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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Apr 01. 2021

[5-2] 악의 모습

오페라 '오텔로' '살로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행위는 셰익스피어의 ‘오텔로’의 이아고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는 이아고의 행위가 불러온 파국을 비장하게 보여준다. 

이아고는 자신 대신 카시오를 승진시킨 오텔로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 오텔로가 데스데모나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쉽게 질투심에 휩싸인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이아고는 오텔로는 물론 카시오, 데스데모나까지 파멸시키는 교묘한 계략을 세운다. 즉, 오텔로 자신을 이용해 오텔로에게 복수를 하는 간악한 음모인 셈이었다. 

카시오를 궁지에 몰아 넣은 뒤 교묘하게 그에게 접근하여 순결하고 동정심이 많은 데스데모나로 하여금 구제에 나서도록 요청하는 것이 시작이다. 아울러 이아고는 오텔로로 하여금 카시오와 데스데모나의 관계를 의심하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하여 오텔로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처음부터 계략에 따라 차근차근 움직이는 이아고의 덫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오텔로의 모습은 사악한 존재에 의해 저당잡힌 한 마리의 짐승을 보는 듯하다. 오텔로는 괴로워하는 와중에 이아고에게 두 사람 사이의 증거를 요구하지만 이미 의심의 덫에 걸린 오텔로에게 거짓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얼마나 쉬우며, 이를 통해 오텔로의 의심을 확신과 분노로 바꾸기는 것은 또 얼마나 순조로운지 모른다. 

이아고의 교묘한 간계에 빠져 데스데모나의 정절을 확신하게 된 오텔로는 두 사람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카시오는 이아고가 알아서 처리하기로 하고 오텔로는 데스데모나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오텔로의 절망과 자기연민은 극에 달해 제정신을 잃어가고 급기야 공개적인 장소에서 데스데모나에게 모욕을 퍼붓고 함부로 대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오텔로' 한 장면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끔찍한 모욕을 당해 고통스러운 중에도 데스데모나는 오텔로가 도대체 왜 저렇게 변한 것인지, 그가 다시 예전의 열정적이고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하지만 데스데모나의 고결한 성품도 그녀를 향한 오텔로의 분노를 결국은 잠재우지 못한다. 

https://youtu.be/iQ6sXAY-Qx8

침실에서 기도를 마치고 오텔로를 기다리던 데스데모나는 오텔로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아고의 계략이 폭로되면서 오텔로는 자신의 행위가 가져온 비극에 몸서리를 친다. 하지만 이미 데스데모나는 자신의 손에 죽었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자신이 저지른 죄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복수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자신은 뒤에서 조종하고 구경하면서 남을 이용하는 간악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나,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곤궁에 빠지고 심지어 죽임을 당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기뻐하는 것이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결코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악의 모습인 셈이다. 

이러한 악의 간계에 빠진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약점에서 비롯된 것이고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한 것도 자신이니 결국 자신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바르고 올곧게 살아도 어떠한 반성이나 교화도 기대할 수 없는 악의 존재, 인간성 자체를 상실한 악 그 자체를 마주하게 되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소름끼치는 일이리라.


리차드 스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속의 살로메를 보자. 살로메는 유대의 왕 헤롯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해 생긴 의붓딸이다. 예언자 요하난은 구원자 예수의 등장을 예언하고 헤롯의 행위를 비난한다. 부도덕한 헤로디아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오페라는 살로메를 전면에 내세워 악의 모습으로서의 그녀를 그리고 있다. 헤롯의 정욕은 살로메에게로 향하고 살로메는 헤롯의 음탕한 시선에 혐오를 느끼고 헤롯이 벌인 향연에서 빠져나온다. 그녀는 갇혀있는 요하난이 헤로디아의 잘못을 경고하고 지적하자 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살로메는 요하난을 감시하고 있는 지휘관에게 요청해 그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른다. 다른 군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살로메에게 홀린 지휘관은 요하난을 불러오도록 한다. 거룩한 그를 보고 살로메는 처음에는 두려워하다가 이내 한 눈에 반해 그의 머리와 살결, 마침내 입술을 탐하고자 한다. 

그녀의 강하게 거부하지만 살로메는 계속해서 요하난과의 키스를 원한다. 자신의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살로메는 오로지 요하난의 육체를 탐할 뿐이다. 마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고야 말겠다는 집착을 내비치며 요하난의 육체를 칭송하는 살로메의 모습은 기묘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요하난은 살로메를 강력하게 거부하면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으라고 퍼부은 뒤 다시 감옥으로 향한다. 

살로메를 찾아 밖으로 연회를 옮긴 헤롯은 살로메를 발견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다. 자신과 함께 먹고 즐기자는 제안을 연신 거절하던 살로메는 자신 앞에서 춤을 추면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는 헤롯의 제안에 솔깃해한다. 정말 무엇을 원하든 해 줄 것인지를 재차 확인받은 뒤 살로메는 헤롯이 원하는 대로 관능적인 춤을 선보인다. 

매우 흡족해한 헤롯은 살로메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살로메는 은쟁반에 요하난의 목을 베어 가져다 달라고 한다. 요하난을 잡아두기는 했지만 그가 거룩한 사람이라 그를 두려워하고 있던 헤롯은 살로메의 요청에 경악을 한다. 그러면서 왕국의 반이라도 줄 수 있고 아무도 모르게 쌓아놓은 보석을 줄 수도 있다고 회유하지만 살로메의 요구는 요지부동 강력하기만 하다. 

https://youtu.be/tOe9Zc9oC9o

헤롯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요하난의 목을 베도록 허락한다. 은쟁반에 올려진 요하난의 머리를 받은 살로메는 이제야 비로소 요하난의 입술에 키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의기양양하게 그의 입술을 탐한다. 이 모습을 보고 헤롯은 역겨워하며 살로메를 죽이라고 명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살로메' 한 장면

비록 성경에서는 살로메가 춤을 춘 뒤 받을 보상에 대해 그녀의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묻고 헤로디아의 명을 받아 세례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리차드 스트라우스는 극의 중심을 살로메로 바꾼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에 바탕을 두고 오페라를 작곡했다. 

살로메의 독무대에 가까운 이 오페라는 요하난을 탐하면서 유혹하는 장면에서부터 헤롯 앞에서 춤을 추고 요하난의 목을 얻기까지의 과정이 춤과 노래로 어우러져 무대를 가득채운다. 이에 따라 살로메의 기괴하고 섬뜩한 캐릭터가 더욱 부각되는 동시에 그녀의 관능적인 육체와 주체할 수 없는 욕정이 폭발한다.

요하난이 외치는 경고의 내용은 물론이고 주변 누구의 말도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살로메는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를 채우기 위해 앞으로만 돌진하는 그녀를 막아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어떠한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손에 넣고야 만다.

심지어 그것이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시체일지라도 반드시 차지하여 자신의 욕망을 내뿜고야 마는 집착은 파괴적이고 광적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도 없고 타인과의 공감도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탐욕만을 추구하는 모습은 가히 사이코패스에 비견될 만하다. 


인간이 아닌,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의 모습은 진정 공포심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제발 저런 사람이 주변에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나 자신이 저런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있을까. 악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오페라 속에 등장하는 실수투성이의 인간, 나약한 인간의 모습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탄식을 뿜어내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떠한 교화도 기대할 수 없는 악의 모습과는 다른 인간다움의 어떠한 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비록 그것이 어리석고 모자란 면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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