게 낯선이 중 하나가 다가와 이름을 묻는다. 그녀가 일렉트라라는 것을 알고 자신이 바로 오레스테스라고 밝힌다. 일렉트라는 동생이 살아있다는 사실과 드디어 복수의 기회가 왔음을 기뻐한다. 

마침 아이기스토스가 궁전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오레스테스는 궁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살해한다. 궁전으로 돌아온 아이기스토스까지 살해한 뒤 오레스테스는 조용히 그리고 무겁게 걸어나간다. 일렉트라는 복수에 기뻐 날뛰며 미친듯이 춤을 추다 쓰러진다. 

아버지가 죽은 뒤 오로지 복수심 하나만으로 삶을 지탱해온 일렉트라가 남동생 오레스테스를 통해 복수에 성공한 뒤 그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죽 기뻤으면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쓰러져 죽을 때까지 춤을 추었을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Met Opera) '일렉트라' 한 장면


하지만 복수의 성공이라는 것 자체도 그리 개운한 것만은 아닐진대, 그것도 근친살해에 해당하는 복수의 결말에 대한 뒤끝은 분명 간단치 않다. 실제로 일렉트라의 이야기를 다룬 신화와 여러 비극들은 일렉트라의 복수가 성공한 뒤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일렉트라가 근친살해의 복수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기에 벌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오는 것도 있지만 오레스테스는 어떤 식으로든 복수의 죗가를 치르게 된다.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독하고 위대한 영웅의 이미지와 맞물려 스트라우스의 오페라에서 일렉트라는 주체할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사나운 맹수로 그려졌다. 복수심이 깊었던 만큼 그 기쁨도 거대했던 까닭인지 쓰러져 죽을 때까지 기쁨의 춤을 추는 일렉트라의 마지막 모습은 이 오페라가 비극임을 말해준다. 



복수는 과연 인간의 영역인가


사실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일렉트라의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인 것도 일종의 복수였다. 비록 자신의 부정이 드러난 때문이기도 했지만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에게 복수심이 있었다.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트로이와의 전쟁 전 희생 제물로 바친 것이나 자신을 차지하기 위해 아가멤논이 자신의 전 남편과 아들을 죽인 것 등은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한을 남겼을 것이다. 

따라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던 것은 아가멤논을 죽인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것만은 아니었다. 단순한 살인이 아닌 설사 정당한 복수라 할지라도, 비록 복수를 통해 자신의 한을 풀었을지라도, 복수라는 것은 결코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복수의 연결고리를 끊고 삶의 소중함에 눈을 돌리면 되는 것일까. 복수는 결국 인간 (또는 개인)의 영역이 아닌 것일까. 정의라는 이름으로 복수를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정의는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일까. 남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면 되는 것일까. 

나의 관심이 내가 아닌 남에게로 향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은 비단 복수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질투라는 또 하나의 무서운 이름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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